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미 센터장(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
홍유미 센터장(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

최근 정치권에서 나온 장애인 혐오 발언은 우리 사회의 장애 인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낸다. “총선 공천에서 장애인 할당이 너무 많다”, “눈이 불편한 걸 빼면 기득권”, “약자성을 무기 삼는다”라는 발언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장애인을 여전히 시혜의 대상이나 과도한 배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언어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고용과 소득, 교육과 문화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통계를 보면 장애인의 고용률은 비장애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소득 수준은 현저히 낮으며, 빈곤율은 비장애인의 두 배가 넘는다. 이는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구조적 차별의 결과다.

장애인들은 매일 물리적 장벽과 마주한다.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한 시간을 돌아가야 하고, 건물 입구의 계단 때문에 출입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장애 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비장애 학생의 절반 수준이며, 특수교육 지원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문화생활에서도 장애인은 소외된다. 영화관의 장애인 편의시설은 여전히 미흡하고, 공연장의 휠체어석은 가장 구석진 곳에 배치되기 일쑤다. 이 밖에도 일상에서 마주치는 무수한 편견의 시선들이 장애인의 삶을 옥죈다.

공직선거법이 비례대표 후보 추천 시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하도록 권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과도한 혜택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비례대표 제도는 다수결의 원리로는 대표되기 어려운 소수자의 목소리를 정치 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장애인 의원들은 그동안 소수자의 목소리를 의회에 전달하고 장애인의 일상과 직결된 법안들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이들이 없었다면 장애인 관련 법안은 더욱 외면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의 얼굴인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장애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쏟아냈다. 일부는 ‘자그마한 일’로 치부하며 혐오 발언을 쏟아낸 이를 감쌌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장애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단면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나님은 신체적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을 보신다. 예수님은 장애를 죄나 저주의 결과로 보는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하시며, 사회에서 배제되고 멸시받던 이들을 찾아가 치유하고 회복시키셨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교회 공동체를 몸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몸의 지체 중에 더 약하게 보이는 것들이 도리어 요긴하고…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고전 12:22~23) 이 구절은 신체의 다양한 지체들이 서로를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듯,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소중한 지체임을 강조하며 함께 어우러질 때 온전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봐야 한다. 장애는 결핍이 아니라 다양성이며,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다.

레위기 19장 14절은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라고 명령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장애물만이 아니라, 편견과 차별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놓지 말라는 의미다. 우리는 오히려 그 장애물을 제거하고,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번 논란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깊게 뿌리박힌 장애인 혐오와 차별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이런 세상의 편견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약한 이를 배려하고 그들과 함께 서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할당이 많다는 불평이 아니라 여전히 부족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존엄을 지닌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져가야 할 중심이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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