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산교회는 서천 최초의 장로교회이자 지역을 이끌어가는 신앙공동체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사진은 예배당 전경.
기산교회는 서천 최초의 장로교회이자 지역을 이끌어가는 신앙공동체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사진은 예배당 전경.

서천 최초 장로교회, 헌신의 역사 기록하다
박중무 장로 기적적 치유 계기로 1902년 설립 … 지역섬김 진력, 부흥 시대 이끌어

둘째아들도 아프기 시작했다. 역시 백약이 무효였다. 금쪽같은 자식이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가는데, 아버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똑같은 증세를 보이던 맏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게 불과 한 해 전의 일이었다. 이렇게 아들 형제 둘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일까.

기산교회의 역사가 담긴 옛 당회록과 세례교인 명부 등의 문서들.
기산교회의 역사가 담긴 옛 당회록과 세례교인 명부 등의 문서들.

1899년 충남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 수출부락에 살고 있던 박난수씨에게는 답답한 가슴만 두드리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이웃 동네 전북 군산을 다녀온 친구가 귀를 번쩍 틔게 하는 소식 하나를 가지고 왔다.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예수를 전파하며, 병원을 세워 운영하는데 환자들을 아주 잘 치료하더라는 이야기였다.

기산교회 설립의 계기가 된 인물이자 초대 장로로 섬긴 박중무.
기산교회 설립의 계기가 된 인물이자 초대 장로로 섬긴 박중무.

행여 때를 놓칠세라 박난수는 당시 열세 살이던 아들 중무를 들쳐 업고 망월리 포구로 달려갔다. 목선을 타고 군산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마지막 희망을 붙잡는 간절한 심정으로 구암동 예수병원을 찾았다. 다행히도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기 시작한 중무의 병세는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차도가 생겼다. 이듬해 4월 무렵에는 완연하게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예수를 믿으시오. 그래야만 구원을 받습니다”는 선교사의 권면을 마음 깊이 새기고 돌아온 두 사람의 귀향을 반기며, 마을 모두가 기뻐하고 놀라워했다.

1901년 초 드디어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전킨(한국명 전위렴)이 말을 타고 수출부락으로 찾아왔다. 이미 중무의 기적적인 치유를 목격한 바 있는 마을 사람들은 선교사가 전하는 복음에 마음을 열고 호응했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자주 마을을 찾아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게임도 가르쳐주며 즐거이 어울리곤 했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며 시나브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박난수 김창건 방태윤 양치삼 등은 수출부락을 예수마을로 바꾸기에 힘썼다.

마침내 1902년 3월 1일 김창건의 집에서 예배가 시작되며 현 기산교회의 전신인 화산교회가 설립됐다. 화산교회는 착실히 성장해 교인 수가 점점 늘었고, 1915년에는 30평짜리 목조 예배당을 건축하기도 했다.

1952년 화산교회 시절 찬양대원들 모습.
1952년 화산교회 시절 찬양대원들 모습.

그 사이 어린 중무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의 체험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해 설립된 화산교회에서 중무는 누구보다도 신앙이 쑥쑥 자라났다. 그리하여 1925년 12월 12월 박중무는 화산교회 초대 장로가 된다.

박중무가 장로로 시무하던 시절에 대해, 후손인 박은출 원로장로는 <기산교회 100년사>를 통해 이렇게 증언한다. “동네에 빈곤한 가정들이 많아서, 논을 주어 경작하게 하며 전도의 문을 열었다. 그들을 집사와 장로를 세워서 교회가 날이 갈수록 소문이 났다. 근동부락과 타 면까지 알게 되어 곳곳에 교회들이 세워지게 됐다.”

1968년 화산교회 시절 거행된 방권식 박은출 장로의 임직식과 예배당 헌당식.
1968년 화산교회 시절 거행된 방권식 박은출 장로의 임직식과 예배당 헌당식.

또한 박중무는 이웃 종지리교회에 다니던 월남 이상재 선생과 자주 교유하며 신앙에 대한 이야기, 조국의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도 한다. 박난수와 박중무로부터 일어난 믿음의 가문은 이후 5대째 든든히 이어지며 교회를 든든히 받들어왔다.

세월이 흘러 1975년 화산교회와 기산교회와 분립이 이루어진다. 이후 각기 예배당도 신축하고 일꾼들을 세우면서 서로 다른 역사를 써내려가던 두 교회는 나누어진지 13년만인 1988년 12월 4일 합병해 다시 하나가 된다.

1976년 기산교회에서 열린 충남성경학 개강식.
1976년 기산교회에서 열린 충남성경학 개강식.

합병은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가지고 왔다. 기산교회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하면서, 서천 최초의 장로교회라는 역사성과 탄탄한 교세를 바탕으로 지역을 리드하는 신앙공동체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충남노회 시절부터 노회에서 운영하는 성경학교를 비롯해 각종 사업과 행사들을 유치하고 적극 협력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기산교회의 위상 또한 1986년 충청노회가 충남노회로부터 분립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한선수 임문수 오윤원 조성태 이용태 박영길 안영규 김병만 목사 등을 이어 2001년 기산교회 제18대 담임교역자로 부임한 이효섭 목사는 바로 다음해 설립 10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데 이어, 2007년 현재의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부흥의 시대를 이끌었다.

2007년 새 예배당을 짓고 이전하기에 앞서, 옛 예배당에서 가진 마지막 예배를 기념하며 촬영한 이효섭 목사와 기산교회 교우들.
2007년 새 예배당을 짓고 이전하기에 앞서, 옛 예배당에서 가진 마지막 예배를 기념하며 촬영한 이효섭 목사와 기산교회 교우들.

설립 120주년을 앞둔 올해에는 ‘미래의 백년을 힘차게 열어가는 교회’라는 목표를 세우고 힘차게 전진하는 중이다. 특히 120주년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김호창 장로)를 결성해 비전센터 건립 등을 구상하며 추진하고 있다. 

이효섭 목사는 “선교사들의 섬김과 사랑을 바탕으로 세워진 교회, 믿음의 선배들이 깊은 헌신과 열심을 가지고 이어온 교회라는 역사를 기억하면서 앞으로도 약한 이들을 돕는 교회,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로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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