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퍼즐 문화연구소 소장)

켄 로치 감독의 신작 <미안해요, 리키>는 가족영화다. 자영업자로 택배회사에 취업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빠 리키, 대중교통을 매일 이용하며 여러 환자 집에 다니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는 요양보호사 엄마 애비,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내며 그래피티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세바스찬, 그리고 바쁜 엄마와의 모든 대화는 비록 전화로 이뤄질지라도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따르는 예쁜 딸 라이자까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아주 평범한 가족이다. 영국 뉴캐슬에 사는 단란한 리키네 가족의 관계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지지 않는 집안의 재정 상황 때문에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리키는 업무강도가 높은 노선을 맡게 되면서 감당할 수 없는 택배량,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야 하는 스트레스, 백업 요원도 없는 상황에서 몰려오는 피로에 힘들어한다. 이때 리키를 24시간 감시하는 것은 바로 택배의 이동 경로를 짜고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추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스캐너다. 고객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기계지만 노동자에게는 어떤 휴식이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CCTV 같은 존재다. 리키의 노동은 오직 스캐너에 찍힌 숫자로 집약되며 노동을 향한 리키의 태도나 마음가짐 또는 직업윤리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실제로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지병을 참으며 택배 일을 하다가 숨진 돈 래인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원 약속 때문에 택배를 시간 안에 배송하지 못하게 되고 회사로부터 벌금이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되자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회사로부터 고용된 직원이 아니어서 병가를 낼 수도 없고 다른 택배 업자들도 모두 자영업자들이기 때문에 일을 대신 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영화의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이다. ‘sorry, we missed you’는 택배의 수신자를 놓쳤을 때 사용하는 관용구이다. 아마도 한글 제목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굴레 안에서 자신의 가정을 살려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리키)의 절규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we missed you’는 당신이 그리웠다는 말이기도 하다.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이어지는 당신이 그리웠다는 말은 아마도 당신이 그렇게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회한, 야수 자본주의로 물들어버린 세상에서 사람을 향한 그리움에 대한 외침이 아니었을까. 너무 아픈 상황에서도 출근할 수밖에 없는 리키가 운전 길에 흘린 눈물은 비인간적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길 선택하는 포효와 다름없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우리가 놓친 것은 과연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영화이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참인간이 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인간성이 우리 삶 속에 충만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올해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에 참 인간 되신 예수의 마음이 가득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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