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익 목사(창성교회)

함성익 목사(창성교회)
함성익 목사(창성교회)

지난달 10월 26일 주일은 종교개혁 508주년이었다. 종교개혁은 개신교회의 태동을 알린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개신교를 뜻하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저항하는 자’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이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면죄부를 강요하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공로를 앞세운 탓에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을 가리고 말았다. 

루터 한 사람의 작은 외침과 저항의 몸부림은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유럽 각지의 개혁가들에게 거룩한 영성을 깨웠고, 이후로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등의 거대한 개신교 교파의 기운이 자라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오직 성경’을 참신앙의 초석으로 두고, ‘오직 믿음으로’라는 거룩한 각성을 일으킨 이 저항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모든 속성이 완벽하게 결합된 존재의 유일성을 드러낸다. 세상 그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하나님만의 유일한 영광은 하나님 그 자체이기도 하다.(요 1:14) 구원을 통해 인생의 절대과제를 해결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인간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귀결돼야 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다.

작금의 교회를 보면 이와 같은 정신무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보인다. 세속의 이념들이 침투해 교회 성도들 간에도 심각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 이념의 대립이 영적 싸움의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됐다. 이념의 갈등은 교회 내부에서는 물론이요, 교회와 교회 간, 교파 간의 분열까지 부추기고 있다. 또한 고질적이면서도 끈질긴 이단 시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교회는 다른 복음을 경계하기 위해 언제나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회를 두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본다면 기우일까?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볼 때 지금의 교회가 환난과 위기 앞에 있다고 보는 것이 결코 믿음 없는 생각이라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조심하라”(눅 21:34)는 가르침을 주시기도 하셨다. 영광 중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군사로서의 호전 의식을 잃지 않으려는 굳은 결의가 필요하다. 지상의 교회는 모든 활동과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승계해야 한다. 교회는 참된 영광을 구하라 하시는 주님의 가르침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된 신앙의 관점을 지적하신 것이다.

궁극적으로 오늘의 교회를 향한 일침이기도 하다. 사람들로부터 오는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하며 명예욕에 사로잡힌 교회의 헛된 영광을 지적하신 것이다. 서로 영광을 얻고자 하다 보니 언제나 서로를 경쟁적이고 배타적인 대상으로 놓을 수밖에 없는 교회의 무정함을 지적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겸손함이 아닌 인간 스스로가 영광된 존재가 되는 교만을 지적하신 것이다.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한 것으로 추구하려는 것은 헛된 수고일 뿐이다.

총회 헌법의 서언에서는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을 교리적 표준으로 삼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에서는 사람의 제 일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제일 된 목적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바울 사도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라”(고전 10:31)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피조물의 존재 목적이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라는 성스러운 과제를 두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갱신의 사명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할 때 인간 중심적 오류에서 벗어나 말씀과 은혜에 기초한 본질을 유지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교회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유일하고 영원한 기준이다. 오늘도 개혁의 진행형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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