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인 목사(여수 예수소망교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선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방종인 목사(여수 예수소망교회)
방종인 목사(여수 예수소망교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친히 자기 피로 세우신 교회로부터 위임되고 위탁된 사도적 복음을 선포하는 후신들로 부름을 입은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성육신 하사 사람의 몸을 입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의 영광을 보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을 복음과 함께 선포하고 가르칩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의 영광과 기쁨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부요함과 힘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주의 교회와 주의 백성으로 말미암은 이런저런 많은 연약함 가운데서도 찬송과 감사로 목사의 사명을 감당하며,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살아가는 우리 모든 동역자에게 사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와 부요함이 넘쳐나기를 원합니다.

사도들의 영광과 능력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지성과 심장을 하늘의 지혜와 지식으로 충만하게 하고, 그들의 심장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심장으로 살게 하는 능력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그 능력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목사의 생명이고 능력일 것이 분명한데, 많은 경우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속에 젖어 이 영광과 능력을 잃어버림으로 향기를 잃은 꽃처럼 연약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의 현실은 무엇 때문입니까? 교회 안에서 위임되고 위탁된 복음의 영광에서 떠나 있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삼위일체 신앙이 기독교의 출발

기독교의 출발은 무엇입니까?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곧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에서 출발하지 않습니까? 한 마디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냐 그 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면 기독교가 기독교가 아니며, 교회가 교회일 수 없으며, 성도가 성도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영광된 믿음의 고백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인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생명의 능력이 예배 시 사도신경을 통한 신앙고백 속에서만 고백될 뿐, 실제 교회 안에서 목사의 복음 선포를 통해 그 풍성함이 선포 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신앙고백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담대하게 선포하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이 고백을 교리사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또 믿음의 항목을 제한된 이성으로 설득해 가르치고 선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신적본성을 객관화하고 드러내신 유일한 방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성경인 것을 가르치고 확장하며, 교회가 교회됨을 세상 속에서 구별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은 정서적이며 실제적인 유비적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신앙은 사랑의 고백

사랑은 사랑으로 화답하고 사랑으로 교제합니다. 그러하듯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성의 항목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고백되어지고 믿어지는 사랑의 화답이며 고백인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삼위일체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어렵게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놀라운 지성의 산물이 아니라 심장의 산물입니다. 사랑은 정상적인 모든 성인에게서 지식과 상관없이 나타나고 고백됩니다. 그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의 계시와 더불어 드러난 사랑에 반응하는 교회의 사랑으로, 성도들의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며 객관적이며 주권적인 지식인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의 고백, 사도 요한의 고백이나 히브리서 저자의 고백이 다 무엇입니까? 성육신하사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그가 곧 하나님의 참 형상이며 본체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이는 하나님 곧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드러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광 때문에 사도들이 예수 안에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뿐 아니라 그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영광 가운데서 살아간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것처럼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지식이며 고백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 영광을 교회에 주시고, 또 교회로 말미암아 위임되고 위탁된 진리 안에서 목사로 세움을 입은 우리 모든 동역자들이 이 영광 가운데 우리 자신을 세우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교회와 목사의 영광을 다시 보며 사는 자들로 성령 안에서 힘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가 먼저 이 진리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 되었으니, 이 진리의 영광 안에서 우리 자신을 세우고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의와 사랑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한 본성 안에 삼위 하나님으로 서 계실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이 밖으로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는 한 하나님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의와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앞세우며 서로의 영광을 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풍성한 교제를 자기 교회와 자기 백성들 가운데 드러내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반영하는 신앙생활을 하며 살게 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가 어떤 의입니까? 인간의 모든 의를 뛰어 넘는 의입니다. 그의 사랑과 자비는 어떠합니까? 인간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방식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간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능력을 반영하게 살게 하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이성과 우정으로 말미암은 사랑을 초월하는 사랑인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교회의 이 영광이 회복할 수 있도록 목사가 교회의 영광과 힘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 진리의 삶이고 목사로서 선한 소명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이 복된 삶으로 부름을 입은 자들이 목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영광 가운데서 목사의 삶을 힘 있게 일어나 걸어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춘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 가운데 비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성육신 하사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주시며 하나님 본체의 형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능력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세우고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증인으로, 이 진리의 빛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교사로 세움을 입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교회와 목사의 영광을 생각하며 일어설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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