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부정 시험 때문에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이에 한 교사는 아이에게 인격을 가르치지 못하고 점수 따는 기계로 교육한 자신을 지탄하라고 고백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교사의 고백을 보며 교회는 무슨 고백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수능 부정 시험에 가담한 학생 중 교회에 다니는 학생은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며 교회 교역자나 성
얼마 전 필자의 큰 딸이 성적표를 가져와 살며시 내밀면서 “아빠 성적표가 나왔는데요. 죄송해요. 생각보다 별로예요”라는 것이다. 성적표를 보기 전에 물었다. “한가지만 먼저 묻고 싶다. 최선을 다해서 공부한 결과니?” 그러자 “예 최선은 다했는데…”라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성적표를 펴보니 기대에 못 미치는 점수들이었다. 딸에게 “너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
직장에서 알파코스를 함께 하는 직원들과 1일 수련회 때 들른 ‘아침 고요 수목원’에 커다란 성탄 트리가 인상적이었다. 쌀쌀한 날씨여서 그런지 예수님의 성육신 정신이 담긴 성탄절의 의미가 더욱 절실해보였다. 미미 레더라는 여성 감독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티비에서도 몇 차례 방영했고 나온 지도 오래 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딥 임팩트’라는 영화이다.
국회는 일단 정상화되었다. 총리와 야당이 싸우는 것과 국회가 일손을 놓는 것은 사실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지만 국민으로서는 두 눈 멀쩡히 뜨고 당하는 도리 밖에 없었다.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누가 이길까에 더 관심을 둘 뿐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을 지지해야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어느 한 편에 대한 확고한
모던 사회에서 환상은 깨어져야 할 것이었다. 이성의 합리성과 과학의 법칙에 의해 낱낱이 벗겨지던 환상의 세계는 거짓과 위선을 대표하는 상징 체계로 인식되었다. 그러다가 포스트 모던 사회에 들어오게 되면서 그런 환상의 세계에 대한 교정 노력이 많이 나타났다. 환상은 거짓과 위선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 세계의 실체를 접근하는 진실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40세를 더 이상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불혹’(不惑)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자는 불혹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40~45세 남자들의 80%가 심리적 위기를 경험한다는 사실은 정신의학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30대까지는 결혼하고 직장에서 자리잡고 생활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 시기이다. 그러다 가정이나 직장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앞두고 ‘개혁’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누가 과연 개혁자이고 시대의 문을 여는 자인가? 지구는 둥그니까 서쪽으로 계속 나가기만 하면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결국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발견한 콜럼버스. 그가 1492년 10월 12일 새벽에 도착한 바하마 제도의 한 섬이 비록 인도는 아니었고 금덩어리와 보물도 없
중세를 암흑기라고 부른다. 인간의 이성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하던 시절이어서 빛의 부재인 ‘암흑’이란 단어를 붙였으리라. 인간이 얼마나 자주 이념과 맹신, 증오와 반목의 노예가 되어 흔들렸는지는 역사의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기록되어 있을 것이지만 중세는 그 정도가 심했다고 한다. 최초 르네상스기의 문화사학자인 요한 호이징거는 “중세의 삶은 두 극단을 오락가락
근대 이후의 시대는 시각에 의해 지배받아 왔다. 망원경과 현미경의 발명과 인쇄술의 발명 등은 그런 시각적인 것의 특권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영상 매체의 발명으로 인해 그런 시각적인 것의 특권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시각적인 문화를 구성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를 구별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시각을 통해 형성되는 문화의 문제를
“으아~악!” 꽈당! 여지없이 넘어지는 소리다. 추석연휴가 이어지면서 모처럼 온 가족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양재천으로 나섰다. 한껏 실력을 뽐내며 앞서고 그 뒤를 따라 두 아이들이 달려왔다. 그 동안 한번도 넘어진 적이 없이 타왔던 인라인스케이트라 안심하고 즐겼다. 그런데 잠깐 삐끗하는 순간 여지없이 넘어지고 말았다. 손과 무릎에 보호대를 하였기에
이재철 목사의 홍성사 운영과 관련한 수기,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의 첫 장에서는 이범선의 소설 가 등장한다. 고아의 아버지로 칭송받던 크리스천이 정작 아들이 고아와 결혼하려고 하자 극구 반대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인데 작가 이범선은 이런 기독교를 가리켜 ‘구두 속의 돌멩이’라고 말한다. 결코 자의로는 꺼낼 수 없고 일평생 절고 다니지 않을 수
가을입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라… 애국가에도 가을하늘은 공활(空豁)하다고 하는데 텅비어 사방이 넓다는 뜻이니 높고 구름없이 푸르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하지만 내 나라 가을 하늘만 그런 건 아닙니다.북반구 나라에서 가을의 하늘은 대개 그렇듯 높고 푸르기 마련입니다. 러시아에서 벌어진 인질 테러사건의 뉴스를 보면서도 배경에 비치는 하늘이 푸르다는 생각을
역사를 보게 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사건이나 위대한 인물만이 아니다. 경제와 사회의 구조를 통해서도 역사를 보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다가 다시 또 하나의 역사를 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문화가 그것이다. 문화로 역사를 보면서 다른 역사들을 보게 되었다. 인쇄공들의 고양이 대학살을 통해 노동관계에 대한 고찰 뿐 아니라 대중들의 의례와 상징이 지닌 역사적 내
주일 오후 한적한 시간에 거실에서 큰 소리가 난다. 아내와 둘째 요한이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주일날, 그것도 목사의 집에서 날법한 소리는 아니다. 그런데 나고야 말았다. 음악숙제인 악보를 그리는 일로 짜증을 부리는 아들을 달래고 달래다 짜증내고 자리를 박차는 순간 아내의 화가 폭발한 것이다. 요한이가 아내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은 개입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