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목사(청암교회)

최고의 선물 예수님을 가르쳐야 최고의 성탄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이정현 목사(청암교회)
이정현 목사(청암교회)

저는 프로야구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제가 야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동네에서 아이들이 모이면 야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야구 장비가 있는 아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무렵 어떤 목사님이 저희 집에 오셨는데, 선물로 야구 장비 세트를 제게 주신 것입니다. 저는 그 선물로 인해서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가 되었고, 야구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한 목사님이 제게 주신 선물 하나가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선물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선물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특별한 선물을 받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미 특별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최고의 선물로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일까요?

1.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1995년 미국에서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3달이나 일찍 미숙아로 태어나서, 둘 다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습니다. 먼저 태어난 언니는 차츰 몸이 회복되고 좋아지고 있었는데, 동생의 상태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엄청난 위기가 찾아 온 것이죠. 그런데 그 순간에 미숙아 언니가 동생을 팔로 감싸줬습니다. 그리고 발작이 멈췄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는 무사히 퇴원하고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왜 이런 스토리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까? 생명을 살린 스토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운명은 원래 죽음이었습니다. 바로 우리 죄 때문에 생명이 없었던 게 우리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처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가장 귀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2. 우리의 운명을 바꿔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TV 드라마에 보니까, 서울의 강남에 금수저만 다니는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 학교에는 육군 참모총장의 아들, 유명 병원장의 아들,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의 아들,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 다녔는데, 반대로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하는 흙수저가 있었습니다. 흙수저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입학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흙수저 학생이 길을 가다가 금수저 한 명을 사귀게 되는데, 이것으로 그 학생의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한순간에 대기업 회장 아들과 둘의 모습이 바뀌어 버립니다. 흙수저가 금수저가 된 것입니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근히 이런 운명을 소망합니다. ‘내 운명이 저렇게 바뀌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 운명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우리의 신분은 더 이상 종도 노예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의 운명이 바뀌었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3.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탈출하여 대한민국 땅에 정착한 새터민이 3만4000명이 넘습니다. 이 중에는 6·25전쟁 때 국군 소위로 참전했다가 중공군 포로로 끌려가 탈출한 조창호 중위가 있습니다. 포로가 된 직후 탈출을 감행했는데, 실패해서 평생을 탄광에서 노역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수차례 탈출을 시도해서, 결국 그의 나이 64세에 탈북에 성공합니다. 왜 이분이 목숨을 걸고 탈북을 시도했을까요? 바로 자유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자유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감옥 수감자들이 힘든 것은 자유 박탈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예수 믿기 전에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서 자유가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우리 인생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드디어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2절을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성탄절이 있는 12월에는 백화점의 매출이 10% 이상 상승을 합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성탄절이 되면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당연히 성탄절 선물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자녀들에게 성탄절 선물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가장 큰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번 성탄절 때마다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왜 최고의 선물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교회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선물임을 가르쳐 주는 최고의 타이밍입니다. 교회와 가정에서 이렇게 실천하길 소망합니다.

4. 교회에서의 적용

보통 성탄절이 되면 주일학교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냅니까? 우선 성탄 발표회 준비를 합니다. 아이들에게 성탄 찬양과 율동을 가르치고, 부모는 발표회 때 사진 찍기에 연연합니다. 주일학교 부서에서는 성탄 선물을 주고, 조금 준비된 교회는 성극 등 성탄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런 모습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성탄절을 보내면서 가장 중요한 본질을 교회가 놓치고 다음세대들에게 전수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왜 교회마다 주일학교가 급감하고 2030년이 되면 주일학교 90%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까?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탄의 때가 되면 교회는 복음을 말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들뜬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이들에게 각인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구원자로서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을 반드시 설명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선물임을 정확히 가르치면 됩니다. 교회가 이것만 정확히 한다면, 성탄절 때 모든 것을 다 한 것입니다.

5. 가정에서의 적용

성탄절에 대한 가르침은 교회에서만 끝날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존 웨스트호프 3세(John Westerhoff Ⅲ)는 세대를 잇는 신앙 전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신앙이 단순하게 교회에서 가르쳐지는 지식으로의 교육이 아니라, 신앙의 경험과 신앙적인 삶 속에서 함께 체득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성탄절의 이벤트는 교회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가정 안에서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꼭 성탄절 당일이 아니더라도 성탄 즈음에, 가정만의 특별한 모임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3대가 함께 모이는 모임이면 좋습니다. 이때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고, 오신 주님을 축하하는 가정의 이벤트를 만들면 좋습니다. 가장은 반드시 자녀들에게 예수님이 최고의 선물임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매년 성탄의 때, 가정에서 자녀들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로 오심을 각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 성탄 전통을 만들어서, 낮은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실천하는 가족 단위의 봉사와 섬김을 만들면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 안에 예수님이 최고의 선물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들어간다면 우리는 이미 최고의 성탄을 보내는 것입니다.

선물 하나가 한 아이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 우리 모든 세대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최고의 선물임을 확인한다면 각 교회와 주일학교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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