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생태 위기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①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특별기고/ 생태 위기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①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송준인 목사(청량교회·총신대학교)
  • 김병국
  • 승인 2021.02.01 1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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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세계 원형 보존은 청지기에 맡겨진 문화명령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31)

송준인 목사(청량교회·총신대학교)
송준인 목사(청량교회·총신대학교)

들어가는 말

환경과 관련된 날로는 3월 22일 ‘물의 날’, 4월 22일 ‘지구의 날’, 5월 31일 ‘바다의 날’,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 등이 있다. 6월 5일이 세계 환경의 날이므로 보통 6월 첫 주일을 환경주일 혹은 생태주일로 정해 지키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날이 있는지조차 무관심한 교회들이 많다. 생태주일을 정해서 지키고 있는 교회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필자는 신학교에서 ‘개혁주의 생태신학’이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가르치고 있다.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출석하는 교회에서 생태주일 혹은 환경주일을 지키고 있는 지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그리고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 때문에 생태문제에 관심을 갖는 교회와 성도들이 증가하고 있다.

생태계의 위기

창세기 1장 31절을 보면, 여섯째 날까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에 대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나님께서 평가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환경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물과 공기를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다. 우리가 버린 폐기물이 부메랑이 되어 독성 물질로 우리 몸에 축적되어 각종 질병을 일으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경계로 그어 놓으신 동물의 영역에 인간이 무단 침입하여 동물의 몸속에 있던 바이러스가 우리 몸속으로 장소를 옮겨 온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이 청정에너지라고 쾌재를 부르며 앞다투어 개발하고 유치한 원자력발전소가 자연재해를 당하거나 노후되어 방사능이 누출되는 바람에,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재앙으로 새롭게 인지하기에 이르렀다. 호수에 번식하는 모기를 죽이려고 뿌린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가 먹이사슬을 타고 호수 인근에 살던 병아리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고, 근처에 서식하던 새들도 떼죽음을 당하게 했다. 이 DDT를 남극이나 북극에 뿌린 일이 없음에도 먹이의 순환 법칙을 타고 온 지구로 확산되어 지금은 에스키모인들, 남극 펭귄의 알에서도 DDT가 발견된다. 이 DDT는 칼슘의 대사를 방해하여 많은 새들이 껍질이 없는 알을 낳게 되었고, 알을 부화시키지 못해 멸종하고 있다. 전 지구상에 생물종이 3000만 종이 된다고 하는데, 현재 1년에 4~5만종이 멸종하고 있다.

한때 일본에서는 미나마타병이 유행을 했다. 이 병은 비료공장의 폐수에 누출된 수은으로 인한 병이었다. 조금씩 흘러나가 태평양에서 완전히 희석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다로 나가 플랑크톤에 흡착되었고, 그 플랑크톤을 조개와 물고기가 먹었다. 그 조개와 물고기를 지속해서 섭취한 사람 안에 수은이 축적되어, 팔이 없는 기형아가 태어나거나 미나마타병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환경호르몬은 화학물질의 범람으로 동물의 성호르몬을 교란시켜 생식을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또한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등으로 지구 생명체를 위협하여 결정적으로 생물종을 감소시키고 있다. 환경호르몬의 폐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바다고동의 수컷이 유기 주석에 오염되어 암컷으로 변하고, 미국에서는 악어의 알이 부화하지 않는 현상이 생겼고, 어느 호수의 거북이의 경우는 아예 수컷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인간에게도 정자의 수가 크게 감소하는 원인이 환경호르몬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과 문화명령

사실 생태계는 엄격한 질서와 균형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땅 1만평(가로 180m×세로 180m)에 풀을 심으면 1000만 포기가 난다고 한다. 거기에 소를 키우면 소 네 마리와 송아지 한 마리를 키울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욕심을 부려 더 많은 소를 키우다 보니, 소가 풀을 너무 많이 뜯어 먹어서 풀밭이 사막이 되고, 결국에는 소도 굶어 죽게 된다. 이처럼 자연환경은 조화와 질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 동산을 지키고 잘 가꾸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과 환경문제는 서로 연관성이 있다. 혹자는 인간이 자연과 다르다는 우월함이 환경파괴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만물의 중심이라는 사고방식이 오늘날 환경문제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은 ‘하나님>인간>자연’이라는 위계질서를 ‘하나님>자연>인간’, 또는 ‘자연=하나님>인간’과 같이 자연을 하나님과 대등하게 생각해야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보다 우월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이것은 생태주의자들이 말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주의적인 생각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인간>자연’이라는 위계질서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존재목적이 단지 인간을 위한 것이고, 인간의 유익을 위해 자연을 마음대로 훼손해도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문화명령이 등장한다. 문화명령이 무엇일까? 바로 창세기 1장 28절의 내용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두 단어가 있는데, ‘정복하다’라는 말과 ‘다스리다’라는 말이다.

먼저 ‘정복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카바쉬(kabash)’로, 파괴와 착취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문맥상 “땅에서 나는 식물을 음식으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다스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다(radah)’인데, 이는 “어떤 것에 대한 지배권을 갖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배권은 독재자의 지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공의로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사랑하고 보살펴야 한다.

또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시지만, 그의 주 되심은 섬김과 종의 모습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므로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서 나는 것으로 음식을 삼고, 또 사랑과 관심으로 땅을 다스리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사실 창세기 2장 15절과 조화가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니라” 여기에는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 대신에,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28절과 2장 15절을 관련시켜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문화명령의 본뜻이 무엇인지 확연히 밝혀진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착취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돌봄과 관심이다.

우리의 사명

환경문제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쓰레기 분리수거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수많은 굶주리는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머리를 화학제품인 샴푸로 감느냐 환경친화적인 식물성 비누로 감느냐의 문제일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의 문제이며 오존층 파괴의 문제이기도 하다. 너무 작고 사소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너무 커서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엄청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소한 문제라고 도외시하거나, 방대한 문제라고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가꾸고 돌볼 책임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청지기들이다. 작은 일이라도 우리가 직접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나부터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그 창조의 원형을 보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원을 아껴야 한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들은 예외 없이 모두가 비옥한 땅들이었는데 지금은 황폐한 사막이 되었다. 이는 우리가 땅의 단물만 빨아먹고 돌보지 않으면 황폐해진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 땅이 인간의 욕심과 죄악으로 인해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작은 일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일이 이 땅과 인류를 살리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계를 회복하는 한걸음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무섭게 질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계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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