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화해, 가족을 치유하다
‘잘 익은’ 화해, 가족을 치유하다
[객석에서] 연극 <방문>
  • 박용미 기자
  • 승인 2016.02.15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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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가정의 갈등과 소통 과감한 해석 통해 그려
요리처럼 필요했던 인내의 시간 거쳐 ‘식구’로 회복


미국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던 진영은 형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8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반갑게 자신을 맞아줄 형과 아버지의 모습을 기대했으나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는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원로목사인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회를 물려받은 형 진석은 진영을 맞아 음식을 준비하는 등 부산을 떨지만 묘하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체 진영이 집을 떠나 있던 동안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가족 간의 소통과 이해의 과정을 그린 연극 <방문>이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가족이 이웃들의 방문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어긋났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모두의 존경을 받던 원로목사 아버지는 오랫동안 교회를 섬긴 권사를 향해 욕설을 내뱉고, 설교 중에 큰아들 진석에게 ‘사지를 찢어죽일 놈’이라며 고성을 지른다. 형 진석은 차 키를 꽂아놓고 내리거나 이미 집에서 만난 동생을 처음 본 것처럼 대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동생 진영은 한국에 도착해서야 어머니 묘소 이장에 대해 알게 되며 자신을 배제하고 진행된 가정사에 분노한다.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후배들까지 등장하며 쌓여가던 갈등과 궁금증은 극 종반에 가까워져서야 두 가지의 사실이 밝혀지며 다소 싱겁게 풀린다.

대한민국 연극의 기둥인 배우 이호재를 비롯해 김정호, 강진휘 등이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박정희 연출 역시 섬세하면서도 과감한 해석으로 빛을 발한다. 다만 형과 아버지의 심리상태와 단절된 가족의 관계를 보여주는 초반부가 엇갈리는 서로의 모습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 지루한 느낌을 주는 점이 아쉽다.

▲ 연극 <방문>은 집을 떠나 있던 둘째 아들이 오랜만에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무너진 가족의 맨 얼굴과 그 회복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대사와 연기 못지않게 이 연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요리다. 일반적인 공연에서는 다 조리된 음식을 사용하는 반면 <방문>은 현장에서 오븐과 가스레인지로 배우들이 직접 요리를 한다. 등장하는 음식들은 형 진석이 했던 음식을 또 하거나 같은 요리책을 반복해서 보는 것으로 주인공의 현재 상태를 표현해주기도 하고, 중반 이후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가족의 회복을 보여주는 중요한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다.

극 초반 오븐에 들어간 고기는 1시간 여가 지나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요리로 탄생한다. 진석이 진영에게 대접하려는 커피는 콩을 볶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최소 25분이 걸린다. 이렇게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요리는 지난한 과정과 노력으로 가능한 화해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김영희 연출은 “이 연극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만들고 대접하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시간이 걸리는 요리가 화해로 나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목사 가정이 주인공이지만 큰 의미가 있다기보다 마지막에 있을 반전의 충격을 극대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세습, 여자 목사에 대한 편견 등을 건드리고는 있지만 내용이 깊지 않다. 다 지워져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명패가 막연히 모범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목사의 가정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변하는 듯하다.

배우 이호재는 “연극 <방문>은 믿었던 아들에 대한 좌절감이나, 늙어가면서 찾아오는 몸의 변화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연극을 보는 관객들이 용기를 얻어가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극 <방문>은 2월 2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화~금요일은 오후 8시, 토요일은 오후 3시와 7시,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오후 3시에 무대에 올린다.(02-5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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