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는 평소보다 많은 전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보통은 장기기증 희망등록 방법이나 절차, 장기기증 이후 예우 등을 묻는 문의가 많지만, 올 연말에 몰린 전화는 그 내용이 이제까지와는 매우 달라 상담하다 난감해하는 직원들이 늘었다.
“장기기증 신청을 취소하고 싶다. 가족이 반대해도 장기기증이 이뤄지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는데 가족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기증하고 싶지는 않다.”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위와 같은 내용의 문의를 하는 이들이 늘어났는데, 직원들이 당혹스러워 한 이유는 해당 내용이 유튜브로 확산된 가짜뉴스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지난해 9월 김예지 국회의원이 발의한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하 장기이식법) 개정안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장기이식법 상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라고 하더라도 가족 중 선순위자 1인의 서면동의가 있어야 실제 기증이 가능한데, 개정안은 국민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장기기증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확고하게 희망등록으로 밝혀뒀다면 가족이 반대해도 장기기증이 가능하도록 추진하는 내용이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오랜 기간 장기기증 운동을 펼치며 뇌사 장기기증인 및 사후 각막기증인의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볼 기회가 많았다. 사별이라는 극한의 슬픔 속에서도 장기기증을 결정한 가족들의 마음은 우리가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깊고 대단한 결심이었다. 이에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지난해 해당 개정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장기기증이 몹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하는 것은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의 마음을 보듬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법안은 상정만 됐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유튜브 등 SNS를 중심으로 해당 내용에 대한 가짜뉴스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내용의 골자는 ‘앞으로 장기기증 희망등록자의 경우 가족과 상의 없이 장기기증이 이뤄지니 당장 의사를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어떤 콘텐츠에서는 철회 방법까지 상세하게 안내해 놓았다. 통과되지도 않은 법안이 마치 지금 시행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한 몇몇 사람들 때문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들의 불안감만 커졌다. ‘지금 당장 내가 뇌사로 쓰러지면 우리 가족도 모르게 장기가 기증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한번 확고하게 자리 잡은 생각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지난 9~10월 해당 내용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못하고 취소를 강행하는 이들이 많았다.
결국 10월 17일 김예지 의원은 “악의적이고 왜곡된 정보로 인해 장기기증을 신청한 분들과 그 가족들이 불안감을 느끼거나 신청을 취소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라며 개정안 발의를 전면 철회했다.
2024년 장기이식 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장기이식 대기 환자는 5만4789명이고 이 중 매일 8.5명이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뇌사 장기기증자는 397명으로 실제 이식대기자에 비해 현저히 기증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 어느 때보다 장기기증 활성화가 절실한 상황 속에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를 무분별하게 퍼뜨린 사람들 때문에 그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생명나눔 운동을 펼치며 명확히 깨닫게 된 것은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서는 먼저 장기기증을 실천하신 이들을 예우하고 존경하는 사회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2013년부터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인 ‘도너패밀리’를 발족해 심리 치유 프로그램 및 교류 활동 등을 지원해 정서적 회복을 돕고, 기증인의 유자녀를 위해서는 D.F장학회를 운영해 학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고심 끝에 내린 유가족들의 장기기증 결정이 오해와 편견 속에 왜곡되지 않고, 생명을 나눈 기증인의 사랑이 오랜 시간 사회적으로 기억되는 것. 예우 사업을 펼치며 알게 된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의 바람은 사실 크지 않다. 장기기증인이 실천한 나눔의 가치와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함께 기억해 주는 것이다. 이들의 바람처럼 장기기증 주인공들의 목소리가 제도에 반영되고, 그를 통해 자긍심이 고취된 유가족들이 사회를 향해 다시 긍정적인 메시지를 들려줄 수 있는 선순환이 이뤄질 때 비로소 국민들도 우리나라 장기기증 정책에 대한 신뢰를 갖고 생명나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