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환 목사(군산 동광교회)
부활하신 주님은 의심을 확신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이끄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눈으로 보아야 믿는 사람들
여러분은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즉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보여줘야 믿지, 봐야 알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말 부활하셨다고? 내가 직접 봐야 믿겠어!” 이런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도마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도마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를 만나주시려고 다시 다락방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됩니다. 이 시간 도마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영적 상태를 발견해보시기를 원합니다.
1. 도마의 모습에서 교회로부터 멀어진 오늘날의 성도를 봅니다
“열두 제자 중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요20:24) 여기서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라는 구절은 헬라어로 엔 우크 메트 아우톤(ἦν οὐκ μετ’ αὐτῶν)이라 하며, 공동체에서 떨어져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간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이 모습은 단순한 공간적 부재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절망해있는 도마의 영적상태를 보여줍니다. 절망한 것은 도마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배신하고 갈릴리 고향으로 갔습니다. 더 이상 다른 제자들을 볼 면목도 없고,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진 자괴감 때문이었겠죠.
다른 두 제자도 공동체를 떠나서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공동체를 떠난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길을 가면서, 성경 말씀을 가르쳐 줘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마치 “그래, 언제쯤 나를 알아보는지 두고 보자” 하시듯이 스스로 부활하신 예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저 계속 같이 길을 가십니다.
베드로처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처럼, 도마처럼 공동체로부터 떨어진 이들은 영적 결핍의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성도들도 신앙의 자리에서 멀어져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두려워서 공동체를 떠나 영적 결핍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처럼, 지금도 잃은 양 하나를 끝까지 찾는 목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혼자 떨어져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은 영적 영양실조로 피폐해져 갑니다. 영양실조가 길어질수록 의심은 더 깊어지고, 돌아오는 길이 더 힘들어집니다. 회복되는 방법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고, 다시 공동체 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떨어져있는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다시 돌아오시길, 속히 돌아오시길 축복합니다.
2. 도마의 모습에서 확신을 요구하는 오늘날의 세대를 봅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 20:25)
도마는 ‘보아야 믿겠다’고 말합니다. 현대인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과학적 증거, 현실적인 신앙, 체험 중심의 신앙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할 점은 도마는 불신자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본디 도마는 믿음이 뜨거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였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도마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까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여기서 헬라어 ‘에안 메(ἐὰν μὴ)’라는 표현이 있는데 ‘만약 ~하지 않으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뒤이어 ‘우 메 피스튀소(οὐ μὴ πιστεύσω)’라는 표현은 ‘절대로 믿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두 표현이 동시에 쓰였으니 문법적으로 혹은 문학적으로는 이중 부정이 됩니다.
부정의 부정은 역설적으로 강한 긍정 또는 강한 바람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러니 도마의 말 속에서는 절대로 믿지 않겠다는 자세보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간절히 원했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팀 켈러는 “의심은 신앙의 반대가 아니라, 때로는 더 깊은 믿음을 향한 통로”라고 말합니다.
도마의 마음은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듣고 자신도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가 않고, 그래서 믿을 수 있도록 강한 확신을 원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도마는 단순히 회의적인 사람이 아니라 상처받은 제자였습니다.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선 정말 믿고 싶은 갈망이 있었던 겁니다.
오늘날 공동체를 떠난 상태의 성도들 가운데도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다면 어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그 심정이 마치 도마처럼 불신이 아니라 강한 확신을 바라는 마음이라면, 부활하신 주님 앞으로 속히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 마음이 ‘진짜를 찾고 싶은 몸부림’이었다면 예수님께서 틀림없이 그 마음을 잘 아시고, 다시 다락방을 찾아가 도마를 만나신 주님처럼 우리를 만나주실 겁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불신이 만연해진 이 시대에 부활의 주님이 길을 잃은 사람들, 진리에 대한 확신을 찾고 싶어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응답해주시길 축복합니다.
성도는 의심이라는 활시위를 밖으로가 아니라 자신 안으로 향해야 합니다. 더 건강한 믿음 생활을 위한 열망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도마는 결국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의심은 신앙고백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3. 도마의 고백에서 의심 끝에 만난 인생의 진리를 봅니다
요한복음 전체는 같은 고백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나의 주님((κύριός μου), 나의 하나님(ὁ θεός μου)!” 베드로의 고백도, 도마의 고백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구약적 신앙고백의 절정입니다. 구약에서 ‘주 하나님'(Adonai Elohim)이라 부르던 고백을,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도마는 의심 끝에 만난 확신으로 평생을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살다가, 당시 세상의 땅끝이라고 여긴 인도까지 가서 순교를 당합니다. 사도 도마가 순교한 곳으로 전해지는 곳은 첸나이(Chennai)입니다. 과거에는 마드라스(Madras)라고 불렸으며,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바로 이 도시의 세인트 토마스 마운트(St. Thomas Mount)라는 언덕이 도마가 순교한 장소로 알려져있고, 그 언덕에 도마를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지금 하나님과 영적으로 멀어져 있으시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다시 가까워지시길 소원합니다. 진리를 찾기에 갈급하고, 확실한 믿음을 구하는 이 시대에 보지 않고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으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주님을, 우리에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라는 사명을 주신 주님을 다시 만나 성령의 기름 부으심 받기를 축복합니다.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뀐 도마처럼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