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계기로 부활 기쁨 더 멀리까지…기독교 가치 담은 긍정적 문화 확산돼야


“나는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는 사명자이고 싶습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증경총회장)가 4월 9일 열렸던 2023년 한국교회 부활절퍼레이드 실무대회장 직을 수행했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광장에서 진행한 퍼레이드는 한국교회 최초의 부활절 행렬로, 언론을 통해 기독교인들은 물론 국내외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소강석 목사에게 퍼레이드의 의미와 문화사역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 2023년 한국교회 부활절퍼레이드 실무대회장을 맡으셔서 수고하셨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퍼레이드의 순서들이 잘 진행됐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사실 저는 우리 교단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냈기에 부활절 페스티벌의 실무대회장으로 섬기는 것은 옷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영훈 목사님과 CTS 방송국에서 간곡한 요청을 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회를 앞두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해괴한 말들이 도는 것입니다. 정말 최소한의 합리적인 신앙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망상적 언어를 구사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회를 마치고 보니 정말 제가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라도 한국교회를 대표해서 그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한국교회가 더 이상 분열과 증오를 양산하는 정치 편향적인 집단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 행복의 종교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을 하면 지키는 사람이고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하나님이 설계해 주신 타임라인에 따라 소명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 부활절퍼레이드는 한국교회 최초의 행사였습니다. 부활절퍼레이드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지 140년 만에 최초의 행사였습니다. 특별히 코로나를 지나면서 움츠려있던 한국교회의 생명력을 다시 한번 동력화하는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부활절 퍼레이드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기념하고 선포할 뿐만 아니라 건전한 기독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한 것이라는 걸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문화예술 공연이 펼쳐지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퍼레이드였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실추된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고양시킬 수 있는 좋은 문화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어느 특정 집회 때문에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정치 편향적인 집단처럼 보인 면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사랑과 화해, 행복을 지향하는 교회의 본연의 이미지를 보여준 것 같아서 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연등 행사보다 더 동력 있게 부활절 퍼레이드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목사님께서는 문화 사역에 관심이 많으시고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새에덴교회에서 시행하신 특징적인 문화 사역을 정리해서 소개해 주신다면.

= 이 시대는 문화사적 대변혁기를 맞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문화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간 자리에는 기독교 문화가 생성되고 불교가 오래 있었던 곳은 불교문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이 많거나 동성애와 관련이 깊은 곳에 동성애 문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모든 문화는 입법으로 가게 돼 있어요.

더구나 요즘은 문화사적 대변혁기를 맞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몰라요.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 열려 있지 않아요. 소위 말하면 문화적 보수와 신학적 보수를 구분을 못 하는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 신학적 보수보다 문화적 보수가 더 강해요.

그러니까 문화적 보수성이 강한 분들은 외적인 경건과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80년대에 강남의 대형교회들이 몇 있었어요. 어떤 교회는 예배당을 민방위 교육 장소로 빌려주며 전도를 했어요. 또 어떤 목사님은 인문학이 묻고 성경으로 대답하는 아주 폭넓은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어떤 교회는 신앙적 보수뿐만 아니라 문화적 보수의 명분으로 닫힌 거예요. 그런데 역시 문화적으로 열린 교회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흥을 했다는 거예요.

저는 누구보다도 개혁신학의 정체성과 신학적 보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문화적인 면에는 많은 부분에 내 마음을 열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명의 목회자가 당시로서는 단일 건물로 최대 교회를 지었어요. 이 예배당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고민도 많았어요. 그때만 해도 정말 한국에서 두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교회였으니까요.

그때 레인보우 페스티벌이라는 고품격 문화공연을 기획하였어요. ‘JUMP’, ‘난타’ 웃찾사 개그 콘서트, 뮤지컬 ‘맘마미아’, 윤도현 밴드, 남진, 장윤정 콘서트 등을 하였어요. 민방위 교육이 있었으면 저도 민방위 교육 장소로 빌려주었을 거예요. 그 대신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주님께 기도한 거예요. “오로지 저는 복음 전도하려고 합니다. 영혼 전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공연이 다 끝나고 청소도 다 끝나면 조용한 밤에 본당에 가서 제 마음을 정화하고 예배당을 정화시킨다는 마음으로 예배당 의자를 매만지고 다니면서 기도를 하였어요. 가수 남진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공연에 왔다가 저희 교회에 나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목사님 하면 또 기억나는 일이 총회장 재임 당시 오페라 형식의 <불의 연대기>를 무대에 올린 것입니다. 그 당시 어떤 생각으로 오페라 형식을 취하셨는지요?

= <불의 연대기> 는 우리 교단 최초의 역사 갈라 콘서트였습니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이런 역사 갈라 콘서트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의 연대기>는 제가 직접 대본과 작사에 참여하고, 총감독을 맡아 준비한 야심작이었습니다. 저는 부총회장 재임 시절부터 기독신문에 ‘총회 100년을 설계하다’는 제목으로 총회의 역사와 비전을 담은 글을 46회 연재하면서 뮤지컬 ‘불의 연대기’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공연에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사실 세종문화회관을 대관하여 교계를 넘어 정·재계, 문화예술계 인사까지 대거 초청하여 합동 총회의 위상과 역사성을 높일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종문화회관을 대관하여 놓았는데 코로나19로 인하여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어서 목장기도회 기간 동안 뮤지컬을 해설과 노래가 있는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변형하여 공연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당시 상황으로서는 이 목장기도회마저도 열릴 수 없었어요. 강원도에서 해보려고도 했지만, 코로나가 절정기여서 강원도의 어떤 리조트도 빌릴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희 교회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협조를 받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불의 연대기>는 합동 교단의 역사를 총 11곡의 노래와 해설로 승화시킨 고품격 문화공연입니다. 박형룡, 정규오, 차남진, 박종삼, 김윤찬, 백남조 등 13신앙동지회, 명신홍, 이영수, 서기행, 홍정이 등 오늘의 합동 총회가 있기까지 피와 땀과 눈물의 희생을 바쳤던 선진들의 노래가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유창한 연설이나 은쟁반에 담긴 옥구슬 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언어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무조건 하나를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갈라 콘서트를 통하여 총회 안의 대립과 대결 구도를 종식하고 첫사랑, 첫 소명의 눈물 안에서 하나로 만드는 정서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총회 역사의 팩트를 담고 있으면서도 서정적인 해설과 노래, 22명의 출연진, 42명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어우러져 역사의 대서사시를 연출하였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현장에 있던 모든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감동의 하모니를 이루었습니다. 어떤 분은 갈라 콘서트를 보고 나서 “지금까지 이런 총회장은 없었다”라는 총평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이렇게 여러 가지 사역으로 문화 활동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화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성경도 그 시대의 문화적 배경에서 기록되었고 그 문화의 옷을 입거나 문화적 언어로 기록되기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거룩한 문화, 혹은 기독교 가치가 담겨 있는 긍정적 문화를 형성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기독교인보다는 안티 기독교인들이 문화의 중요성을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반기독교 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동성애를 조장하는 안토니오 그람시는 평등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 헤게모니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모든 사회와 문화에 있어서 헤게모니를 쥐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반기독교 사상가들은 먼저 언론부터 장악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국민의 의식과 상식, 세계관, 문화관을 바꾸는 작업을 합니다.

언론의 반복을 통해서 계속 무의식적 세뇌를 시키는 거예요. 검은 것도 자꾸 흰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하면 흰 것이 된다는 거지요. 예전에는 동성애라는 말만 나와도 혐오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동성애자들이 언론 노출을 통해서 계속해서 성소수자의 핍박 받는 모습으로 보여 졌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는 문화전이고 언론전인데 한국교회가 적어도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 이론을 염두에 두면서 프레임 싸움에서도 승리하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런 문화의 중요성을 놓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 시를 쓰고 교계의 담을 넘어서 일반 메이저 기자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하며 메이저 신문들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문화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교류는 하지만 결국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은 기독교 문화의 창달이요 거룩한 문화를 융성케 하는 목적 때문입니다.

 

▲ 복음의 메시지를 문화라는 매체를 사용해 전달하실 때 주의하시는 바는 무엇입니까?

= 지금까지는 설교가 어떤 명제적이고 주제 중심이며 설득 중심이었어요. 주지주의 시대에는 가능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포스트모던이고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부류로 나뉘게 되었어요. 이런 분들은 대부분 인지편향 혹은 선택적지각 요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강요를 중시하고 설득을 중시하는 설교를 하다 보면 아예 귀를 닫거나 아니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안 들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있어 이야기, 스토리라고 하는 것은 이야기 공동체를 이루고 더 나아가 부족 공동체를 이루게 합니다. 그래서 요즘 설교는 시대의 트렌드와 문화에 맞게 해야 돼요. 그게 바로 들리는 설교, 소통하는 설교, 감동을 주는 설교입니다. 언어 행위 이론으로 볼 때는 단순 발화행위, 의미 수반 발화행위, 효과 수반 발화행위입니다. 이게 바로 원포인트 중심으로 한 스토리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스토리텔링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집중을 하게 돼 있어요. 아무리 다양한 계층, 선택적지각의 요소를 갖고 있는 분들도 스토리의 판을 깔고 이야기식으로 설교를 전개해 나가면 다 듣게 돼 있어요. 물론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고 해서 개그나 만담으로 가라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성경은 원래 이야기고 사건이었어요. 그 이야기의 사건을 모세 때부터 단문으로 축약된 게 성문화된 게 성경, 캐논이죠.

그런데 적어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부터 전에 내려온 원래 내러티브를 재현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말하는 거예요. 그럴 때 설교가 들리기도 하고 소통이 되기도 하고 생명력이 있어서 감동을 받게 돼요. 언어학 이론에 의하면 효과 수반 발화행위를 일으키게 되는 거죠. 이야기이면서 복음, 복음이면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의하는 것이죠.

 

▲ 목사님께서 구령의 열정을 갖고, 성도들에게 들리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평소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 저는 강박증이 있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설교 아우트라인을 3주, 4주를 미리 다 준비해 놓고 원고도 이미 전 주 것을 거의 다 완성해 놓습니다. 이번 주 설교가 끝나면 이번 주에 할 설교문을 또 고치고 또 음독하며 또 고칩니다. 완전히 원고를 낭독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고가 되고 원고가 내가 되어서 원고와 내가 일체가 되어 내 자신이 설교가 되도록 하는 것이죠.

고인이 되셨습니다마는, 유명한 배호라는 가수는 노래가 나오면 곡을 익히지 않고 먼저 그 가사를 100번 이상을 암송하고 묵상한다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그 가사와 곡이 얼마나 일치되는가를 본다는 거예요. 조금 어색하면 작곡가에게 일러서 이 부분을 좀 수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배호만 그렇습니까? 작년에 불후의 명곡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패티킴이 출연하였는데 노래 두 곡을 6개월을 연습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패티킴의 노래가 아니라 패티킴 자신이 노래가 되는 걸 봤어요. 오늘 설교를 보면 원고 읽는 것도 서툴고 원고와 설교자의 인격이 따로 노는 것을 봐요. 세상 노래도 자기 자신이 노래가 되려고 노력하는데 하물며 설교자이겠습니까?

저는 누가 노래를 잘하느냐, 누가 설교를 잘하느냐,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 자신이 노래가 되고 나 자신이 설교가 되어야 해요. 그러려면 설교자는 자기 비하가 있어야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광대도 돼야 해요. 본문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할 때는 자기 비하도 있어야 해요. 하나님의 어릿광대도 되어야 해요. 이건 제 얘기가 아니라 남아공의 스텔렌보쉬대학의 요한 실리에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루돌프 보렌은 설교를 “성령과 함께 춤을 추고 놀이하는 행위”라고 했고, 데이비드 버트릭은 설교를 “하나님의 신비의 가장자리에서 춤추는 사역”이라고 했어요. 옛날에는 아주 고매하고 품격 있는 설교자의 행위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낸다고 가르쳐 왔어요. 당연히 그런 부분도 필요하죠. 그러나 내가 비하되고 망가짐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는 이런 설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토요일 저녁 잠들 때까지 원고를 보면서 내가 어떻게 원고보다 더 충만한 설교를 할 것인가는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 목사님 하면 한국교회 연합운동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연합운동에 대한 바람을 말씀해 주십시오.

= 2010년이나 2011년 즈음, 한국교회 선배 어른들 몇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도저히 몇몇 사람들과 함께할 수가 없어서 한기총 말고 새로운 연합기관을 만들어야 되겠으니 좀 도와 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때 그분들의 손을 잡으면서 진심을 담아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1년만 참으면 됩니다. 아니 7~8개월만 참으면 됩니다. 그때까지 참으셔야 합니다. 한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면 돌아오고 싶어도 못 돌아옵니다. 나누는 건 쉽지만, 다시 합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동로마교회가 망했던 것은 끊임없는 싸움과 분열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끝까지 말리고 말렸습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계속 서로 충돌하고 싸우다가 마침내 2012년에 연합기관이 분열하게 되고 또다시 분열을 거듭하게 된 것이죠.

저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연합론자, 화합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줄기차게 연합기관이 하나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줄 모릅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러 상황 때문에 지체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타임라인을 따라 소명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갈 것입니다.

 

진행=노충헌 국장 mission@kidok.com
사진=권남덕 부장 photo@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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