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상 위에 책을 놓으면 책상이 되고, 밥을 놓으면 밥상이 되고, 술을 놓으면 술상이 된다. 그렇듯 한 사람의 인생도 무엇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가 살아온 모습이 각각 다르게 짐작된다.
시편의 시작은 의인과 악인의 모습을 각자 어느 길(데레크)로 가느냐에 따라 달리 표현한다.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타락)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생명나무의 길은 갈 수 없도록 불 칼로 지키시면서 차단하셨다.(창 3:24) 그래서 아담의 족보(창 5장)를 보면 그의 후손들이 에녹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고 기록된다.
구약에서 길(데레크)은 사람의 활동과 행위를 묘사하는데 은유적인 용법으로 사용된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의 길’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여호와의 도(마땅히 행할 길)를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았다.(창 18:19; 잠 22:6) 하나님께서 세겜에서 딸 디나의 일로 근심 중에 있던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살 길을 제시하자, 야곱은 가족과 함께 한 모든 자들이 벧엘로 갔다. 그리고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는 하나님의 복을 다시 받았다.(창 35:1~15)
성경에서 복 있는 사람을 ‘여호와의 길로 가는 자’라고 정의한 것은 그 길이 곧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인 것을 알았던 시편의 저자들은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하나님을 찬양했고, 시편 84편 5절에서는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신약에서 길(호도스)은 문자적으로는 다니는 길과 여행의 길을 의미하지만, 비유적으로나 상징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서는 두 길의 상징을 사용하는데, 첫 번째 말씀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의의 길은 넓은 길과 대조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협착하다. 여기서 예수님이 의도하신 바는 그리스도인, 곧 제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 문은 좁고 들어가기 어렵다. 그러나 이외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다른 길은 없다.
이 길에 들어서는 자가 적은 것은 이 길이 너무 좁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쉬운 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길을 가는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생명이다. 앞의 14절에서 ‘좁은 길’은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역사가 없이는 찾을 수 없는 길이다. 이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길이며, 이 길로 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도 오직 그리스도뿐이시다.
나는 어느 길로 가고 있는가를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도 여호와의 길로 걸어가도록 교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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