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석 목사(예현교회)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 13:10~13)

 

강대석 목사(예현교회)
강대석 목사(예현교회)

제자들이 물었다. “예수님 왜 자꾸 이런 식으로 말씀하십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계속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비유는 당시에 헬라에도 잘 쓰지 않던 생소한 문학적 장르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청중들의 이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인 청중들이 단박에 알아듣기 어려운 방식으로 생소하게 말씀을 하시니 제자들은 속이 탈 지경이었을 것이다.

왜 예수님은 쉽고 재미있고 간결한 이야기 전개가 아닌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와 은유라는 표현을 즐기셨을까?

그 이유는 은닉이라는 문학적 기능과 함께 아무나 넘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진입장벽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청중들이 너무 쉽고 값없이 자신의 가르침 앞에 서는 것을 경계하셨다.

과거 신학교 시절이다. 오랜 독일 생활을 마치고 오신 신학계의 권위 있는 유명한 석학의 강의를 들은 적 있다. 문제는 어눌한 발음과 표현하는 문장력이 엉망이었다는 데 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 학생들은 다른 책을 읽거나 잡담이나 하는 시간이 됐다. 그러나 열정으로 무장한 극소수의 학생들은 교수님의 강의를 한 톨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기말시험을 앞두고 강의안을 만들어 우리에게 팔았다. 나는 지금도 당시의 강의안 몇 권을 갖고 있다. 복사물이지만 국내 최고 석학의 명강의를 만날 때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최소한의 역할을 요구하신다.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얻고 싶고 누리고 싶어 하는 것, 나의 필요에 의한 자의적 가치와 계획을 내려놓고 예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말씀에 권능과 열매가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숨기려 해도 목마름으로 준비된 청중들에게는 더욱 또렷이 드러나는 성령의 역사가 그곳에 있었다. 예수님에게 진입장벽이 필요했던 이유다.

주일이면 수많은 설교자가 청중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설득당하기 위해 뜨거운 심령을 준비하는 청중들은 얼마나 될까? 사실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가득 찬 세상일로 인해 듣고 싶지 않을 뿐이다!

힘겹지만 부산한 삶을 접어두고 말씀 앞에 무너지고 싶은 마음으로 가르침의 장벽을 넘는다면 더 큰 비밀을 알아내는 은혜가 매주 우리 앞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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