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본격적인 총선 준비에 들어갔다. 

국회에 입성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도 시작됐다. 30개가 넘는 (위성)정당이 나타났다. 다당제니 거대 양당 견제니, 정치혁신이니 하는 명분을 들고 있지만, 속내는 자신들의 금배지를 달기 위함이라는 것을 유권자들은 간파하고 있다.

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1년 9개월 만에 치러지는 선거로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국방·남북문제 등 윤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다. 한편으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사색당쟁으로 영일해온 우리 정치를 새롭게 바꿀 혁신의 기회기도 하다.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은 그의 명저 <기독교 강요> 중 ‘국가 통치’에서 정부의 임무를 “우상 숭배,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모독,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해방 그리고 그밖에 종교에 대한 공공연한 방해가 사회에서 발생하거나 만연하지 않도록 하고”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동성애 동성혼 합법화를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반대해왔다. 제22대 국회에서도 반성경적 악법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또한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는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종교시설을 출산돌봄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입법을 해야 한다.

또한 자살, 낙태, 산업재해, 중독, 묻지마 폭력 등을 예방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생명존중주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근대 기독교문화 보존을 위한 법률 제정 등을 이뤄내야 한다.

올해는 로잔대회 50주년이다. 1974년 7월 16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로잔에서 모였던 150여 국가 3700여 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합의해 로잔언약을 발표했다.

<로잔언약> 제5조 ‘그리스도인의 정치·사회적 책임’은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 행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가지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라고 천명했다. 그 정신을 실천하는 것 중 하나가 선거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투표권은 그리스도인의 정치․사회책임의 중요한 임무다. 투표권은 마치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와 같다. 또한 다윗의 손에 들려진 물맷돌과 같다. 투표권은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사 1:6)인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을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한 가장 합법적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반드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정치혐오’ 또는 ‘정치과잉’이라며 선거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도적이 와도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사 56:10)와 같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꼭 기억할 것은 정치도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이고 국회는 의회선교의 장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개혁을 넘어 정치권 복음화와 기독교 가치를 구현할 선량들이 국회에 입성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성경의 가치가 우리 국민의 행위의 표준이 되는 나라·지역과 계층 그리고 노사 갈등이 없고, 서민경제가 회복되는 더불어 행복한 나라, 산업현장과 일상의 삶이 안전한 나라가 될 것이다.

또한 핵과 전쟁의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 젊은이들의 취업과 결혼하기 좋은 나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집 담장을 넘어가는 출산하기 좋은 나라, 해외 기업들이 투자하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특히 피 흘림이 없는 평화통일을 이루는 나라,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나라의 비전을 우리 눈으로 목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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