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순교회는 지역을 대표하는 교회다. 박강길 원로 목사는 본인의 후임으로 강요섭 담임목사를 내세웠다가 분쟁에 휘말린다. 박 목사를 지지하는 세력과 강 목사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교회는 나뉜다. 이제 갓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안기섭은 강 목사의 요청으로 강 목사를 지키기 위한 TF팀에 간사로 합류한다. 평소 강요섭 목사를 따르던 기섭은 현재 믿을 만한 사람이 없는 외로운 강 목사를 도와 교회를 지키는 것이 자기 본분이라 믿는다.

정확한 교적부 확인 작업을 통해서 우리 편을 분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교회 청년들을 만나는 와중에 기섭은 뜻밖의 제보를 듣게 된다. 청년 시절부터 자기의 우상과도 같았던 강요섭 목사가 어린 신도와 성추문에 휘말렸단다. 사건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진상조사에 나선 기섭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만 가는 피해자들을 직접 확인하고선 자기가 믿고 따르던 우상의 실체를 경험한다.

이 스토리는 최근 한국 교회에서 많이 들어봤던 이야기이고 실재하는 사건과 매우 닮아있다. 교회 분쟁의 대표적인 원인인 재산의 소유권을 둘러싼 권력 관계와 목회자로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성폭력 목사, 사람으로서 목사의 민낯이다. 신연식 감독의 신작 <로마서 8:37>은 이런 한국 교회의 현실에 그대로 돌직구를 던진다. 더 늦기 전에 회개하라고!

500년 전, 라틴어를 아는 성직자만 성경을 읽을 수 있기에 복음을 모르던 가난한 민초들에게 면죄부를 팔아 교회의 재정을 충당하던 로마 교황청에 반발하여 마르틴 루터는 ‘오직 말씀’으로 회개를 주장했다.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 교회는 지금, 국내에서 가장 큰 교회라 칭하는 교회의 부자 세습 절차를 마무리했다. 또한 몇 해 전 청년 부흥의 역사로 가장 촉망받던 목사는 그동안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더불어 버젓이 새 교회에서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한국 교회의 민낯이다.

2016년 영화 <동주>의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 제작자로 세상에 가장 많이 알려진 신연식 감독은 그 동안 꾸준하게 시나리오를 스고 <러시안 룰렛> <조류 인간> <프랑스 영화처럼> 등을 직접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공통적으로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를 즐겨한다. 이는 그가 크리스천으로서 정체성과 존재의지, 그 근원의 물음을 자신의 작품에 풀어내는 것으로도 보인다. <로마서 8:37> 또한 제목에서부터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이 영화의 화자(話者)이자 감독의 페르소나인 기섭을 통해 어쩌면 한국교회에 던지고 싶었던 질문을 스크린에 쏟아 놓고, 그 스스로도 기섭을 통해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 같다. 실제로 영화는 강요섭 목사의 동생 현민의 의문의 죽음을 추모하는 기섭의 기도로 시작하고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는 회개의 기도로 마무리한다.

한국 기독교 영화사적으로도 <로마서 8:37>은 중요한 분수령이다. 극장가에 나타난 최근의 한국 기독교영화들은 대부분 선교 사역의 보고이거나 훌륭한 목회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크리스천들의 믿음을 고취시키고 각성케 하는 의미 있는 작품들이기도하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가 먼저 우리의 모습을 직시하지 못하고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이를테면 <밀양>을 보고 우리를 돌아보던 것 같이-크리스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는 기독교 극영화의 부재는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그러던 차에 <로마서 8:37>은 아주 직설적이고도 직접적으로 한국 기독교에 묻고 있다. 우리는 현재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냐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외면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신연식 감독은 영화 내내 집요하게 관객에게 들려주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플롯)를 긴장감 있게 끌어가는 하나의 축인 권력과 개인의 영욕에 사로잡힌 목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냄과 함께.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외면해서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오늘의 우리는 비유와 은유보다는 <로마서 8:37>같은 직설적인 화법이 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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