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석 목사(예현교회)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2~13)
현대사회에 종교인구가 가파르게 줄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기초적인 복지 혜택과 더불어 예측 가능한 사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년 보장에 따른 근무 연한과 퇴직 이후에도 연금과 각종 복지 시스템은 노후까지 자신의 인생 향방을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하게 만들었다. 과거에 비해 생존의 불안감이 많이 사라진 것이다. 신앙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직장과 사회생활에 집중하는 것이 생존에 더욱 유리한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정말로 불안감이 사라진 것일까? 통계청(2024년 4월 발표) 자료에 의하면 무속인의 수가 80만명에 다다르며 무속 시장은 10년 전 251억에서 현재 1조4000억으로 폭발적 증가 추세에 있다. 안정된 만큼 그 안정을 지키기 위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신앙이 아닌 무속을 택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불안감의 해소와 의지의 대상은 필요하지만, 책임지는 신앙생활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짊어진 치욕은 무게감에 겨운 십자가를 말한다.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다. 게다가 십자가를 지고 도성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도성 안은 세상이 알아주는 화려한 곳이라면, 도성 밖은 십자가가 있는 멸시와 천대와 고난의 처소이다. 그럼에도 도성 밖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는 영원한 도성(14절)은 도성 안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아름답고 행복한 도성이 아니라 영원한 도성을 사모하고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 이익에 밝은 현대인, 그 누가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거친 도성 밖을 향해 나가려 할까? 편하게 인생의 답을 주는 무속인을 찾는 이유다.
세상 사람들은 결과가 삶의 목적이 된다. 성공과 승리를 통한 항구적 평안과 안녕을 얻기 위해, 사회적 명망과 지위와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때론 그에 따라 엄습하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세상에서 쉬운 답을 구하며 인생 전부를 투자한다.
그리스도인은 원인이 목적이 돼 달려간다. 자기 피로써 백성을 사신(12절)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원인이 돼 십자가를 지고 도성 밖을 향해 가는 것이다. 영원한 도성을 사모하는 이유도 그곳이 축복의 결과물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고난이 삶의 원인이 될 때 비로소 우리도 그 십자가를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