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음모론에 흔들리는 장기기증
법안 철회 · 희망등록 취소 증가
교계도 영향…‘생명나눔’ 위축 우려

장기기증 제도에 대한 왜곡과 가짜뉴스가 장기기증 인식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은 극우 음모론을 담은 현수막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번화가 사거리에 게시된 모습.
장기기증 제도에 대한 왜곡과 가짜뉴스가 장기기증 인식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은 극우 음모론을 담은 현수막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번화가 사거리에 게시된 모습.

장기기증을 둘러싼 황당무계한 가짜뉴스가 사회를 넘어 한국교회 내부에도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장기기증 확대를 위한 법안이 극우 음모론에 휘말려 철회된 가운데, 교회 현장에서도 기증 취소 문의가 늘어나는 등 기독교 생명운동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9월 김예지 의원(국민의힘)은 장기기증 확대를 위해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기증자가 생전 동의했더라도 가족이 반대하면 기증이 불가능한데, 개정안은 기증 희망자의 강력한 의사가 확인될 경우 기증이 가능하도록 했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만 5만5000명에 이르는 현실에서, 기증자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기증 기회를 넓히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지난 10월 21일 김 의원은 돌연 법안을 철회했다. 그 배경에는 일부 극우 세력의 음모론 공세가 있었다. 김 의원은 “최근 일부 국내외 세력과 극단적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국가가 장기를 강제로 적출한다’라는 허위 정보가 확산돼 법안의 취지가 왜곡됐다”라고 철회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온라인에서는 “중국처럼 강제 입원시켜 뇌사시키고 장기를 떼어간다”라는 식의 유언비어가 떠돌았고, 거리에는 ‘유괴·납치·장기적출’ 등의 문구를 담은 현수막이 버젓이 걸렸다. 미국 극우 논객까지 “한국이 강제 장기 적출을 향해 가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불안을 부채질했다.

가짜뉴스는 김 의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으로 번졌다. 시각장애인인 김 의원을 향해 “본인의 눈을 이식받기 위한 법”이라는 허위 주장까지 나왔다. 김 의원이 최근 발의안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근거로 “정신병원 강제 입원과 연계해 장기를 적출하려 한다”라는 음모론도 퍼졌다. 결국 김 의원은 “법안이 오히려 장기이식 대기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라며 스스로 법안을 철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개정안은 강제 기증을 전제로 한 적이 없다. 법안은 본인이 사전에 직접 장기기증을 등록하고 신청해야만 동의로 인정되는 방식으로, 김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장기 기증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사람을 잠재적 기증자로 보는 옵트아웃(opt-out) 제도를 시행하는 스페인이나 영국보다 훨씬보수적이고 강력한 자기결정 보호 장치를 두고 있었다”라고 재차 설명했다. 한국장기기증조직원 이삼열 원장 역시 “해당 법안은 장기를 강제로 적출하는 법안이 아니었다”라고 못박으며 허위정보 대응책 마련을 예고했다.

문제는 극우 세력의 음모론이 교회 현장에도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30여 년간 한국교회를 중심으로 생명나눔 캠페인을 이어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최근 들어 장기기증 희망 등록 취소 문의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캠페인 현장에서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라고 묻는 성도들이 증가했고, 일부 목회자들조차 음모론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본부는 법 개정안 발의 당시 “사회적 합의와 유가족 지원·인식 개선이 먼저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한 바 있다. 생명 결정권을 본인에게 두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지만, 가족이 배제됐다고 느낄 경우 반발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기증 확대의 방향 자체는 충분히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기 이식 대기자는 5만5000명에 달하지만, 한 해 뇌사 장기기증자는 400명 남짓이다. 이식 대기자들은 짧게는 4년, 길게는 7년을 기다리며 매일 8.5명이 그 기다림의 끝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 10월 ‘장기‧조직 기증 종합계획(2026~2030)’을 발표했다. 뇌사자에 한정된 기증 대상을 연명의료 중단 후 심정지 사망자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온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참여는 장기기증 문화 확산에 큰 힘이 됐다. 사진은 생명나눔예배가 열린 교회의 한 교인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동참하고 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온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참여는 장기기증 문화 확산에 큰 힘이 됐다. 사진은 생명나눔예배가 열린 교회의 한 교인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동참하고 있다.

한편, 국내 장기기증 운동의 태동에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적인 사랑의 실천이 있었고,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생명나눔 운동의 중심에 서 왔다. 1991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전 이사장 박진탁 목사가 국내 최초로 생존 시 신장기증을 실천한 이후 지금까지 970여 명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위해 신장을 기증했는데, 이 중 60%에 달하는 573명이 기독교인이었다. 특히 목회자만 130명에 이를 정도로 기독교 신앙은 생명나눔의 강력한 동기가 돼왔다.

그러나 최근의 음모론 확산은 이러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생명나눔 문화까지 위축시키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가짜뉴스가 기독교인들의 선한 결단을 막는 현실이 안타깝다”라면서 “교회가 앞장서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생명을 살리는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혐오와 불신을 조장하는 거짓 정보의 파도 속에서, 한국교회가 다시금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생명나눔’의 본질적 가치로 돌아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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