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이후 3개월, ‘신앙의 공백기’ 붙잡아야
허탈감과 해방감 사이, 세상 유혹 앞선 고3
교회·단체, 다양한 영적 돌봄 프로그램 확산
단회성 행사 넘어 지속 멘토링·공동체 필요
대학 입시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직후는 ‘해방의 날’인 동시에 ‘위기의 시간’이기도 하다. 단 하루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뒤 찾아오는 허탈감, 그리고 그동안 억눌려왔던 욕구들이 갑작스러운 자유를 만나며 생기는 영적 공백기이기 때문이다. 많은 현장 사역자들은 이 시기를 ‘다음세대를 지켜낼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앙생활이 입시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뒷전으로 미뤄뒀던 학생들이 세상의 즐거움을 먼저 맛보게 되면, 성인이 돼 교회로 다시 발길을 돌리기란 더욱 어렵다. 수능 당일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 약 3개월의 시간 동안 이들을 어떻게 품고 양육하느냐에 따라 한 영혼의 20대, 나아가 평생의 신앙이 결정된다. 수험생들이 세상 문화가 아닌 기독교 문화 안에서 기쁨과 자유를 누리고, 건강한 크리스천 청년으로 세워지도록 돕는 다양한 현장을 취재했다. <편집자 주>
뜨거운 기도의 불씨로 다시 타오르다
수능 당일인 지난 13일 저녁,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광장은 시험을 마치고 달려온 수험생들과 다음세대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한 ‘학교 & 캠퍼스 기도불씨운동, The Light’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다음세대와 서울·경기 지역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시작된 이 연합집회는 수험생들에게 세상의 유혹보다 강력한 복음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려는 취지로 지속돼 왔다.
긴장감을 내려놓은 수험생들은 예배 전 무료로 운영된 푸드존에서 식사를 나누며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다. ‘Be the Light–at School, on Campus’(벧전 2:9)를 주제로 열린 이날 집회에는 수험생을 비롯해 학부모, 교사 등 7000여 명이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 제이어스와 아이자야씩스티원의 열정적인 찬양 인도 속에 참석자들은 지난 1년간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렸다.
메시지를 전한 김선교 선교사(다윗의열쇠)는 수험생들에게 비전의 불을 지폈다. 김 선교사는 “학교와 캠퍼스의 빛이 돼, 어둠 속에 있는 영혼들을 모으고 다시 한번 부흥의 불을 지피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라고 권면했다. 주최 측은 “수능 이후 세상 문화에 휩쓸리기 쉬운 때에, 자신과 같은 또래의 예배자들이 이렇게 많이 존재함을 확인하며 거룩한 도전을 받는 시간이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쉼과 회복, 그리고 새로운 도약
“12년 동안 대학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아이들에게 갑자기 주어진 3개월은 축복인 동시에 방치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사역단체 스탠드그라운드 대표 나도움 목사는 수능 이후의 시간을 ‘방치’가 아닌 ‘기회’로 바꾸기 위해 10년째 특별한 여행을 이어왔다. 바로 ‘고삼세끼’다.
나 목사는 내년 1월 12일부터 15일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인 고3 학생들과 함께 제주도로 3박 4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은 기존의 빡빡한 수련회와는 결이 다르다. 낮에는 조별로 자유롭게 제주도를 여행하며 쉼을 누리고, 밤에는 토크 콘서트와 예배를 통해 깊은 교제를 나눈다.
나 목사는 “과거 억지로 끌려가 강요받았던 수련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아이들도, 이 여행을 통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일들이 일어난다”라며 “신앙을 버리겠다고 선언했던 아이들이 여행 후 다시 교회로 돌아가고, 이듬해 스태프로 참여하는 건강한 선순환도 이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여기에 ‘스물찾기 커뮤니티’가 더해졌다. 여행이라는 단회성 이벤트를 넘어,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약 100일의 시간을 신앙적 정체성을 세우는 기회로 삼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현재 60명 이상이 참여해 공동체 단체 채팅방을 중심으로 교제하고 있으며, 매주 화·목요일 줌을 통한 ‘스페셜 특강’이 진행되고 있다. 잠언·에베소서·빌립보서를 묵상하고, 최진헌 강도사(유튜브 ‘헌이의 일상’), 안용재 목사(YesHEis Korea), 크리스천 인플루언서 류하은 간호사(인스타그램 ‘hamuk_365’), 이종찬 전도사(종리스찬TV), 김강림 목사(이단·사이비 전문가) 등 MZ세대가 선호하는 게스트들과 함께 관계·진로·연애·이단대처 등 20대에 직면할 실제적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해 나간다. 나 목사는 “이 시기 학생들은 시간이 남아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갈급함이 있다”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많다”라고 전했다. 온라인 중심의 프로그램이지만, 관계 형성을 위해 오프라인 모임 2~3회도 계획돼 있다.
제자로 세워지는 훈련의 장
학교기도불씨운동 라이트온과 네임리스가 함께하는 고3 양육 프로그램도 두 번째 시즌을 이어간다. 라이트온 ‘고3 모임’은 “당신이라는 한 사람을 제자로 세운다”라는 목표 아래, 수능 직후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 약 3개월간 집중적인 양육이 이뤄진다.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11월 23일부터 12월 28일까지 매주 주일 밤 9시 온라인 전체 특강은 오픈예배를 시작으로 △큐티&묵상-임하수 목사(성서유니온선교회 광주지부 총무) △연애&성-박행님 교수(한국침례신학대학교 기독교학과장) △대학생활-크리스천 인플루언서 ‘주케팅’ 고민경 대표(인스타그램 ‘juketing.com_’) △선교-이다솔 선교사(인투미션 대표) △고3 부흥회-이성형 목사(위러브 메신저) 등 주제를 통해 20대 초입에서 필요한 신앙적 기초를 세우도록 돕는다.
평일에는 지역별 온·오프라인 모임이 주 2회 진행된다. 모임은 2부로 나눠 먼저 예배한 뒤 복음 기초반 교재를 활용해 고3들에게 필요한 양육을 제공한다. 처음에는 전국의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온라인으로 모이다가 지역별 참여자가 연결돼 3명 이상 모이면 오프라인으로 전환해 더 깊은 공동체를 형성한다. 기도모임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의 공동체인 가정, 교회, 지역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다양한 미션(헌혈하기, 요리대회, 노방전도, 지역소개 등)을 통해 동역자들과 교제한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고3 연합예배, 1박 2일 MT, 국내사역, 해외선교 등도 예정돼 있다.
모임을 기획한 박모세 목사(네임리스 대표, 라이트온 상임총무)는 “단순히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이 직접 복음을 전하고 선교 현장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모임에 참가한 한 청년은 “대학에 가서 겪을 수많은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내가 서 있는 곳이 곧 선교지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는 시간이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수능 당일의 문화행사부터 제주도 힐링 여행, 그리고 100일간의 제자 훈련까지. 방법과 형태는 다르지만, 이들 사역의 공통된 목표는 하나였다. 수험생들이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도록, 믿음의 동역자를 붙여주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것. 수험생들이 믿음의 공동체 속에서 회복과 도전을 경험하고, 성인이 돼도 신앙을 지켜갈 수 있도록 관심과 기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