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선언문’ 동성애·AI·한반도 담겨
아시아·중동 출신 지도부 인준 이목
“자기 언어 성경 가진 인류 37%뿐”
급격한 문명 전환기 속에서 교회가 지켜야 할 본질은 무엇인가. 전 세계 복음주의 지도자 2000여 명이 서울에 모여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세계복음주의연맹(이하 WEA) 제14차 총회가 지난 10월 27일부터 닷새간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에서 열렸다. ‘모든 이에게 복음을, 2033을 향하여(The Gospel for Everyone 2033)’를 주제로 한 이번 총회는 125개국 지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복음주의 운동의 향후 10년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졌다.
WEA는 개막일 행사에서 “교회는 창조세계의 청지기로서 복음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고 천명했다. 굿윌 샤나 의장은 개회 설교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빛으로 시작하셨다. 교회는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세상을 밝히는 빛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무엘 치앙 부사무총장은 “이번 총회는 AI 시대를 맞은 교회가 신앙의 정체성과 제자훈련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계기”라고 설명했다.
총회의 핵심은 ‘서울선언문’(The Seoul Declaration)의 발표였다. 7장으로 구성된 선언문은 시대적 도전에 맞선 복음주의 신앙의 기준을 세우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주님이심을 신앙의 중심 고백으로 확언한다”고 시작했다.
선언문은 “우리는 복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진리임을 확언한다”고 밝히며, “‘타협 없는 협력’(Collaboration without Compromise)은 우리의 기본 원칙임을 재확인하고,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의 위험을 경계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복음과 성경적 정통 신앙,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굳건히 붙잡는다”고 덧붙였다.
성윤리와 혼인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확언한다. 남자와 여자는 존엄성과 가치에 있어 동등하며,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혼은 신성한 연합이자 하나님과의 언약”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동성 간의 성행위가 죄임을 확언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성(性)에 대해 정하신 창조 질서에 어긋난다”고 명시했다. 이어 “우리는 정죄함으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이 진리를 선포하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소망과 치유, 자유를 제시한다”고 덧붙였다.
인권과 종교의 자유 문제에서도 입장을 밝혔다. 선언문은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에 관한 성경적 신념을 굳게 지켜 온 한국 교회의 연합되고 지속적인 공적 신앙의 증언을 높이 평가한다”고 언급했다. 또 “‘소위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권 보호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대한민국에서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심각한 우려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부당한 차별을 거부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왜곡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AI(인공지능) 시대의 신학적 과제도 제시했다. 선언문은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매체를 분별력 있게 사용하고,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둔 윤리적 기술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기술 발전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윤리적 원칙 위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에 대해서는 “복음을 받아들인 남한과, 아직 복음이 자유롭게 선포되지 못하는 북한으로 나뉜 지 80여 년이 된 한반도에 마음을 향한다”며 “화해가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하며 그분의 진리대로 살아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밝혔다.
이어 선언문은 “한국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종교와 언론의 자유가 지켜지고, 교회가 거룩과 용기, 긍휼로 충만한 가운데 번성하는 나라로 새롭게 되기를 간구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총회에서는 영국성서공회(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와 세계성서공회연합(United Bible Societies)이 추진하고 갤럽(Gallup)이 조사를 수행한 글로벌 성경 연구 프로젝트 ‘파트모스 이니셔티브(Patmos Initiative)’의 결과가 발표됐다.
이 조사는 2023년부터 2024년까지 85개국 9만1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세계적 규모의 성경 인식 연구로, 전 세계 복음 접근성과 신앙 인식을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1%는 ‘신이나 초월적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고, 69%는 ‘종교가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응답했다. 또 35%는 ‘성경을 더 배우고 싶다’고 밝혔으며, 이 가운데 약 2억4000만명은 비기독교인으로 파악됐다. 반면 ‘자신의 공동체 언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응답은 37%에 그쳐, 여전히 성경 번역과 보급의 필요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전 세계를 7개 권역(클러스터)으로 구분해 비교했다. 아시아 지역(클러스터6)에서는 56%가 “성경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응답해 복음 접근성이 가장 낮았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클러스터7)는 91%가 ‘종교를 삶의 핵심’이라고 답해 신앙 열정이 가장 높았다. 반면 남동부 유럽(클러스터2)과 호주·뉴질랜드(클러스터5)는 40%만이 ‘종교가 일상에서 중요하다’고 답해 세속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번 총회에서는 서구에서 아시아와 중동으로 선교가 확대되는 흐름을 반영한 지도부 교체가 이뤄졌다. 스리랑카 출신의 갓프리 요가라자(Godfrey Yogarajah) 아시아복음주의연맹 회장이 신임 의장으로, 이스라엘 나사렛 출신의 아랍계 기독교인 보트루스 만수르(Botrus Mansour)가 신임 사무총장으로 인준됐다.
요가라자 의장은 종교자유대사로 활동하며 아시아 지역 기독인의 신앙의 자유를 옹호해왔고,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데샤마냐(Deshamanya)’ 국가훈장을 수훈했다. 만수르 사무총장은 히브리대 법대를 졸업한 법률가로, 로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화해 이니셔티브’ 공동의장을 맡아 중동 평화운동에 기여했다.
총회 기간, 세계 개혁주의 지도자들도 복음주의의 연합을 강조했다. 피터 릴백 총장(웨스트민스터신학교)은 “세대를 넘어 복음의 영향력이 굳건히 세워지는 현장을 보았다”며 “성령께서 말씀의 진리를 통해 교회를 하나로 묶으시고, 우리가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게 하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노리즈 의장(세계개혁주의협의회, WRF)은 “복음의 확장은 모든 교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부르심”이라며 “WRF와 WEA와 손잡고 함께 동역하여 하나의 비전을 공유한 교회들이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복음의 비전을 완수하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