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목사(소록도교회)

주님은 어둠을 뚫고 찾아오는 빛이십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6)

 

김선호 목사(소록도교회)
김선호 목사(소록도교회)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밤낮으로 금식하셨습니다. 최악의 환경에서 굶주리기까지 하셨으니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기에 고통의 강도는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전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 주님은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는 그럴듯하고 달콤한 말들로 마귀는 주님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모든 시험을 당당히 물리치고 승리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기쁜 소식을 전해주십니다. 그 기쁜 소식이 바로 오늘의 요절인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9장을 인용하신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구원과 소망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들에게

주님이 찾아가주신 ‘흑암에 앉은 백성’, 6·25전쟁 당시 예배를 금지당하고 예배당을 빼앗기고 심지어 자신들을 정성껏 돌봐주던 담임목사마저 잃은 소록도의 성도들이 딱 그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인민군의 총탄에 순교한 김정복 목사님의 추모예배는 전세가 뒤바뀌고, 고대작 목사님이 새로운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듬해 3월 3일이 돼서야 거행될 수 있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4000여 명의 성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김정복 목사님의 순교신앙을 계승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1977년에는 소록도 중앙예배당 앞뜰에 김정복 목사님의 높은 정신과 희생적인 발자취를 기리며 순교기념비를 건립합니다. 이 비석에 새겨넣은 ‘샛별’이라는 제목의 시를 이 자리에서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샛별

인생은 가지만 말씀은 계속 흐르고

역사는 바뀌지만 여전하리

고인의 발자욱은 순교의 꽃이 되고

천시 받던 십자가는 승리를 가져오리

핏줄 없는 설움보다

더욱 애달픈 복음 사역

후계자를 평생 그리워

버림 받은 병든 양떼 가슴에 안고

말씀으로 가꾸고 기도로 길러

보석보다 귀한 은혜 복음 사명을

이 동산 양떼에게 맡겨주셨네

오직 불구 이 몸 묶여 예수이름을

멀리 가서 사람에게 못 전도하나

별 따라 순교의 피여

십자가 제단 앞에 쪼개 들려서

산 제물로 주님 뒤를 따라가리라

김정복 목사님의 죽음은 커다란 아픔과 상실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소록도의 성도들은 새로운 사명에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말씀을 다른 누군가가 아닌 본인들 스스로 감당해야 할 사명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큰 빛이 비치었도다

1957년 7월 1일 소록도에 학교가 세워집니다. 학교 이름은 성실중고등성경학교였습니다. 그 무렵 소록도교회는 5000여 성도가 몸담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는데, 당시 교회를 담임하던 이덕길 목사는 소록도 성도들 중에서도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면서 먼저 성경학교 설립 제안을 했습니다. 이를 의논한 연합당회에서 1957년 4월 17일 이사회를 조직하고, 석 달 후 정식 개교를 한 것입니다.

개교를 하자마자 학생지원자가 70명이나 나왔고, 그중 30명이 합격해 입학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학업에 임했고, 훗날 뭍으로 나가서는 여수 한성신학교나 부산 영광신학교로 진학해 공부를 계속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성실중고등성경학교 출신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목사와 장로로 열심히 헌신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들은 소록도에서 자라난 신앙과 경험한 은혜들을 온 세상에 널리 전파했습니다. 흑암에 앉아 있던 소록도의 성도들이 이제는 자신들을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른 흑암을 찾아가 빛을 비추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1962년에는 김두영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부임 후 첫 예배에 ‘찾아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당시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록도에는 많은 성도들을 수용할 예배당이 부족했습니다. 할 수 없이 공회당을 빌려 예배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김두영 목사님은 부임하자마자 예배당 건축을 추진하기 시작해, 섬 여러 곳에 부지를 절충하고 다니셨습니다. 그해 11월 26일부터 30일까지 신성교회 남생교회 장안교회 북성교회 착공이 이뤄졌습니다. 이듬해에도 중앙교회의 착공이 이뤄지고 잇달아 준공작업까지 무사히 마치면서 소록도에 일곱 교회 시대가 열렸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소록도 성도들에게는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소록도에 찾아오시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흑암에 앉아있던 백성들에게 비친 큰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

소록도교회는 지금도 ‘순교정신 천국생활 기도능력 사랑실천’이라는 네 가지 표어 아래, 여러 교회와 성도들이 연합을 이루며 순전한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가장 큰 숙원사업인 소록도역사기념관을 준공하는 것이 담임목사인 저의 꿈이자, 소록도교회 온 성도들의 오랜 소망입니다. 그만큼 소중한 역사였고, 소중한 기억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소록도교회의 역사는 하나님과 동행의 역사입니다. 비단 소록도교회만 그럴까요? 온 세상의 모든 교회들의 역사가, 모든 성도들의 인생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역사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흑암에 처해 있다고 해서, 사망의 그늘 아래 놓여 있는 것 같아 낙심하지 마십시오. 수많은 고난과 위기에서 소록도교회와 성도들을 지키시고 새로운 힘을 공급해주셨던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에도, 여러분의 교회에도 같은 은혜를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어둔 세상에 빛을 비추는 아름다운 사역들을 펼쳐나가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의 요절을 결론으로 다시 한 번 읽으며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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