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생태 위기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6)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For the Beauty of the Earth)
[특별기고/ 생태 위기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6)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For the Beauty of the Earth)
  • 김병국
  • 승인 2021.03.1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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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세계 총체적 회복으로 하나님 나라 완성 힘쓰라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시 148:3~6)
 

송준인 목사(청량교회·총신대학교)
송준인 목사(청량교회·총신대학교)

신음하는 지구

우리는 날마다 생태계 파괴에 대한 소식을 듣고 살아간다. 환경호르몬, 지구온난화, 유독성 폐기물, 원유 유출, 산성비, 식수 오염, 열대우림 파괴, 포화 상태의 쓰레기 매립지, 표층토의 유실, 종의 멸종, 스모그, 방사능 유출 등. 이런 것들은 이제 더 이상 낯선 것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피조세계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가슴이 아프다.

한 해에 어느 정도 열대 숲이 파괴될까? 불행하게도 남한만한 넓이로 매년 10만㎢ 정도가 파괴된다. 삼림 파괴의 주원인은 벌목과 목장, 대규모 농장, 땔감 채취, 도로 건설 등이다. 삼림을 파괴하는 행위가 우리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만큼 우리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숲에 의존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숲이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 땅의 황폐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사막화이다. 사막화는 대체로 자연적 원인, 곧 오랜 가뭄과 이상 고온현상, 강풍 등으로 일어난다. 근래에는 과도한 방목과 한계 경작지의 개간, 삼림벌채 등의 인간 행위가 원인이 되고 있다.

소비와 환경

지난 50년 동안 세계 에너지 수요는 5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러한 화석연료의 소비는 자연스럽게 대기오염, 특히 산성비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산성비는 자동차 배출가스인 질소산화물과 석탄, 석유 등의 연료가 연소하면서 나오는 황산화물 등과 같은 대기오염물질 탓에 산성화된 비를 의미한다. 이것은 물고기 폐사로 이어지거나, 땅에 쌓여 산림 황폐화를 일으키고, 토양의 영양소 순환에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산성비의 농도는 정상수치 대비 약 7배나 높은 수치이다. 문제는 이토록 심각한 산성비는 대기오염의 한 가지 형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더 광범위하게 공기가 오염되고 있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 심각해지는 기아(飢餓) 문제, 생물 다양성의 감소, 삼림 파괴, 물의 부족과 오염, 땅의 황폐화, 늘어나는 쓰레기, 에너지 소비의 증가, 산성비, 지구의 기후 변화들은 생태계가 쏟아놓는 탄식의 긴 목록이다.

만일 이렇게 상처 입은 지구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내 탓’이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불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세계를 이토록 신음하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창조의 청지기 사명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앞의 글에서 이 문화명령은 창세기 2장 15절과 연결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애당초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경작하고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으로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창조세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잘 보살피고 가꾸어야 하는 사명, 곧 청지기의 사명을 주신 것이다. 창세기의 첫 장은 하나님께서 각기 종류대로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셨음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그 모든 피조물을 보시고 “참 좋다”(토브 메오드)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의 지혜롭고 질서정연한 창조 행위로 나온 다양한 피조물은 하나로 어울려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게 된다.

시편 104편은 창조세계의 온전함과 조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씀이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세상, 들나귀와 백향목, 너구리와 젊은 사자가 모두 하나님께 의지하여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삼나무는 새가 둥지를 틀 장소로서 가치가 있고, 산은 야생 염소가 쉴 장소로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지으셨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하나님의 창조 솜씨를 자랑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 148편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비길 데가 없으며, 모든 피조물은 그 영광을 찬양하는 교향곡에 참여해 노래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를 보전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피조물을 무시하여 파괴하는 것도 죄악이며, 하나님의 피조물을 숭배하는 것도 죄악이다. 인간은 결코 자연 세계와 동떨어져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를 보호하고 보전할 도덕적 의무를 지닌다.

절제와 검약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다. 그러나 이 복은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셨다. 하나님의 복은 유한한 지구 위에서 모든 피조물이 번성할 수 있게 하신 능력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상관없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피조물과 함께 생육하고 번성해야 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치의 만나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유한성’과 ‘만족’이라는 주제를 가르친다. 우리는 그 날에 족한 양식을 구하고, 또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지구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만족이라는 윤리적 원리로 구체화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소유한 수단 내에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자원을 낭비하지 말고, 화석 연료의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 생물의 종들도 잘 보존해야 한다.

이 일에 필요한 것이 바로 절제와 검약이라는 덕목이다. 절제는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태도다.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는 태도가 몸에 밴 것을 말한다. 검약은 다른 이들을 살리고 번성하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아껴서 사용하려는 열망이다.

겸손과 정직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피조물인 인간은 흙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졌고, 생명을 부어주신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아 움직이게 되었다. 욥은 이 인간의 유한함을 누구보다도 더 절실히 깨달았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퍼붓는 질문들 앞에서 욥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유한성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욥은 눈이 쌓여 있는 곳에 들어가 보지 못했으며, 까마귀를 먹이지도 못한다. 그는 산에 사는 염소가 언제 새끼를 낳는지, 또 누가 들나귀를 자유롭게 해주는지도 알지 못한다. 매가 하늘을 날고 독수리가 높이 치솟는 것도 욥이 하는 일이 아니다. 욥의 힘과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그는 유한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어지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썼다고 하는 시편 8편조차도 우리가 피조물이며, 유한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존엄성과 소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있다. 문제는 인간에게는 유한성뿐만 아니라 죄라는 흠결이 있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피조물인 자신들의 유한성을 초월하여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아담과 하와 사이의 관계도 책임 전가로 인해 깨어졌다. 더 나아가 그들은 땅과 어울렸던 관계도 깨어져 땅을 경작하는 일이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우리의 현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책임을 지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도덕적인 의무가 있다. 겸손하게 우리가 땅에 속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관련하여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참된 영성은 영혼 구원만 외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기독교의 진리는 영혼 구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의 영적 갱신과 교회의 갱신, 사회의 갱신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것이 개혁주의의 원리이다. 개혁주의 원리는 행동하는 영성이다. 삶으로 보여주는 영성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것이다. 생태계 전체가 신음하는 소리에 귀를 막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 창조 세계의 돌봄과 지킴, 이것은 우리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다. 하나님 나라는 만물의 회복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는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총체적 회복, 하나님 나라의 완성, 그것은 구원의 진정한 의미이며 교회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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