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환 목사(명성교회)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찌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화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습 1:7)
우리가 잊고 사는 ‘심판의 날’
스바냐서는 작은 예언서이지만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선지자 스바냐는 요시야 왕 때, 유다 백성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남유다는 종교개혁의 외형을 갖추고 있었지만, 실제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성전에서는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집에서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마음은 세상의 번영과 물질을 좇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지만, 삶에서는 여전히 세상 가치에 붙들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스바냐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주의 날이 가까이 왔도다. 깨어 있으라.”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1~6절)
본문은 매우 충격적인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2절)
여기서 모든 것(사람, 짐승, 공중의 새, 바다의 고기)이 언급되는 것은, 죄의 결과가 온 세상에 파급됨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죄가 자연을 파괴하고, 사회를 무너뜨리고, 결국 모든 창조 질서를 왜곡시켰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노아 홍수 때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전 우주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경고입니다.
특히 4~6절에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직접 지목하십니다. 바알 숭배자들(4절), 하늘의 별에게 절하는 자들(5절), 동시에 여호와를 섬기면서 다른 신도 섬기는 자들(5절), 그리고 여호와를 찾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는 자들(6절).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교훈을 얻습니다. 형식적인 신앙, 혼합된 신앙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어도, 그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향하지 않았다면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당에 앉아 있는 것으로, 교회 직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심판의 날은 가깝습니다(7~11절)
스바냐는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그 날이 가깝다”(7절)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라”(10절) “그 날에 어문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제이 구역에서 울음소리가, 작은 산들에서 무너지는 큰 소리가 들릴 것이다” 여기서 “잠잠하라”는 명령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서라는 뜻입니다. 변명하거나 핑계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잠잠히 서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또 11절에서 상인들과 무역업자들에 대한 심판이 언급됩니다. 이들은 당시 예루살렘 경제를 쥐고 흔들던 사람들로, 물질의 풍요가 곧 안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재물이 다 사라지고, 그들의 집도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질과 성공에 대한 의지 역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이 말씀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현대인들은 “돈이 있으면 안전하다”, “경제가 회복되면 희망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번영은 결국 심판으로 무너진다.
하나님은 등불로 살피십니다(12~13절)
특히 12절은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절입니다.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을 두루 찾아…” 하나님은 심판을 대충 행하지 않으십니다. 등불을 들고 구석구석 살피시듯,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낱낱이 감찰하십니다. “찌꺼기 위에 굳게 앉은 자들”은, 오랜 세월 와인이 가라앉아 굳어진 것처럼 신앙이 무뎌지고 영적으로 잠든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즉,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하며 영적 무감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이 실제로는 아무 영향력이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태도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심판 같은 건 없어.” “하나님은 그냥 사랑이시지, 벌은 안 하셔.” “교회만 나오면 괜찮아.” 그러나 하나님은 등불로 우리의 삶을 살피십니다. 마음의 동기, 숨은 죄, 감춰진 교만까지 다 보십니다. 그 날에는 숨을 곳이 없습니다.
심판의 날, 깨어 회개하라
스바냐 선지자의 외침은 단순히 옛날 유다 백성에게만 향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14절) 이 말씀은 종말의 심판만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의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누구도 그날을 피할 수 없고, 미룰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우고, 영혼을 준비하며, 회개와 믿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우리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고, 편안하게 만들며,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깨어 있으라”(마 25:13)고 하십니다. 등불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우리도 항상 주님 오실 날을 대비해야 합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라”(18절)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에서 의지하는 재물, 권력, 지식, 명예는 심판의 날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하는 자만이 주님의 긍휼을 입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바로 회개의 때요, 은혜 받을 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고후 6:2)
현대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열심을 잃어버리고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만족하는 교회, 세상의 풍습과 타협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상실한 교회는 주님의 날을 준비하지 못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회개하는 성도, 깨어 있는 교회를 통해 여전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결론은 분명합니다. “심판의 날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깨어 회개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다.”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돌이키며,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안일한 신앙을 깨뜨려 주소서. 다시 주님 앞에 바로 서게 하소서”라고 기도합시다. 깨어 준비하는 성도, 회개로 새로워지는 교회가 되어, 심판의 날에도 두려움이 아니라 구원의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