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퀴어축제 6일 대전역 일대서 처음
동성애 반대 교회와 단체도 대응 집회
대전 충청 지역에서 처음 퀴어축제가 열렸다. 이에 맞서 대전시의 교회를 중심으로 퍼스트코리아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건강한 가족 시민대회’를 진행했다. 경찰은 철저하게 집회 장소와 시간을 분리해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20여 명의 청년들과 시민들이 퀴어퍼레이드 차량을 막아서며 항의했다.
퀴어축제는 2000년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 제주, 인천, 전주에 이어 2021년 강원도 춘천까지 잇따라 개최됐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충청권역에서도 7월 6일 제1회 대전퀴어문화축제가 대전역 동광장 인근 소제동 일대에서 열렸다.
퀴어축제는 오후 1시 개막식으로 시작했다. 오전부터 인권단체들과 여러 정당들, 홍익대와 성균관대의 성소수자동아리 등이 30여 개 부스를 차렸다. 빈들공동체교회를 비롯해 “성소수자를 환대해야 한다”는 목회자들도 부스를 마련하고 ‘무지개축복식’이란 이름으로 성소수자들에게 축복기도를 했다.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대부분 20대 청년들이었다. 개막식 행사 때까지 참석자는 300~40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오후 4시 퀴어퍼레이드를 앞두고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동성 연인과 함께 한 여성은 “대전은 보수적이어서 (성소수자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많다”며 “오늘 정말 많이 모여 놀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무지개 깃발을 앞세우고 대전역 앞 중앙로를 행진했다.
퀴어축제에 맞선 ‘건강한 가족 시민대회’는 퀴어 행사장 맞은편인 신안동에서 오후 4시 30분 시작했다. 준비한 2000개 좌석이 부족해 많은 시민과 성도들이 바닥에 앉거나 서서 행사에 참여했다. 대회준비위원회는 참석자가 3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시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던 청년과 시민들은 퀴어퍼레이드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몸으로 막아서기도 했다.
시민대회는 류명열 목사 인도로 1부 예배를 드린 후, 각계 전문가들이 나서 동성애의 위험성을 알렸다. 공동대회장 김철민 목사는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하나다. 저들을 반대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땅에서 자라나는 우리 세대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하재호 목사 사회로 기도회를 가진 참석자들은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퀴어퍼레이드 행진을 벌인 중앙로를 다시 되짚어 나아가며 동성애 반대와 건강한 가정 수호를 외쳤다.
[해설] 가장 뒤처진 대전퀴어축제, 파장 커질까 ‘우려’
보수적이고 20대 독신 많은 대전시
지역상황과 인구변화 속 퀴어 열려
성소수자 환대 교회도 영향 미칠 듯
“동성애는 감옥, 벗어나야 자유롭다”
보수적인 충청권에서 처음으로 퀴어축제가 열렸다. 제1회 대전퀴어문화축제가 7월 6일 대전역 동광장 앞 소제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소제동은 대전의 구도심으로, 지역 개발과 발전이 빗겨간 지역이다. 최근 들어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며 ‘소제동 카페거리’로 알려지고 있다. 퀴어축제가 열린 6일도 지역 주민보다 카페를 찾은 청년들이 많이 오고갔다. 퀴어축제 참가자들도 20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보수적이지만 개인적인 도시
서울퀴어축제 등 다른 지역의 퀴어 행사와 비교해 보면, 대전퀴어축제는 유난히 청년 중심이었다. 다른 지역도 참가자 중 청년 비율이 높지만, 장년과 청소년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대전퀴어축제에서 장년과 청소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국의 지역 중 가장 늦게 퀴어축제가 열린 것도 주목해야 한다. 보수색이 강한 영남 대구 지역은 15년 전에 퀴어축제가 열렸고, 강원도 지역도 2021년 춘천에서 퀴어축제를 열었다. “예로부터 도덕과 윤리를 중시하는 곳”으로 보수성이 강해서 퀴어축제가 열리기 힘들었다는 설명은 빈약하다.
두 가지 의문을 해소할 단초는 있다. 대전시가 정주(定住)하는 지역이 아닌, 잠깐 머물렀다 떠나는 도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발표에 따르면, 대전시가 전국에서 1인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나타났다. 대전시는 2018년 시의 전체 인구 중 1인가구 비율이 32.5%로 서울(32.0%)을 앞선 후, 2022년 38.5%까지 증가하며 계속 1인가구 비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통계청은 앞으로도 대전시 1인가구 비율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대전시 1인가구 중 상당수가 20대다. 대전시의 20대 1인가구 비율은 28%에 달한다. 20대 1인가구 비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학업 때문이다. 대전시는 과학기술대학교(KAIST)를 비롯해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들이 16개나 있다. 학업과 직업을 위해 대전에서 거주하는 20대들이 어느 지역보다 많다.
결국 대전시는 그동안 보수적인 지역 상황 속에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개별화 돼 있었다. 오래 거주하면서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조건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번에 퀴어축제를 열어 서로를 확인했다. 퀴어축제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은 “이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다”며 놀라고 있었다. 다른 지역보다 늦게 퀴어축제가 열렸지만, 파장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 환대’하는 교회들
대전퀴어축제 현장은 동성애자를 비롯해 성소수자들을 응원하는 다양한 단체들이 부스를 차렸다. 참가자들의 주목을 받은 부스가 있었다. 성소수자들을 환대하는 교회들이 세운 ‘축복 부스’였다. 대전에 있는 빈들공동체교회(남재영 목사)와 꿈이있는교회(전남식 목사)에서 각각 부스를 차렸다.
남재영 목사(기감)는 지난 6월 1일 서울퀴어축제에도 참여해 개신교 목회자로 축복식을 집례했다. 남 목사는 “기독교 신앙과 동성애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을 있는 그대로 환대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 목사는 청년 성도 중에 성소수자가 있다며 “전주에서 우리 교회로 온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받아줄 교회를 찾다가 우리 교회로 오게 됐다고 했다. 우리는 동성애자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환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남식 목사(기침)는 대전퀴어축제 개막식에서 공식 발언자로 나섰다. 전 목사는 “하나님은 다양성을 좋아하신다. 획일화하는 하나님이 아니시다”라며, 다양성 차원에서 성소수자들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가서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용기를 내어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며 “개신교 목사로서 여러분께 성령을 받으라고 하겠다. 아멘으로 화답해 달라”고 말했다. 전 목사는 연대발언 후 축복 부스에서 동성연인과 성소수자들에게 축복기도를 했다.
하지만 대전시 교회들은 두 목회자의 행동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대전퀴어축제에 맞서 열린 ‘건강한 가족 시민대회’에서도 ‘성소수자 환대’는 사실상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이라며 강한 비판이 나왔다. 시민대회에서 발언한 한 목회자는 “이 목회자들이 소속한 교단에서 처리를 해야 한다”고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퀴어축제 압도했지만 ‘이제 시작’
건강한 가족 시민대회는 예정했던 2000명을 훌쩍 넘겨 2500~3000명이 참석했다. 대전 충청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퀴어축제에 반대하기 위해 많은 성도와 시민들이 무더위에도 참여했다. 퀴어축제는 개막식이 열릴 때에도 참석자가 200여 명으로 한산했다. 조금씩 인원이 늘어나더니 퀴어퍼레이드를 앞두고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건강한 가족 시민대회는 동성애를 막아서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행사였다. 교단과 교파를 떠나 대전시 교회가 똘똘 뭉첬다. 1부 예배에서 설교한 공동대회장 심상효 목사(예장통합 대전성지교회)는 “오늘 우리의 분명한 뜻을, 올바른 진리를 전해야 한다. 거룩한 도성에 퀴어축제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자”며, “우리의 믿음의 함성이 이 땅과 세대를 바꾸길 원한다. 이 자리가 은혜의 강물로 세상을 바꾸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공동대회장 김철민 목사(대전제일교회)는 “건전한 의식을 가진 대전 시민들은 교회가 (퀴어축제 반대에) 앞장서줘 너무 고맙다고 말한다. 오늘 대전의 희망을 보고 있다”고 참석자들을 독려했다. 동성애에서 벗어난 박진권 성도는 “신앙과 동성애의 심한 충돌로 괴로웠다. 동성애는 감옥이었다”며, “다시 교회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주셨다. 동성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셨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동성애에서 나올 수 있다”고 외쳤다. 또한 류명렬(대전남부교회) 하재호(주사랑교회) 목사와 지영준 변호사(새로남교회) 오종영 사무총장(대전시기독교연합회) 등 예장합동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대회 준비와 진행에 앞장서 주목을 받았다.
대전퀴어축제에 맞선 건강한 가족 시민대회는 동성애 반대의 의지를 밝히고 가정의 소중함을 적극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대전의 퀴어축제 핵심이 20대 청년인 점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발언과 구호제창 형식의 집회와 함께 20대 청년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