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역사상 가장 빠른 변화의 시대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 즉 AI 혁명이 있다.
교회는 이 급변의 흐름 속에서 질문해야 한다. “AI 혁명의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교회로 남을 것인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본질, 즉 영혼 구원의 사명을 지켜내는 일이다.
교회가 교회되는 진정한 힘은 영적 자산이다. 교회의 자산은 부동산이 아니며, 출석 인원의 많고 적음에도 있지 않다. 교회의 진정한 능력은 말씀과 성령, 곧 영적 가치에 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불이 교회의 시작이었듯, 오늘의 교회도 그 불이 꺼질 때 생명력을 잃는다. 성령은 인간을 하나님의 뜻으로 이끄는 영이다. 인간의 두뇌 활동을 극대화하는 AI의 시대일수록 성도에게는 영적 분별과 기도의 깊이가 필요하다. 기술혁명이 아니라 영성혁명이 오늘의 교회가 요청받는 진정한 변혁이다.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질문을 기술과 데이터에 던진다. 그러나 정작 우리 자신을 향한 질문은 잊고 있다. “한국교회는 안녕한가?”, “우리의 신앙은 안녕한가?” 교회의 위기는 이미 교회학교의 붕괴로 드러나고 있다. 저출산과 세속화로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다음세대는 교회에 익숙하지 않다. 선진국들이 걸어온 길, 곧 풍요 속의 무신론이라는 함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유럽의 웅장한 성당이 술집과 카페로 바뀌는 현실은 경고다. 지금의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수십 년 후 한국의 교회들이 그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절망 속에도 길은 있다. 교회가 교회됨을 회복하는 시작은 다시 ‘영성’이다. 세상을 변화시킨 인물들은 모두 집중력의 거장이었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말했듯이 성공의 비결은 ‘Focus’ 초점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집중해야 할 초점은 무엇인가? 교회의 초점은 사람들이 죄 때문에 잃어버린 영혼을 회복하는 사역이다. 세상은 AI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술이 등장해도, 사람의 영혼을 치유하고 죄 문제를 해결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밖에 없다.
예수께서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말씀하셨다. 이 짧은 구절 안에 교회의 사명이 담겨 있다. 교회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것, 곧 영적인 생명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 사람들은 죄로 말미암아 영혼에 평안을 잃어버렸다. 디지털 기술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점점 고립된다. 인공지능과 대화할 수는 있어도, 영혼의 깊은 교제는 불가능하다. 세상의 기술이 줄 수 없는 영혼의 영역이 바로 교회의 자리이다.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영적 생명의 요람이며, 다 익은 곡식을 추수해 곡간에 들이는 사명이 있다.
AI 시대의 교회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관이 아니라, 하늘의 메시지를 해석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에 뿌리내린 경건의 삶이다. 교회의 미래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깨어나는 데 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한 성도들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선교 자원이다. 교회의 부흥은 성도의 숫자 변화가 아니라, 영혼의 변화 성령 충만에서 시작된다.
한국교회는 지금 침체와 부흥의 기로에 서 있다. 세속의 물결에 떠밀릴 것인가 아니면 영성의 능력으로 부흥의 시대를 이끌 것인가. 교회가 교회됨을 유지하려면 영적 초점(Focus)을 잃어서는 안 된다. 과학자들이 AI로 미래를 열어가는 오늘날 교회는 ‘영성의 시대’를 디자인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살려내고 구원하는 방법으로 교회를 주셨다. 교회는 인류의 소망이고 성령의 초점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의 불길을 살려냄이 교회의 부흥이다.
말씀과 기도는 하늘의 무기고를 여는 열쇠이다. 말씀과 기도가 성도의 무장이다. 성도의 초점이 영성에 맞춰질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난다. 교회의 본질은 성령의 임재이다. 성령의 임재가 있는 곳에서 교회는 부흥하고, 그 불길은 세상 속으로 번져간다.
한국교회여, 영성으로 일어나라! 초지능의 AI 시대 한복판에서, 영성의 시대를 다시 열어가자. 말씀과 기도의 초점으로 다시 교회 부흥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