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총회는 지금 어느 때보다 영적 리더십의 회복이 절실하다. 총회는 한 교단의 머리와 심장 역할을 하며, 각 지교회들이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돕는 중심이 돼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하고, 총회는 그 교회를 견고히 세우는 영적 허브가 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우리는 교단의 정치와 선거, 외형적 성장과 행정에 몰두하는 동안, 목사로서의 본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자성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첫걸음은 ‘다시 목사의 자리’를 되찾는 일이다. 목사의 자리는 직분이나 직급의 높낮이로 정해지지 않는다. 화려한 타이틀이나 행정적 권한이 목사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살리는 말씀의 능력, 인기보다 진리를 선택하는 용기, 치밀한 전략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겸손이 우선돼야 한다. 세상은 직분자에게 성과와 실력을 요구하지만, 교회는 직분자에게 무엇보다 ‘성령의 사람됨’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외모나 수치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얼마나 큰 비전을 세우는가보다,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는가가 중요하다. 목사로서의 본분이 바로 세워질 때, 총회도 바르게 세워질 수 있다. 총회의 영적 권위는 결국 목사의 영적 권위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총회 리더십 회복의 출발점은 각 목회자가 처음 부르심을 받았던 감격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회복은 말이나 선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 삶으로 증명돼야 한다. 주일 강단에서뿐 아니라, 평일의 심방과 개인 상담 속에서, 교회 안팎의 모든 사역 현장에서 목사로 살아야 한다. 설교의 감동과 열정은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일관성과 진실함이다. 성도들은 목사의 언어를 기억하기보다, 그의 땀과 눈물이 담긴 삶을 오래 기억한다. 강단 위의 메시지와 강단 밖의 일상이 조화를 이룰 때, 목사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세워진다.
특히 총회 임원이 됐다면, 더욱 모범을 보이며 하나님의 사람다운 모습을 지켜야 한다. 직분이 높아질수록 무릎은 더 낮아져야 하며, 자리가 높아질수록 마음은 더 겸손해져야 한다. 목사의 본분은 단지 설교와 가르침에 그치지 않는다. 아픈 성도를 위로하고, 낙심한 이를 격려하며, 상처 난 마음을 싸매고, 방황하는 자를 품어야 한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곧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에, 이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기도의 대가를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다.
목회의 무게는 단순한 행정 서류나 회의 안건의 무게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한 영혼의 무게이며, 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사명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각오로 해야 하며, 눈물과 간절한 기도가 없이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 선거로 세워지는 임원보다, 눈물로 세워지는 목사가 총회를 견고하게 만든다. 참된 영향력은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릎 꿇은 기도에서 온다.
다시 목사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옛 위치를 되찾는 것이 아니다. 처음 부르심을 받던 날의 떨림과 눈물을 다시 붙잡는 것이다. 다시 골방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사랑과 책임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총회를 섬기되, 교회를 먼저 사랑하고, 교회를 세우되, 그 중심에 복음의 능력을 두는 것이다. 세상의 명예가 아니라, 하늘의 소명을 따라 사는 것이 참된 목회의 길이다.
우리의 사역은 사람의 박수와 칭찬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늘의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총회의 모든 행정과 결정은 결국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곧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결단하자. 다시 목사의 자리로 돌아가자. 인기보다 복음을, 전략보다 성령을,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자. 그럴 때 총회는 살아날 것이며, 교회는 든든히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회복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우리 교단 안에 다시 빛날 것이다. 부르심의 자리, 십자가의 자리, 그리고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 모두가 선택해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