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석 목사(예현교회)
“이에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9~11)
본문(요 2:1~11)은 난해한 말씀 중의 하나이다. 분명한 주제와 의도를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교훈을 얻기 위한 무리한 해석은 전달자의 의도를 해칠 수 있다. 하지만 요한은 힌트를 하나 던져주는데, 독특하게 이 사건의 제목을 달아 준 것이다.
그 제목은 ‘첫 표적’이다. 예수님의 본격적 사역을 알리는 계기로 요한은 본 사건을 다룬다. 요한은 이 첫 표적의 소개를 통해 맛있는 포도주가 아니라, 드러난 예수님 자신의 영광과 누가 이 영광을 누리고 함께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포도주에만 묶여있다. 이것이 문제다. 그동안의 무리한 해석은 우리로 하여금 값없는 물에서 얻은 값있는 포도주를 갈구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기독교인만이 갖고 있는 증상, 소위 ‘가나 포도주 증후군’이 발현된다. 좋은 포도주를 얻기 위해 포도밭을 일구고 가꾸는 땀과 열정의 노력을 준비하기보다는 물에서 포도주를 얻듯 연회장의 손님들처럼 거저 먹고 마시고 즐기려는 병적 증상이 그것이다.
교계의 지도자들도 다음세대와 미래 교회를 위해 걱정하고 근심하며 기도를 하지만, 정작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현장의 열심은 없다. 청년들이 줄고 있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중에도 재정적 이유를 들어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전문가를 세우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에 투자하길 꺼린다. 위원회를 만들어서 기도모임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나태함과 무기력함이 더 이상 믿음의 기도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사도 요한이 전하려는 핵심은 포도주가 아니라 사건, 그 자체이다. 포도주를 마신 연회장의 손님들은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낸 이 표적의 핵심 인물들은 빈 독에 물을 채우는 하인들과 그 영광과 능력을 목도한 제자들이다. 요한은 우리를 좋은 포도주를 마시는 하객이 아니라 쓰임 받을 준비가 된 하인들과 첫 표적의 영광과 비밀을 소유한 제자들로 서 있기를 원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화려하고 즐거운 연회장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난 후미진 주방이다. 축제를 만끽하는 손님이 아니라 포도주가 떨어져 근심 어린 가운데 예수님을 바라보며 명령에 달려 나갈 준비된 하인이어야 한다. 첫 표적의 영광과 환희의 장소는 값진 포도주를 얻기 위해 눈물과 희생과 헌신과 투자와 몸부림이 있는 곳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곳에 서 있길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