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개혁사상 부흥운동 인사이트 (insight) 개혁주의 신약신학 ① 회의 진행 개혁

▲ 박형대 교수 ·총신대학교 신약신학 ·개혁사상부흥특별위 전문위원

교회 내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사도행전 15장 4~29절에 소개된 예루살렘 공회의 과정은 이에 대한 원리를 제공한다. 어떤 그룹의 구성원들이 성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동일한 믿음을 고백한다면, 자기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싸우기보다 ‘더 나은 해결책에 도달하기 위해 격려하고 연합하는 양보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합일점에 도달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의 배경과 의제, 본문 구조와 공회의 상황, 네 가지 금지규례 목록, 공회의 목록(행 15:29)에 나오는 네 항목의 특징 등을 살펴보면서 이 시대의 회의 진행 개혁 적용점을 찾아본다.

1. 배경과 의제

‘믿는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특히 할례를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하는 논의는 고넬료 회심 사건 이후에 이미 공론화 되었다(행 11:1~18). 이후 이방인들의 할례와 율법 준수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10여 년이 흐른 것으로 보인다(갈라디아서 2장 참고). 그러다가 어떤 유대인들이 “만일 너희가 모세의 관습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너희는 구원될 수 없다”면서 ‘할례’와 ‘구원’을 연결하여(행 15:1) 가볍지 않은 다툼과 논쟁거리가 생기는 바람에, 예루살렘에서 공회의를 여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방인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쪽은 할례 관련 구약 본문(창 17:9~14)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반면, ‘이방인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쪽은 고넬료 회심 때 임했던 성령강림과 더불어, 바나바와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서 하나님께서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은혜에 있었다. 이제 교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 17:14) 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방인들은 할례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릴 것인지 의논해야 했다. 다시 말해, 공회의 의제는 ‘이방인들이 유대인처럼 되지 않아도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2. 본문 구조와 공회의 상황

예루살렘 공회의 본문은 세 그룹으로 나뉜다. 모임 전체 상황을 보여주는 본문, 이방인들이 할례 받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담긴 본문, 이방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오려면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주장이 담긴 본문이다. 전체 상황은 ‘가, 나, 다’로, 할례 받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과 관련된 내용은 ‘ㄱ, ㄴ, ㄷ’으로,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주장과 관련된 본문은 ‘a, b, c’로 표현하면, 구조는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가.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이 바울과 바나바와 안디옥의 몇몇 대표자들을 환영하다(15:4상)
ㄱ. 바울과 바나바의 증언(15:4하)
a. 어떤 바리새판 신자들의 주장(15:5)

나. 공회의 모임과 토론(15:6~7상)
ㄴ. 베드로의 담화(15:7하~11)

다. 전체 회중의 잠잠함(15:12상)
ㄷ. 바나바와 바울의 증언(15:12하)

라. 바나바와 바울의 잠잠함(15:13상)
b. 야고보의 제안(15:13하반~21)

마. 공회의 동의안(15:22~29)
예루살렘 공회의는 안디옥 교회 구성원들에 대한 환영으로 시작된다(15:4상). 이어 바울과 바나바가 최근에 일어난 논쟁에 대해 어떤 불평도 없이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만 말한다(15:4하). 다른 그룹에 속한 몇몇 바리새파 신자들이 할례 및 모세율법을 언급하지만, 사도행전 15장 1절(과 5절)에 언급된 ‘관습/관례’와 ‘구원’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회의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모인 뒤 긴 시간을 보내지만 화가 나서 뛰쳐나가거나, 사람들이 그들의 의견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거나, 반대파를 패배시키기 위해 정치적 조치를 취하는 사람이 없다(15:6~7상).

다음으로 베드로는 에토스(ethos)나 파토스(pathos)가 아니라 로고스(logos)를 사용하여 발언한다(15:12상).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표적과 이적에 대해 말한다. 이때 바나바가 바울보다 먼저 거명된 것이 의미가 있다면, 아마도 바나바가 바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했을 것 같다. 이 때에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 외에 다른 것들은 언급되지 않는다(15:12하). 이어 바나바와 바울도 침묵한다(15:13상). 그러자 야고보가 이방인 기독인들의 할례를 요구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거주하던 이방인들에게 요구되던 네 가지 항목의 금지규례를 제시한다(15:13하~21). 마침내 공회의가 두 입장 사이에서 어떤 합일점에 도달한다(15:22~29). 공회의는 연합을 이루는 데 성공했고, 위로와 기쁨으로 마무리되었다(15:31).

3. 네 가지 금지규례 목록

네 가지 금지규례는 사도행전에만 세 번 등장한다. 야고보는 “부정한 우상들과(우상들의 부정한 것들과) 음행과 목매단 것과 피”(15:20)를 말했고, 공회의 편지에는 “우상제물들과 피와 목매단 것들과 음행”(15:29)이라 표현되었고,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바울에게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우상제물과 피와 목매단 것과 음행”을 언급했다.

목록간 차이점을 고려해서 살펴보면 첫째, 야고보는 ‘더러운 것’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목록이 정결의식 중심이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용어는 이어지는 세 개 혹은 네 항목 전체의 특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 둘째, 공회의는 ‘더러운 것’이라는 용어를 삭제함으로써 다른 면을 강조하는 듯하다. ‘목맨 것’의 복수를 사용한 것을 통해서는 항목을 일반화하려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셋째, 예루살렘 장로들에 의해 언급된 목록(21:25)의 중요한 특징은 중성 단수 관사 사용에 있다. 또한 이 목록의 기능도 중요하다. 사도행전 21장에서 네 목록은 이방인 기독인들을 유대인 기독인들로부터 분리시키는 법 역할을 한다.

4. 공회의 목록(행 15:29)에 나오는 네 항목의 특징

야고보의 목록(행 15:20)에 비해 공회의 목록이 정결의식보다는 예배나 언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회의는 야고보 발언에 깊이 묻어있는 정결의식적 양상에 대해 정결의식적 양상을 포함하는 어떤 예배 양상으로, ‘우상에 의해 더러워진 것들’을 다른 신에게 제사하거나 다른 신을 예배하는 것으로 바꾼 것 같다.

둘째, ‘피’의 순서를 바꾼 것을 통해서도 예배 양상을 읽을 수 있다. 교회는 새 언약에 기초한 새로운 공동체이다. 그리고 새 언약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보혈이 있다. 성찬 때 사람들은 예수님의 보혈을 마시고(눅 22:20; 행 2:46), 이를 통해 예배드린다(히 9:14; 10:19). 바울은 그리스도의 피가 이방인 기독인들을 이스라엘과 언약과 하나님께로 가까이 오게 했다고 강조한다(엡 2:12~13). 그러므로 다른 피를 마신다는 것은 새 언약을 깨뜨리는 것과 연관된다. 흥미롭게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사용된 ‘피’ 가운데 몇 용례는 예수님의 피를 가리킨다(눅 22:20, 44; 행 5:28; 20:28). 그래서 공회의는 새 언약의 증표인 ‘피’에 강조를 더 두려고 야고보 목록 마지막에 있는 ‘피’를 두 번째로 옮겼을 수 있다. ‘피’가 공회의에서 어떤 유대인들에 의해 옛 언약의 증표로서 강하게 주장되는 ‘할례’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셋째, ‘목맨 것’들은 음식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이방신전들에서 제물들을 질식사시키는 것과 유아들의 목을 조르는 것(Instone-Brewer)’을 가리킬 수도 있다. 넷째, 음행은 우상숭배와 매우 강하게 연결되는 용어이다. 다섯째, 네 가지 금지규례의 배경으로 제시되는 ‘노아명령’, ‘레위기 17~18장’을 통해서도 공회의 법령 내 네 요소의 특징으로 언약과 예배를 들 수 있다.

5. 적용

예루살렘 공회의 배경과 의제, 본문 구조와 공회의 상황, 네 가지 금지규례 목록, 공회의 목록(행 15:29)에 나오는 네 항목의 특징을 고려할 때, 공회의 참석자들이 ‘상호신뢰의 태도’,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는 태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양보하는 반응을 담아 대답하는 태도’, ‘위로하고 격려하며 더 나은 해결책에 도달하도록 양보하는 태도’를 갖고 회의에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로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가 정리되었다. 우리도 신앙고백이 같다면, ‘성경’과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살피며 합일점에 도달하도록 힘쓰는 방향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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