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포럼 프로그래머>

노벨문학상과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문학상 중에 하나인 프랑스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는 ‘로맹 가리’ 뿐이다. 한 번은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같은 상을 받았다. 영화 <새벽의 약속>은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뜨거운 열정과 불꽃같은 집념으로 아들을 길러 낸 어머니 ‘니나 카제프’와 그 마음을 온몸으로 받아내어 마침내 세상이 인정한 글로 풀어낸 위대한 작가 로맹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러시아 태생의 유태인 니나는 하나밖에 없는 어린 아들 로맹을 데리고 모스크바를 떠나 폴란드 빌나에 정착한다. 비록 변변치 않게 떠돌이 모자장수로 생계를 꾸리지만 아들만큼은 언제나 먼저 먹이고 입힌다. 그러나 폴란드에 얹혀사는 이방인 니나는 이웃들에게 멸시만 당할 뿐이다. 니나가 아들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이웃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다. “당신들은 이 아이가 누군지 몰라서 그래. 얘는 프랑스 대사가 될 거야. 레종 도네르 훈장을 받을 테니까.” 그 대가로 온갖 수모와 비아냥거림은 아들 로맹이 대신 받지만, 훗날 엄마를 위해 세상에게 복수하리라는 마음의 약속도 가져간다.

나중에 대작가로서 자기를 세상에 표현한 로맹 가리는 실제로 프랑스 외교관으로서, 또 군인으로서 레종 도네르 훈장을 받아 그때의 다짐을 이루어 어머니에게 바친다. 정말로 드라마틱한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로맹의 인생을 ‘에릭 바르비에’ 프랑스 감독이 동명 소설을 각색하여 스크린에 펼쳐 놓았다. 이 파란만장한 모자의 삶을 각각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 ‘샤를로트 갱스브루’와 ‘프랑스와 오종’ 감독의 영화 <프란츠>에서 유약한 연인 ‘아드리앙’역으로 프랑스 ‘세자르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피에르 니네이’가 완벽하게 연기한다.

에릭 바르비에 감독이 풀어내는 <새벽의 약속>은 실제 로맹 가리가 본인이 겪은 삶을 소설로 체화했듯이, 로맹 가리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캐릭터들을 화면에 구현해 냈다. 자칫 전기 영화에서 나타나기 쉬운 단조로운 플롯을 넘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상당히 이채롭다. 소설에서 어린 로맹을 돌봐주던 ‘아니엘라’나 두 번째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 <자기 앞의 생>에 등장하는, 역시 어린 주인공 ‘모모’를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는 로맹의 어릴 적 보모와 비슷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어린 로맹은 마치 소설 속 모모와 이미지가 겹친다. 이들 캐릭터와 실제 로맹의 삶이 묘하게 중첩되어 그의 인생을 아주 흥미롭고 생생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예술적 성취와 명예를 얻으려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낸 로맹은 결국 그가 어머니에게 다짐했던 약속을 모두 이루어내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어머니가 그의 곁에 없었다. 니나 카제프는 아들의 성공을 위해, 로맹이 삶의 끝자락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던졌다. 성공의 순간에 둘은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아들 로맹은 어머니 니나를 그의 책 <새벽의 약속>에 담아 세상에 남겼고, 우리는 그 모자를 통해 삶의 희망과 동력을 얻는다.

니나와 어린 로맹이 새로운 희망을 찾아 폴란드에서 프랑스 니스에 도착했을 때, 집 밖으로 펼쳐진 지중해 바닷가를 보는 엄마 니나의 표정에서 마치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이와 같을 것이라고 믿는 어린아이와 같은 수줍은 얼굴과 동시에 자식을 향한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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