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진리의 말씀으로 강단을 숨쉬게 하라 ⑬ 신학적 설교로 강단을 힘있게 세워라
[특별기고] 진리의 말씀으로 강단을 숨쉬게 하라 ⑬ 신학적 설교로 강단을 힘있게 세워라
  • 류응렬 목사
  • 승인 2019.04.24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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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닌 하나님 감동시키려 할 때 진정한 성경적 설교 … 구원사역과 실천적 삶 균형있게 제시해야

성경에 근거한 설교로 영혼을 살려 제자로 세우라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이번에는 깊이 있는 성경적 강해설교를 위해 신학적 설교라는 이름으로 한국교회를 진단하고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성경적 설교란 성경적 신학 위에 세워지며, 성경적 교회는 성경적 설교 위에 세워집니다. 한국교회의 설교에서 눈에 띄는 문제들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가 신학적인 취약함입니다.

본문과 깊은 씨름 속에 쏟아져 나와야 할 말씀 선포가 교회성장이라는 목표에 밀려나면서 성경적 설교는 감동적인 예화로 대치되기도 합니다. 성경에 근거한 신학을 상실한 설교는 자기계발이나 윤리로 전락되어 기독교 복음을 상대적인 인간 종교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설교에서 신학적 취약함은 결국 설교 자체의 취약함을 가져와서 기독교의 약화를 불러옵니다. 이번 글에서 한국교회 설교가 보이는 신학적 취약점의 현상을 밝히고, 그 원인과 해결을 다루고자 합니다.

신학적 취약점, 무엇을 말하는가?
먼저 설교에서 신학적 취약점이라고 말할 때 나타나는 오해가 있습니다.
첫째, 신학적 설교라는 말이 신학적인 이슈나 교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자체가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둘째, 신학적 설교라는 말이 신학적인 난제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란 어려운 본문을 쉽게 이해하도록 풀어내는 일입니다.
셋째, 신학적 설교란 성경해석만 다루고 삶을 배제한 설교가 아닙니다. 설교란 본문과 삶을 균형 있게 다루어야 합니다.

강단에 나타나는 신학적 취약점은 몇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설교에 본문 자체나 본문이 담고 있는 신학적 내용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이 누구신지, 구원과 죄가 무엇이며, 거듭남과 성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땅 위에서의 신자의 삶은 왜 전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당위성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에게 왜 거룩한 삶이 요구되는지 등 성경은 다양한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본문이든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과 활동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설교란 본문이 드러내는 것을 똑같이 드러내야 합니다. 신학적 취약점이란 본문이 말씀하는 의미 혹은 신학적 내용을 충분한 연구나 묵상 없이 본문에서 설교자가 원하는 주제를 선택할 때 나타납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기호나 설교의 목적을 위해 본문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본문에 통제시켜야 합니다. 성경 자체가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성경 본문을 다루지 않는 자체가 신학적인 내용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둘째, 설교에서 성경 말씀의 의미를 충분히 다루지 않고 삶의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점입니다. 설교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만, 현대 강단의 위험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읽는 정도만 다루고 주로 삶의 문제와 관련된 예화나 이야기로 설교를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실생활에 관련되는 말씀은 중요하지만 본문에 근거하여 삶으로 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설교입니다. 설교에서 신학적인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결국 기독교 설교의 독특성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셋째, 설교에서 본문이 요구하는 변화와 헌신이 약화되고 가벼운 복음이 자리한다는 점입니다. 기독교란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에 관한 것이며, 기독교인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본질적인 요구를 외면한 채 외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설교란 진리의 말씀으로 죽은 영혼을 살려내고 구원 받은 사람들을 거룩하게 살도록 만들어 제자삼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면 회심과 변화가 일어납니다. 현대 교회는 구체적인 변화의 단계 없이 일정한 과정을 거치며 교회를 다니는 것을 신자로 자동 연결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회심과 중생 혹은 성화와 교회가 무엇인지 모른 채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신학적 취약점, 원인이 무엇인가?
설교에서 신학적인 면이 약하게 나타나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본문연구의 부족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본문을 그대로 전하는 대언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의도와 중요한 신학적 주제 혹은 기독교에 중요한 교리들에 관한 충분한 연구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자체에 대한 연구가 부실하면 설교의 총체적인 위기를 가져옵니다.

둘째, 본문보다 삶의 교훈에 치중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설교는 점점 본문을 정직하게 다루는 노력없이 삶의 교훈으로 채워집니다. 진리란 적용되어야 하고 삶의 다양한 면과 연결되어야 하지만, 순서가 중요합니다. 삶의 변화는 반드시 본문에 근거해야 합니다. 성경을 근본으로 하는 기독교 설교와 일반 강연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신학적 설교는 어렵거나 불필요하다는 오해도 있습니다. 신학적 설교라는 어감은 딱딱하거나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게 합니다. 물론 언어와 배경을 연구해야만 이해 가능한 본문이 있는가 하면, 읽기만 해도 눈에 다가오는 본문도 있습니다. 성경의 기본 메시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 보여주고, 구원 받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뛰어난 설교자란 심오한 본문을 가장 쉽게 이해시키는 사람입니다. 신학적 설교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은 신학의 무용성과도 연관됩니다. 신학교에서 성경에 근거한 학문을 연마하지만 실전 목회현장에서는 신학의 옷을 벗어야 한다는 강조를 듣기도 합니다.

넷째, 청중중심으로 설교의 축이 이동할 때 나타납니다. 앞서 몇 주간 살펴본 것처럼 현대 설교학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설교의 축이 본문에서 청중으로 옮겨졌다는 점입니다. 본문을 대할 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찾고 성경의 핵심 사상을 가르치는 것보다 청중에게 맞추려고 하는 현상입니다. 청중을 배려하는 것은 목자의 심장을 가진 성경적 설교자의 기본자세이지만 청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본문을 이끌고 가서는 안 됩니다.

다섯째, 교회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설교도 신학적 설교를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내적 성장 뿐 아니라 외적 성장도 이루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생물이 자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외향적 교회성장을 목적으로 삼게 되면 성경적 설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것과 교회성장을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건강한 교회성장은 성경에 근거한 설교로 죽은 영혼을 살려내고 살아난 영혼을 제자로 세울 때 가능합니다.

신학적 설교,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첫째, 성경적 설교의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성경적 설교신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말씀 속에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신자의 삶에 대한 다양한 신학이 있고, 신학은 반드시 삶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설교자의 우선 관심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신학적 의도를 찾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이 가슴에 남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변화를 추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성경에 근거한 설교의 목적을 정립해야 합니다. 설교란 인간의 행복이나 자기계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깨우침입니다. 설교의 목적은 성경 기록의 목적과 일치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고, 구원 받은 사람을 바르게 교훈하고 믿음에 합당한 모든 선한 일을 하도록 기록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죄인의 구원과 신자의 성화가 성경 기록의 핵심입니다. 설교란 이러한 성경 기록의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말씀을 전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거룩한 생활을 위한 실천적 삶이 균형 있게 제시되어야 합니다.

셋째, 성경연구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신학적 설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전하면 필연적으로 신학적인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학적 설교는 성경본문의 집중적인 이해와 성경 전체의 배경 속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의 속성과 구원을 위한 사역 그리고 타락한 인류의 실존에 대한 이해를 요구합니다. 설교자가 1분 설교를 위해 1시간을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설교 준비에 몰두할 때 가벼운 설교를 통한 가벼운 교인이 아니라 심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삶을 던지는 헌신자를 탄생시킬 것입니다.

넷째, 교인들의 영적 성숙을 추구하는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설교자의 최대 위험 가운데 하나는 숫자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교인의 숫자가 설교자의 머리를 지배하면 수적 성장을 위해 정직한 설교를 포기하게 됩니다. 설교자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거룩한 삶을 위해 몸부림치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무리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제자를 탄생시키는 것이 성숙한 교회의 척도여야 합니다.

다섯째, 예수님을 바라보며 설교해야 합니다. 신학적 설교의 회복은 설교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자세에서 시작합니다. 최고의 설교자는 청중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설교자입니다. 설교란 지금 예수님이 이 시간에 몸으로 계신다면 주어진 본문으로 전하실 그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것처럼, 오늘날 설교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회중의 자리에 앉아 계신다고 생각하고 설교해 보십시오. 사람을 감동시키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할 때 진정한 성경적 설교가 가능합니다.

신학적 설교로 힘있게 교회를 세운다
설교는 교회를 세우기도 하고 무너지게도 합니다. 신학적 설교가 취약할 때 성도들은 성숙한 제자로 훈련받기보다 교회를 다니는 교인으로 만족합니다. 신학적 가르침이 분명하지 않을 때 이단의 속삭임과 잘못된 교리에 쉽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신학적인 설교의 회복은 본문에 뿌리내리는 설교자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설교자는 진리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엄중한 사명을 가지고 강단에 오를 때마다 영혼을 살리는 말씀을 대언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설교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고 있는 지, 교우들이 예수님을 체험하는지 깊이 살펴야 합니다. 성도들의 영적 성숙이란 진리의 말씀에 근거한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죄인된 모습으로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란 힘겨운 일이지만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사역입니다. 사탄의 심장을 떨게 만들고, 지켜보는 천사들이 숨죽이며 영혼의 탄생을 기다리게 하는 위대한 영적 전투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던져도 좋을 만한 사명, 그것이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고 영혼을 살리는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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