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주일학교제도 선교사 통해 도입
6·25직후 조직된 전국주교 열띤 활약
소외 지역과 해외교회 섬기는 헌신도

한국교회 다음세대사역 첨병으로 우뚝 서다

1913년 4월 19일 창덕궁에서 열린 한국교회 역사상 첫 주일학교대회.
1913년 4월 19일 창덕궁에서 열린 한국교회 역사상 첫 주일학교대회.

성경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제도 중에 이 땅의 교회들에 가장 큰 유익을 끼친 존재를 들어보라고 하면 아마도 주일학교가 가장 먼저 손꼽히지 않을까.

주일학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누구도 18세기 영국에서 살았던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라는 인물을 빼놓지 못한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어린 아이들마저 일터에 동원되고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며 온갖 범죄에 노출되어 있던 시절, 세상을 치유할 대안을 찾던 레이크스는 1780년 글라우체스터라는 도시에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다.

전국주일학교연합회를 상징하는 로고.
전국주일학교연합회를 상징하는 로고.

매주 일요일 동네 아이들을 가정집에 모아다가 글 읽는 법과 셈하는 법을 가르치고, 손 씻기와 머리 빗기 같은 습관을 들이며, 성경을 교육하는 일이었다. 이토록 평범해 보이는 일들이 엄청난 호응과 반향을 일으켰다.

‘주일학교(Sunday School)’라고 이름붙인 이 사역은 불과 5년 사이에 영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언론에서까지 대서특필할 정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20주기를 맞아 기념동상을 제막하던 1831년 무렵에는 주일학교의 학생 수가 무려 125만 명에 이르렀다.

주일학교 제도가 영국을 벗어나 서구사회 여러 교회들에 빠르게 전파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미국으로 건너간 주일학교는 나라 곳곳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의 건강을 돌보며, 즐거운 찬송과 흥미진진한 성경이야기를 통해 영혼을 자라게 했다.

1780년 영국에서 첫 주일학교를 창설한 로버트 레이크스.
1780년 영국에서 첫 주일학교를 창설한 로버트 레이크스.

특히 1790년 당시 미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에서 첫 주일학교협회가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각 주별 주일학교협회가 결성되기 시작했다. 1824년에는 주일학교연맹(Sunday School Union)이 결성돼 미국 전역의 주일학교를 이끌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주일학교협의회 창립으로 이어졌다. 1889년 런던에서 첫 세계주일학교대회가 개최된 이후, 1907년 제5차 로마대회까지 꾸준히 이어지다 세계주일학교협의회가 조직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놀랍게도 로마대회에서는 한국의 주일학교 상황에 대한 보고도 있었다. 당시 한국교회에는 전국에 613개의 주일학교가 운영되는 중이었으며, 학생들의 숫자는 4만 5918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 자신들의 모국에서 주일학교가 지닌 엄청난 위력과 매력을 체험한 바 있는 서양선교사들이 한국의 선교사역에도 이를 접목했던 덕분이었다.

한국에 파송된 최초의 여성선교사이자 미국북감리회 소속이던 메리 스크랜튼은 1888년 1월 15일 이화학당에서 12명의 어린이와 3명의 성인 여성을 데리고 주일학교를 개설했으며, 같은 감리교 소속의 노블 선교사 부부는 평양 남산현교회에서 1903년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연령대별 주일학교 제도를 도입해 운영했다.

장로교에서도 1907년 무렵부터 서울 연동교회, 평양 장대현교회, 전주 서문교회 등에서 ‘소아회(小兒會)’라는 이름으로 주일학교 사역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초창기 한국교회 주일학교의 풍경.
초창기 한국교회 주일학교의 풍경.

특히 각국 선교사들이 교파를 초월해 결성한 선교연합공의회에서는 1905년 산하 조직으로 주일학교위원회를 설치해, 주일학교 육성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선교연합공의회는 또한 주일학교위원회가 세계주일학교협의회와 교류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했고, 그 결과 1907년 로마대회에 한국인 최초로 윤치호가 참석해 한국교회 주일학교 상황을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주일학교협의회와의 만남은 한국의 주일학교 운동을 폭발적으로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사건이 세계주일학교협의회 부회장인 하인즈가 내한하며 1913년 4월 19일 창덕궁에서 한국교회 사상 첫 주일학교대회가 열린 일이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인도한 이날 대회에는 무려 1만 4700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이후 주일학교대회는 한국교회 주일학교 운동의 구심점이 됐다. 1921년 승동교회와 연동교회에서 열린 장로교총회 주관의 조선주일학교대회에는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등록한 가운데, 대회장으로 남궁혁 목사가 선출됐다. 이를 계기로 1922년에는 여러 교단이 참여하는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조직됐다.

세계주일학교협의회가 제작한 통일공과와 계단공과를 주일학교 교재로 도입한 것도 한국교회 주일학교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22년 평양 선천에서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고, 1925년 ‘아희생활’을 시작으로 교육전문지들이 발간되는 등 한국교회 주일학교는 점점 풍요로워졌다. 1932년 세계주일학교대회는 빠른 성장을 이룬 한국 주일학교가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전국주교 40회기에 개설해 30년 역사를 이어온 찬양율동지도자연구원의 졸업식 모습.
전국주교 40회기에 개설해 30년 역사를 이어온 찬양율동지도자연구원의 졸업식 모습.
전국주교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2005년 1월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열린 전국대회.
전국주교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2005년 1월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열린 전국대회.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일제의 탄압이었다. 신사참배 강요와 황민화정책에 저항하는 개신교에 곱지 않은 시각을 가졌던 일제는 1937년 예정된 제5회 조선주일학교대회를 무산시켰고, 조선주일학교연합회를 해산시켰다.

해방 후가 되어서야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대한기독교교육협회로 재건되었으나, 대한예수교장로교총회는 독자적으로 주일학교 조직을 운영하는 길을 택했다. 1955년 9월 16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총회종교교육부 후원으로 전국주일학교연합회를 조직한 것이다. 발기인 대표 안광국 목사 사회로 진행된 창립총회를 통해 초대 임원진이 구성됐다.

전국주일학교연합회(이하 전국주교) 초창기에는 경기노회주일학교연합회가 큰 활약을 했다. 전쟁 직후였던 당시 대부분의 노회가 주일학교 조직을 갖추지 못했던 상태에서, 이미 탄탄한 조직을 갖추고 있던 경기노회주일학교연합회는 초대와 2대 회장 고찬영 장로와, 4대~5대 회장 고응진 장로를 잇달아 배출하며 전국주교의 구심점이 됐다. 이후 각 지역노회에서 잇달아 주일학교연합회가 조직돼 참여하며 전국주교는 점점 활성화된다.

제10회기(회장:송민섭) 시절인 1965년 9월 20일에는 서울 승동교회에서 ‘예수님을 배우자’는 주제로 교육대회를 개최해 옛 주일학교대회의 맥을 이었고, 제17회기(회장:최홍순) 시절인 1972년 1월 27일부터 28일까지는 서울 평안교회에서 제1회 전국성경고사대회를 개최했다. 이후 성경고사대회는 매년 정례화하며 1979년 시작된 성가경연대회, 2000년 시작된 율동경연대회 등과 함께 오늘날까지 주일학교 전국대회의 구심점을 이룬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고, 총회의 선교역량도 점점 커지던 1990년대 들어 전국주교의 사역은 나라 밖으로 확대된다. 제39회기(회장:김주락)에는 최초의 해외교육대회가 괌과 사이판에서 진행됐다. 제40회기(회장:신신우)에는 호주와 일본에서 해외 교포교회 시찰 및 주교 교사강습회가, 태국에서 해외교사강습회가 각각 열려 다음 회기들에도 계승된다.

40회기가 이룬 또 하나의 성과는 전국주교 산하기관으로 찬양율동지도자연구원을 설립한 것이었다. 주일학교 문화의 변화에 발맞춰 이뤄진 찬양율동 전문사역자 양성 작업은 현재까지 이어지며, 각종 교사강습회와 여름성경학교 프로그램 운영 등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국내외 소외지역을 섬기는 전국주교 사역이 꾸준히 이어져 선교지 교회들과 농어촌미래자립교회들을 격려했다. 46회기(회장:장광수)에는 북한어린이돕기 사업이, 47회기(회장:강신홍)에는 낙도어린이 초청행사가 각각 펼쳐져 이후 전국주교 활동에 이정표가 됐다.

2024년 5월 필리핀에서 진행된 해외어린이 성경학교.
2024년 5월 필리핀에서 진행된 해외어린이 성경학교.

제50회기(회장:이춘만)는 전국주교의 역량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확인하는 기회였다. 특히 2005년 1월 13일부터 14일까지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열린 전국대회에는 무려 72개 노회에서 5000여 명이 참석하며 대성황을 이뤘다. 한 기관만이 아니라 총회 전체의 축제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교단 합동이 이루어진 제51회기(회장:오임종)에는 전국주교의 규모 또한 더욱 확대되는 경사가 있었다.

이후에도 역대 회장과 임원들의 헌신 속에서 전국주교는 꾸준히 총회 다음세대 사역의 첨병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며 70회기(회장:정지선)를 맞이했다. 이번 회기에는 그리기대회를 신설하여 개최한데 이어, 올해 5월 25일에는 시흥 사랑스러운교회에서 기념예배 및 다음세대 신앙계승 콘퍼런스로 전국주교 70주년을 장식했다.

그 동력을 가지고 급격한 인구절벽 현상과 전국적인 주일학교 교세 감소, 여기에 장기간의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한 침체의 난관을 돌파하며 더 힘차게 나아가는 전국주교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