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된 종교는 죽는다…정의롭게 실천하라
‘좁은 문·한 알의 밀알이 되라’는 여전히 유효한 그리스도인의 의무
교회 부패는 국가 몰락 재촉…제대로 외치는 사회 파수꾼 돼야
“네, 네에~. 부대 정문을 끼고 오른쪽으로 직진하면 거창고 농장이라는 팻말이 보입니다.”
10만평 대지라는 농장 입구에서 먼저 반긴 것은 반 세기는 족히 지킨 미루나무와 흰 고무신 두 켤레 뿐이었다. 소박한 교장 선생님의 정취가 느껴져 반가웠다. 그는 여긴 농장일 뿐이라며, 근처 읍내 카페로 자리를 옮겨 얘기를 나누자면서 쏜살같이 경차를 몰고 앞장섰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하여 정국이 매우 시끄러운데 어떻게 지내시냐고 안부를 여쭙자 전성은 전 교장은 잠시도 망설임 없이 대뜸 종교와 교육 등 모든 분야가 잘못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말했다. 그냥 단순히 배가 뒤집혀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 관행처럼 계속되어 내려온 불의가 참사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기독교는 참 많이 반성해야 합니다. 구원파 유병언만 탓할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이 망한다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주류파들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참 선지자는 17명 정도였고 주류파는 1000명이 넘었습니다. 예레미야도 그들이 죽였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늘 주류파들이 계속해서 주도권을 잡아왔습니다.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아직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는 거죠.”

전 교장은 크게 놀라지도 않는 눈치였다. 어거스틴이 말한 ‘인간이 만든 어떤 제도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모두 정의가 무너진 세상에서 살다보니까 죄도 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불의는 부패를 낳고 부패는 불의의 온상이 된다며, 굶어 죽거나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는 지름길이라고 역설했다.
“마태복음 6장 24절을 보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떠받들고 있습니다. 비단 일반인만 그렇습니까?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면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라면 간음하지 말고,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면 미워하지 않고 살면 되는데 ‘쉬운 것’은 실천도 안하면서 사소한 일만 닥쳐도 어렵다고 투정하는 것이 우리 입니다.”
전 교장은 하나님 앞에서 뺀질거리는 태도부터 단호히 고쳐야 한다며, 자기와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랑의 크기는 곧 인격의 깊이라고 말한 그는 로마서 8장을 열거하며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와 있어야 할 것을 누차 강조했다.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선으로 악을 죽여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으로 드러났으며, 인류구원이 되었습니다. 인류구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개인구원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종교가 부패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부패는 곧 문화부패가 되고, 사회까지 썩게 되었습니다. 조직으로서 종교는 절대로 권력과 결탁해서는 안됩니다. 세월호 사건도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확실한 것은 대통령, 종교지도자, 정치지도자들이 먼저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리더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지금 교회는 목자는 없고 양만 있습니다. 목자라고 다 같은 목자가 아닙니다. 사회에도 지도자가 없어요.”

그는 사회가 부패하고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은 권력집단의 네트워크가 이익만 도모하다가 생긴 결과라며, 종교, 정치, 경제, 언론 할 것 없이 지도층의 책임론을 주장했다. 경제성장을 최고 목표로 삼아 권력집단이 정의 없는 사회를 만들면서 이 사회가 병들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종교계도 별반 큰 차이 없이 교회성장만 추구하여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영향력은 커녕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마저도 성장논리에 빠져 성도 수의 증가를 기독교의 성장이라고 말하면서 교인 1000만 명 운운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정의는 약육강식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돌보고 섬기는 세상이었습니다. 첫째가 꼴찌를 챙기고 돌보고 아끼고 섬기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꼴찌가 첫째를 섬기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힘을 가진 자, 돈을 가진 자들이 되레 배우지 못하고 돈이 없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정의라며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대신 어린양으로 죽으셔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것 아닙니까.”
전 교장은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남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면서, 교육은 사랑이고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국가 교육은 잘난 놈만 길러내는 것이 우선이지만 교회교육은 못난 놈에게 더 관심을 갖고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낮은 자’를 섬기는 기독교 교육은 엘리트를 양성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일반 교육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교육을 추구해야 할 교회가 일반 교육에서 추구하는 목표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며, 개탄을 금치 않았다.
교회가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인간을 부단히 변화시켜 강자가 약자를 돌보는 섬김의 사회를 이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의 아픔에 같이 스며들지 못하는 것은 무늬만 기독교인일 뿐이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만큼 지금 한국교회는 바로 서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쟁에서 이겨 성공하는 것만이 인생의 최고 가치라는 비인간적 가치관에 매몰되어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교회 안에서 우리가 최고라는 ‘선민의식’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웃을 돌아보기는 커녕 나와 내 가족이 안락하면 그만입니다. 가톨릭은 서구 세계를 지배하게 되자 타락의 정도가 도를 넘어섰습니다. 결국 면죄부까지 팔게 됩니다. 제도가 된 종교는 죽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근현대사를 보더라도 기독교 국가들이 비서구의 비기독교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어 참혹하게 수탈했습니다. 우리는 불의한 전쟁이나 부패한 사회는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리나 신학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도 실천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변함없고 충실한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불의한 인간 세상에 심판으로도 나타납니다. 불의를 보고 언제까지 방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전 교장은 정치권력은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섬기는 것이며, 경제는 한 사회가 생산한 부를 나눠가지는 것이 정의라며, 삶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추구해 가는 것이 인간존엄성의 원리이기에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교회는 도둑이 와도 짖지 않는 개 마냥 파수꾼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을 지적해야 하는데 슬쩍 눈감아 버립니다. 자기반성이 없습니다. 힘들어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썩어질 밀알이 되기 위해 헌신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