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부활절]
필리핀 남윤정 선교사, 뜻하지 않던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사역 직격탄
봉쇄령에 교회 지키려 가족과 기약없는 이별 … “부활의 권능 임하길”

어김없이 돌아온 부활절이 코로나19 사태로 시들어가던 한국교회에 다시 생명수를 공급한다. 예년과 같은 분위기는 아닐지라도, 고난과 부활의 복음이 신음하는 이 땅의 교회들과 뭇 생명들에 소망의 빛으로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마음들이 일어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 발등의 불을 끄는데 급급한 사이, 해외 선교현장에서는 더 다급하고 애절한 고통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잠시 잊고 있던 그곳에서는, 그리고 우리의 동역자와 형제들에게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겪는 고난의 현장에도 부활의 소망이 넘쳐나기를 기원하며 한 선교사의 사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목숨을 걸고 사역지를 지키는 남윤정 선교사. 이제 한국교회가 그를 지켜줄 차례이다.

3월 29일 아침, 주일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자신이 섬기는 안티폴로의 다같이교회를 찾은 남윤정 선교사는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헛것을 본 게 아니란 걸 확인하자 이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묵직하게 치밀어 올랐다. 눈물이 났다.

매주일 입추의 여지없이 예배당을 가득 채우던 성도들, 그들과 소리 높여 부르던 찬양의 모습은 코로나19 사태가 필리핀을 강타한 이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풍경이 됐다. 남 선교사 자신부터가 거주하는 곳에서 교회당까지 찾아오려면 길목마다 지키는 무장 군인들 혹은 공무원들의 검문을 여러 차례 통과해야 했다.

‘행여나 체온이 높게 나오지는 않을까, 검문소에서 막은 길을 열어주지 않고 되돌려 보내면 어떻게 하나.’ 잔뜩 긴장한 채 번번이 검역 차례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맡긴 영혼들을 방임한 채 떠날 수 없다는 책임감과 사명감까지 흔들지는 못했다.

몇 주 전만 해도 남윤정 선교사는 대한민국과 조국교회가 코로나19 사태를 잘 극복하도록 은혜를 주시라고 교회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염려가 됐지만 필리핀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바다 건너편에 국한된 이야기일 줄로 알았다.

그런데 필리핀에서도 확진자가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들리는가 싶더니, 덜컥 교육청에서 수도권 학교들에 휴교령을 내렸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는 대통령이 마닐라에 대한 봉쇄령을 발표했다. 감염의 공포가 현실이 됐다. 당장 온 도시에 생필품 부족사태가 일어났다. 마스크를 구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남 선교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가족과 함께 도심에 머물 것인가. 빈민가의 성도들과 끝까지 함께할 것인가. 아내와 세 자녀를 지키려면 교회사역을 포기해야 했고, 교회를 지키려면 가장의 책임을 내려놓아야 했다. 결국 선교사는 가족과의 기약 없는 작별을 택했다.

코로나19의 공포 속에서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필리핀 다같이교회의 성도들.

다같이교회는 남 선교사가 마닐라 외곽 안티폴로의 한 마을에 5년 전 세운 교회이다.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해 사역할 수도 있었으나, 현지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타갈로그어까지 배워가며 성심을 다해 섬겼다. 그 결과 다같이교회는 짧은 기간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했고, 선교사에 대한 현지인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그러나 믿음의 깊이로만 보자면 다같이교회의 수준은 아직 연한 순과 같았다. 잠시라도 돌봄이 해이해지면 언제든 예수 믿기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신앙의 뿌리와 기반이 약했다. 남 선교사가 지역교회협의회나 총회세계선교회(GMS) 지역선교부의 예배 중단 지침을 따르지 못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SNS를 활용한 영상예배로의 대체는 이곳에서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인터넷이나 휴대폰 없이 지내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아예 집안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가정들도 있었다. 일단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구해 모든 성도들에게 나누어주며 방역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교회를 지키기로 결심하면서 교우들에게 이런 다짐을 받았습니다. 굳이 예배당에 오지 않고 각 가정에서 예배해도 괜찮지만, 어떻게든 교회 문은 닫지 말자고. 제가 예배를 인도할 수 없게 될 상황이 오면 행정팀장이, 그에게도 일이 생기면 다음엔 재정팀장이, 다음엔 주방팀장이, 다음엔 구역장이 대신해 달라고, 교회당 문 열쇠를 갖고 계신 분에게는 만약 아무도 오지 못한다면 혼자라도 꼭 예배하시라고 당부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다들 울었고, 저도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배를 계속하며 감염 확산을 막는 조치들을 취하는 것 못지않게 시급한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심각한 식량난이었다. 마닐라가 봉쇄되면서 성도들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마을에서 가까운 시장의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그나마 살 수 있는 물건 자체가 별로 나오질 않았다.

교우들의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어렵게 마련한 쌀을 다같이교회는 이웃들과 조금씩 나눈다.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의 고난과 부활에 참예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사람들을 굶주림으로부터 구해야 했다. 정부에서 배급하는 가정당 3kg의 쌀, 라면 1봉지, 캔 2개는 보통 사흘이면 동이 나는 양이다. 그나마도 두 주 동안 겨우 한 차례 지급에 그쳤다.

남 선교사는 일단 수중의 재산을 모두 털기로 했다. 거기엔 세 자녀의 학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급하게 구한 쌀을 일단 가난한 교우들 가정에 먼저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매일처럼 반갑게 인사주고 받으며, 다정히 지내온 이웃들도 외면할 수 없었다. 고심 끝에 그들에게도 식량을 나누기로 결정했다.

어찌어찌 여러 톤의 쌀을 외부에서 구해왔어도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닐까. 공연한 일을 벌였나 싶은 후회를 품고, 가족에게 안부전화를 하며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내는 걱정과 달리 괜찮다며, 잘했다며 오히려 밝은 목소리로 남편을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한 달을 버텼다. 고국에서 오는 후원금이 눈에 띄게 줄었고, 봉쇄령은 언제 풀릴지 아직도 기약이 없었다. 바이러스 확산세 또한 도무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커졌다. 새로운 예배 지침을 내려야 했다.

“이제부터는 모두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합시다. 교회당에는 순번을 정해 딱 한 명씩만 나오면 됩니다.”

그렇게 결정한 바로 다음 주일. 외로운 예배를 각오하고 교회당을 찾은 남 선교사의 목전에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진 듯 했다. 열댓 명 성도들이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며 짓는 미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 약하디 약한 사람들, 그럼에도 끝까지 주님 앞에서 신앙을 지키겠다고 용기 낸 사람들. 그들 앞에서 선교사는 울컥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지 남윤정 선교사는 모른다. 당장 일 년치 예배당 임대료, 100권의 성경 구입비, 그리고 이보다 더 절실한 긴급 식량비가 필요한데 도무지 어떻게 조달해야 할지도 그는 알지 못한다.

다만 능력의 주께서 자신들을 돌보아줄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한국의 동역자들이 쉬지 않는 기도로 다같이교회를 격려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남 선교사는 2020년의 부활주일을 맞이한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성도들이 주일성수의 가치와 의미를, 자신보다 약한 이웃들에게 베푸는 기쁨과 보람을 새삼 배우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하게 나타나는 다같이교회로 자랄 수 있도록 열심히 지키고 섬기겠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사명을 지키는 선교사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지켜야 할 차례이다. 부활의 권능으로 임하시는 주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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