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새해에 곳곳에서 탄식하게 하는 소식이 들렸다. 평화의 왕이 태어나신 이스라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동방정교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소식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러한 슬픈 상황에서 이 땅에서 정치인을 향한 테러가 일어났다. 야당 대표를 향한 물리적 테러는 이 사회가 얼마나 극단적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장점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때로는 교정받음에 있다. 내 생각이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념이 지배하면 대화는 사라지고 확신만 남게 된다. 나와 다르면 적이 되고, 적이 되면 죽여야 한다. 이것은 독재 시대나, 전제정부 시대의 유산이다.

이념은 단지 정치적인 것만 말하지 않는다. 종교도 복음이 사라지면 이념이 된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대화이고, 교회의 생명은 복음이다. 이것은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 대화와 복음이 사라진 현실은 참으로 끔찍하다. 이념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폭력이 수반된다.

우리 시대는 광장에 모이긴 하지만 광장의 기능을 상실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극한 갈등과 분열을 일삼고 있다. 여기에 이념과 맘몬에 사로잡힌 개인방송들은 더욱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책임이 동반돼야 한다. 책임은 사실을 전하고 사람을 호도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만 있고 책임이 없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사람이 다쳐도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쟁과 자작극이 아니냐고 묻는 시대는 참으로 끔찍하다.

극한 갈등과 분열 가운데 누가 이 문제를 수습할 것인가? 교회밖에 소망이 없다. 교회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셨다. 교회는 모든 갈등을 잠재울 수 있다. 모든 이념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교회가 이 땅의 소망이다. 그런데 지금 교회가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사회적 신뢰도가 20% 안팎이다. 세상이 교회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교회가 갈등의 조정자가 아니라 갈등 유발자는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더구나 광장에서 들려오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리에 거룩함과 경건함이 사라지고, 이념과 맘몬과 막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거룩한 안타까움이 보이지 않고 세상의 소리와 다를 것이 없음을 본다.

교회는 다시금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이 땅에 평화를 심는 일이다. 평화의 왕이시고 자비의 왕이시며 공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감당하는 일이다. 정치에 올라타는 교회가 되지 말고, 이념에 끌려 다니지 말고, 맘몬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선지자의 자리를 회복해야 한다. 선지자는 선지자의 삶을 살 때 힘을 발휘한다. 교회가 거룩함을 회복하여 영적 권위를 회복할 때 사회를 향한 조정자가 될 수 있다.

교회는 아픈 사회를 방치하면 안 된다. 치료자와 조정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강단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회복돼야 한다. 교회는 지역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거룩함과 정직함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는 부와 성공과 권력의 상징이 되면 안 된다.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고 거룩한 등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에서 다시금 국가와 위정자를 위한 복음적 기도가 일어나야 한다.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는 교회로 세워져야 한다. 진리는 사랑이 동반되지 않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이것이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이 땅을 치유할 수 있다. 교회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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