소문의 효과는 그 파장이 대단하다.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나면 십 리 밖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오듯, 교회도 은혜롭다고 소문나면 자연히 부흥한다.성경에서 좋은 소문이 난 교회로는 데살로니가교회를 꼽을 수 있다. 유럽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빌립보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마게도니아의 수도 데살로니가로 갔다. 데살로니가의 원래 이름은 데르마였는데, 마게도냐 왕 빌립의 아내 데살로니가를 기념하여 개명했다. 이 도시는 중요한 무역 항구였으며, 로마 총독의 거주지였다. 콘스탄틴 황제가 사라센에게 패배하며, 터키족에게 포위당하는 치욕을 당한
창세기 15장에는 아브람이 했던 두 가지 질문이 나온다. 아브람이 조카 롯과 재물을 빼앗아 간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과의 전투(14장)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서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고 하시자 아브람이 첫 번째 질문을 한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15:2)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을 보여 주시며 아브람에게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고 다시 한 번 상속자(아들)를 약속하셨다. 아브람이 그 말씀을 하신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
‘종교개혁 이후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켜 왔는데 요즘은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킨다’라고 하면서‘교회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간다.하지만 이게 누구의 책임인가를 논하다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에, ‘교회’라는 개념보다는 ‘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교회개혁’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찾아본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물으셨을 때 솔로몬이 왕으로서 재판을 잘 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교인들도 교회개혁을 위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다윗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특히 좋아했던 것들을
얼마 전에 모 교단의 총회장을 지냈던 동생 같은 후배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러하기에 누구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나에게도 죽을 뻔한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처음에는 운전 중 정면충돌로 정신을 잃었다가 다음 날 병원에서 깨어났고, 두 번째로는 독일 마인강에서 도강훈련 중에 탑승한 장갑차(M113)가 강바닥에 가라앉는 바람에 질식사할 뻔했고, 세 번째로는 예배당에서 뇌진탕으로 쓰러져 일주일 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는 많은 목회자가 선호하는 설교의 주제로,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다양한 교훈을 전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율법사의 질문을 받고, 답변으로 먼저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다.율법에 기초한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이웃’이란 같은 언약백성인 사람들만 의미했기 때문에, 이방인은 그들의 이웃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도 이웃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필자는 설교할 때마다 ‘누가 내 이웃인가’를 알고 선을
1960년대 독일의 ‘가라지 세일’(garage sale)에서 어느 교포가 그림 한 점을 그 당시 여의도 40평형 아파트 한 채 값을 주고 샀다. 전문가 두 사람이 감정한 결과, 17세기 스페인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구매 가격의 50배를 제시하자 그림을 팔고, 그 교포는 졸지에 부자가 되었다는 꿈같은 일이 있었다.나에게는 무엇이 꿈같은 일일까 생각하다가,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 중에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
우리는 ‘믿음’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면서 사용할 때가 많다.성경에서 믿음이란 ‘신실함, 신뢰, 엄숙한 약속, 증거나 보증’을 의미하고,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은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한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이다.(요 14:1)중학교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완행열차를 타고 광주로 갔다. 아버지는 여느 승객과 달리 다음날부터 시작하는 부흥회에서 전할 말씀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한 시간쯤 후에 우리 맞은편에 앉은, 아버지와 연배가 비슷한 신사분이 “어디에 가시냐?”고 물
오래전 로마의 ‘카타콤’에 간 적이 있다.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지하 묘지로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서 예배하던 곳이다. 관람을 위해 땅 아래로 내려가다가 창살 곁에서 자라나는 이름 모른 식물을 발견했다. 마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은 자들이 누운 무덤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죽음에서 생명을 주신 놀라운 은혜를 보는 것 같았다.카타콤에서 예배했던 성도들의 신앙을 생각하다가, 최근에 정부에서 교회의 소모임을 금지했을 때 우리는 정부 시책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상황에 따라
산상수훈을 보면 예수님께서 참 좋은 말씀들을 하셨는데 청중 중에 몇 명이나 그 말씀을 이해하고, 삶 속에서 실천했을까? 그 중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원수’는 본래 나와 법정에서 대립하는 입장에 서 있는 ‘적대자’나 ‘대항자’를 의미한다. 누가 ‘당신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와 대립하는 적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나도 “예”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어려서부터 세상에서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성공이라고 배우다보니,
필자는 동이 터 오르는 아름다운 아침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새로운 은혜를 기대한다. 그 기대를 품고 기도하며, 창세기 1장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특히 1장 3~5절 말씀을 좋아한다.“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영어성경에서는 ‘light’로 번역하는 이 빛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기록되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 이민 생활 초기에 너무 힘들 때면 밤하늘을 보았다. 별을 바라보고 어머니를 부르며 뒷마당에서 혼자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월남전이 한참일 때는 미 육군으로 징집되어 서독에서 근무했는데, 영어로 인해 동료들의 웃음거리가 된 일이 수도 없다.어느 날 중대장이 나에게 “집에 가고 싶으냐?(Do you want to go home?)”라고 묻기에 클럽에 갈 때마다 불렀던 노래 이 생각나서 “yes!”라고 했다. 그런데 친구가 그 말은 휴가를 보내주겠다는 게 아니라 ‘제대하겠느냐?’는
나이아가라폭포를 볼 때마다 그동안 저렇게 많은 물이 계속 흘러갔는데, 아직도 물이 고갈되지 않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언젠가 옆자리에 있던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했더니, 자기도 동감한다고 대답해서 우리 둘은 금방 친해졌다. 알고 보니 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미국 한 신학교의 유명한 전도학 교수였다.이 교수에게 먼저 가족을 소개한 후 “나는 이 폭포의 주인입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이 폭포는 미국 소유인데 어떻게 한국인이 주인이 될 수 있습니까?”라면서 웃었다. 그래서 “이 폭포를 누가 만드셨습니까?”라고 반문하자 ‘그야 하나
한 나라의 인사를 보면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의 인사는 ‘샬롬’이다. 우리말 ‘평화’로 번역할 수 있지만, 실은 더 넓고 깊은 의미가 있다. 육신과 정신과 영혼, 그리고 환경과 조건 모두가 온전한 상태를 가리켜 ‘샬롬’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들에게 생존을 위협받으며 살아온 유대인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인사라고 할 수 있다.고대 그리스인의 인사는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였다. ‘은혜’(카리스)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주어지는 값없는 선물을 가리킨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신에게서 온다고 믿고, 신을 믿지
상 위에 책을 놓으면 책상이 되고, 밥을 놓으면 밥상이 되고, 술을 놓으면 술상이 된다. 그렇듯 한 사람의 인생도 무엇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가 살아온 모습이 각각 다르게 짐작된다.시편의 시작은 의인과 악인의 모습을 각자 어느 길(데레크)로 가느냐에 따라 달리 표현한다.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타락)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생명나무의 길은 갈 수 없도록 불 칼로 지키시면서 차단하셨다.(창 3:24) 그래서 아담의 족보(창 5장)를 보면 그의 후손들이 에녹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고 기록된다.구약에서 길(데레크)은 사람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와 ‘불행하게 하는 요인이 사라지면 나는 행복해질까?’라는 질문을 생각하다가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은 행복합니까?” 그랬더니 “예,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하면서 내게 “당신도 행복합니까?”라고 되묻는다. 나 역시 “예, 행복합니다. 왜냐면 행복한 당신과 함께 있으니까”라면서 함께 웃었다.내가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가 “지난 25년간의 목회가 행복했느냐?”고 하면서 “힘든 것은 없었느냐?”라고 묻기에 “목회는 행복했지만, 나의 욕망을 포기하는 것과 남을 용서하는 것은 참 힘들었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