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철 목사(Ph.D., 신학부장, 마포중앙교회)

강도권은 지위향상 수단 아니며 소명에 의해 부여된다

I. 서론

신현철 목사(Ph.D., 신학부장, 마포중앙교회)
신현철 목사(Ph.D., 신학부장, 마포중앙교회)

강도권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세기 후반부터다. <헤르마스 목자서>(The Shepherd of Hermas)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중에게 설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대를 거듭하면서 강도권에 대한 이해는 변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미국의 제2차 대각성 운동이 있고난 후 여성강도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루돌프 보렌(R. Bohren)이나 폴 스티븐슨(Paul Stevenson)에 의해서 일반 성도들에게도 강도권이 있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다.

우리 교단 역시 여성사역자의 강도권(the Rights to Preach in the Church) 부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따라 조직신학적, 성경신학적, 역사신학적 연구들이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강도권이 교회법적 개념임을 간과했기 때문에 실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개혁신학적 입장에서의 교회법 신학을 중심으로 강도권의 의미를 살피고, 여성에게 강도권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한 지를 검토하겠다.

II. 강도권에 대한 이해

교단 헌법은 ‘강도’(講道)라는 단어를 목사의 직무와 연관시켜 사용하면서 그 의미상으로 지교회에서 담임목사에게 주어진 권리로 설명한다. 이 말은 예배모범에서 ‘설교’라는 말로 대체하고, 노회 관할 아래 있는 어느 지교회에서든지 노회에서 보낸 사람 외에는 아무를 막론하고 당회나 목사의 허락 없이는 설교함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도권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적으로 해석하고 설교하는 권리,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 또는 가르치게 하는 권리, 셋째는 말씀과 연관된 성례를 시행하거나 시행하게 할 권리 등이다. 즉 이 권리는 목사의 목회적 권리에 해당하는 것이며, 강도권을 위임받은 목사에게만 주어지는 교회의 대표적 치리권이 됨을 나타내는 것으로 목사의 당회장권과 일치한다.

그러나 목사의 강도권만으로 교회의 말씀사역이 완성될 수는 없다. 강도권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교회법은 장로의 직무를 언급하면서 “강도의 열매를 알아보게” 하고 있고, 다양한 시스템을 통해서 목사의 강도 사역을 보충하게 하고 있다. 그때 강도사역에 대한 협력자에게 강도권과 유사한 권한이 주어지게 되는데, 이를 ‘의사 강도권’(擬似 講道權)이라고 할 수 있고, 부목사, 강도사, 전도사 등 말씀사역자에게 주어진 ‘강도적 사역권’과 구역교사, 주일학교 교사 등과 같은 일반성도에게 주어진 ‘강도적 봉사권’으로 구분된다. ‘의사 강도권’은 목사의 강도권과 닮아 있으나, 강도권자인 목사의 지도와 감독 아래서 행사될 뿐인 것이다.

III. 강도권 귀속의 교회법 신학적 근거

강도권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지도하고, 감독하는 고유하고 배타적인 권리이다. 이것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오직 담임목사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그 본질은 목사의 개인적 능력이나 역량이 아닌 소명에 따른 것이다. 즉 교회의 대표적 치리권자로 소명되었다는 것이 목사에게 강도권이 부여된 기초가 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법은 이를 반영한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정치 제4장 2조에서 “목사 될 자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학식이 풍부하며 행실이 선량(善良)하고 신앙이 진실하며 교수에 능한 자가 할지니”라고 한다. 그리고 강도사 고시를 거쳐 목사로 안수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충분한 신학적 소양이 있어야 하고, 교단적으로 그 실력을 공인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양이 있다고 강도권이 부여되지 않는다. 반드시 청빙(Calling)과 임직(Ordination), 그리고 위임(Installation)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목사로 위임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하여 신실하게 순종할 것을 서약함으로 응답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그렇게 서약으로 응답하는 자들에게 공교회는 안수하여 목사로 세우고, 공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직분은 안수를 통해서 위임한다. 특히 위임(Installation)은 두 가지 의미에서의 부르심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다른 하나는 지교회로부터의 부르심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적당한 듯한 사람들을 일반 신도의 합의와 승인을 얻어서 임명해야 한다고 했다. 에반스(Evans)가 감독에게 설교의 책임이 있는데, 그 이유는 그는 교회의 대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치리권이 없이는 결코 강도권이 실효적일 수 없으며, 지교회의 허락 없이는 어느 누구도 그 교회에서 설교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강도권에는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의 필요를 배제할 수 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르심에 있다. 그러므로 여자나 남자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자신의 지적 능력을 기반으로 강도권을 주장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VI. 여성 강도사 설치에 대한 타당성 검토 및 제안

장로회주의의 신학과 교단의 헌법 질서는 강도권과 관련하여 목사에게만 부여되는 고유한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고, 또 총회는 이미 수차례 반복적인 결의를 통해서 여자 목사는 비성경적인 것으로 결론을 낸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여성의 군목, 선교사로 파송 되어야 하는 등의 현실적인 이유를 제시하며 여성 사역자에게도 강도권을 부여하고, 또 강도사로 인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헌의들이 계속되었다.

여성의 강도권의 당부를 논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살펴야 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이다. 그것은 크게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남자와 여자는 모든 것에 평등하다는 평등주의적 입장(Egalitarianism)이고, 다른 하나는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지만, 역할과 기능은 다르다는 상호보완주의적 입장(Complementarianism)이다. 우리 교단은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물론 평등주의자들의 주장은 여성의 가치를 귀중하게 보았다는 측면에서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이나 그것은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거나 강도권을 부여해야 충족되는 것은 아니며,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안수나 강도권을 인정하게 되면 성경적 권위의 실질적 훼손과 창조질서의 파괴를 비롯한 다양한 측면의 영적, 실천적 폐단이 발생하게 되며, 그것의 복구는 불가능하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여성사역자위원회’는 제105회 총회보고서에서 여성 사역자에게 강도권을 부여하고 강도사로 인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을 청원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정치문답조례>는 아주 긴 글로 답변하는데 불가하다는 것이다. 여성이 일부분 말씀으로 가르치고 권고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이 목사후보생이 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분명히 선언할 뿐만 아니라 여자가 교회의 정식 모임에서 공식적으로 설교자로 세우는 것을 금한다고 했다. 또한 <정치문답조례>는 “강도사 인허를 받은 사람은 목회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설교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고 하므로 강도사는 목사가 되는 준비 과정임을 분명히 함과 더불어, “목사로 장립 받기를 원치 않는 목사후보생을 강도사로 인허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단순히 매우 유용한 하나의 수단으로 강도사 인허를 받으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목사가 되려는 목적이 아니고서는 강도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에게 목사 안수는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강도사직을 허용하려는 것은 강도사직의 본질을 해하는 것일 뿐이다.

VII. 결론

개혁교회에서 말씀보다 더 권위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강도권의 문제는 개혁교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교회의 모든 치리권을 대표하는 권리이며,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말씀 사역 전체를 관리하는 것이며, 동시에 말씀과 성례전적 권리의 총합으로 당회장인 목사에게 귀속된 것이다. 그러나 담임목사 혼자 교회의 말씀사역을 담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보완, 협력할 필요가 있다. 교회법은 이를 위하여 부목사, 강도사, 전도사 등의 말씀 봉사자를 세우게 하거나, 주일학교 교사, 구역교사, 각 소그룹 리더 등의 말씀 봉사자를 두게 했다. 간혹 이들이 감당하는 말씀 사역(또는 봉사)을 강도권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대표적 치리권을 의미하는 강도권과는 다르며, 강도권을 보좌 협력하는 기능을 갖기 때문에 ‘유사 강도권’ 또는 ‘의사 강도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본 교단의 교회법신학에 비추어 볼 때 여성의 강도권(대표치리권)은 인정할 수 없고, 여성에게 강도사직을 부여할 수도 없다. 다만 강도적 사역권이나 봉사권을 통해서 목사의 강도권을 보좌, 협력할 뿐인 것이다.

여성 사역자의 지위 향상을 이유로 강도권을 인정하자는 주장은 다양한 실천적 유익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여성 사역자의 탁월성과 여성의 사역에 대한 다양한 필요 혹은 시대적 요청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강도권은 어떤 탁월성에 기초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소명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며, 어떤 개인이 지위를 향상하기 위한 도구나 수단일 수 없다. 따라서 강도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겠다는 것은 잘못이다. 여성도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통해 충분히 강도적 사역, 혹은 봉사를 할 수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면 된다. 그러므로 섣불리 여성의 강도권을 인정하거나 여성에게 강도사직을 허락하므로 개혁주의 성경관의 본질을 훼손하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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