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의 큰 딸이 성적표를 가져와 살며시 내밀면서 “아빠 성적표가 나왔는데요. 죄송해요. 생각보다 별로예요”라는 것이다. 성적표를 보기 전에 물었다. “한가지만 먼저 묻고 싶다. 최선을 다해서 공부한 결과니?” 그러자 “예 최선은 다했는데…”라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성적표를 펴보니 기대에 못 미치는 점수들이었다. 딸에게 “너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고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러자 답변하기를 “남을 돕기 위해서요” “그래 물어보자. 너는 이 성적표가 남을 도울 수 있는 성적표니?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성적표니?” 딸 아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아빠는 네가 공부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지난 번 시험기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한다라는 생각을 아빠나 엄마가 가질 수 없었다. 네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온 결과라면 아빠는 이점수들이 네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점수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너를 격려할 수 있다. 하지만 아빠가 속상한 것은 네가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날 내 딸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우리 부부에게 사과하였고 시험을 앞둔 요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졸릴 수도 있으니 아빠가 같이 앉아 있어주면 좋겠다하여 같이 책을 보기도 했다. 성적은 여전히 같은 점수를 받아올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학업에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정직한 결과를 받아들었다면 그 내용은 어떠 하든지 부모들로부터 박수를 받아야 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일등일 수 없고, 다 잘할 수 없다. 각자의 분량만큼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이 최고다.
요즘 핸드폰 수능부정사건을 보면서 “어린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이뤄갈 대학입시 관문에서 왜 새치기를 시도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경찰은 미리 알고도 잡으려만 하였지 아이들의 인생을 보호할 의도가 없었고, 부모들도 알았을 텐데 아이들의 어긋난 선택을 막을 만한 용기가 없었다. 결국 200여명 가까운 청소년들이 잘못된 선택으로 자신들이 공부하고 싶은 대학의 문조차 두드리는 것이 어려워졌고 잊을 수 없는 좌절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의 배경에는 성공지향주의, 성과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대안교육을 실시하는 부모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대안교육을 하느냐고 그랬더니 자녀가 성공하려면 대안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참으로 대안이 정말 필요한 가정이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자녀들에게 항상 원하는 것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얻어야 한다는 소위 ‘뺀질이 인생교육’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후 주어진 결과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처럼 자녀들의 인생방향이 어긋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자녀들이 성공을 쫓아가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자녀로 성장시켜야 할 것이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좋은 기회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