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포럼 프로그래머>

1940년대 파리의 대극장, 관객들은 곧 펼쳐질 당대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의 퍼포먼스를 기대하며 들떠 있다. 장내는 묘한 흥분에 차있다. 그 사이 오늘의 주인공 장고는 여전히 공연장 근처 강가에서 메기 낚시를 즐기고 있다. 그의 매니저는 속이 타들어 간다. 저녁 요리로 쓸 만한 콧수염이 근사한 메기를 낚은 후에 장고는 공연장으로 향한다. 무대 의상을 챙겨주는 엄마에게 짓궂게 장난을 치고는 집시 장고는 무대에 선다. 그와 5중주 공연악단은 이내 흥겨운 멜로디로 리듬을 조절하며 관객을 서서히 달군다. ‘스윙 재즈에 댄스 금지’라는 푯말 옆에서 나치가 공연을 감시하지만, 관객들의 어깨와 입 꼬리는 장고의 입 꼬리 실룩거림에 맞춰 같이 리듬을 타며 들썩인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할리우드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로 꼽는 장고 라인하르트는 후대의 뮤지션인 지미 핸드릭스, 조지 벤슨,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등에 영향을 끼친 집시 스윙의 창시자다. 영화 <장고 인 멜로디>는 장고 라인하르트가 주로 활동하던 세계 2차 대전 시대를 배경으로 그의 삶과 사랑, 그리고 평생 지키고자 애썼던 집시로서의 자유로운 영혼을 조명한다.

기원이 불분명한 집시는(인도라고 알려졌지만 명확치는 않다) 거의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동유럽을 비롯해 파리 등 유럽 전역에서 살아왔다. 주로 도시 외곽에서 그들만의 주거 형태와 삶의 양식을 고수하며 자유롭게 살아 온 소수 민족이다 보니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했다. 더군다나 아리안족 우월주의를 표방하며 전 유럽을 정복해 가는 히틀러에게 떠돌이 유랑민 집시란 존재는 유대인 못지않게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들이었고 실제로 학살하기도 했다.

장고의 공연을 보고 감동한 파리 점령지 사령관은 장고를 독일 투어 공연에 보낼 계획을 세우고 이를 장고에게 통보한다. 파리를 떠나고 싶지 않은, 사실은 나치를 싫어하는 장고는 이를 거부한다. 그러자 그들은 장고를 탄압한다. 집에서 연주에 몰두하는 장고를 병원으로 불러내어 검진을 받게 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장고의 머리 둘레, 구강 구조를 확인한 후 굽어진 장고의 왼손을 조사하면서 ‘근친교배가 거듭되며 나타난 퇴보 현상’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장고가 어렸을 때 입은 화상 때문에 왼손 약지와 검지가 구부러졌다는 것은 그 당시 장고의 유명세만큼 파리의 시민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자기의 조국 프랑스를 배신한 대가로 먹고 살아가는 나치의 부역자인 의사는 장고에게 독일을 즐기라고 얘기하지만 장고는 그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이었다.

주로 프랑스권에서 활동하던 배우 레다 카뎁이 주연한 <장고 인 멜로디>는 2017년 베를린영화제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된 음악영화다. 특히 장고의 연주 퍼포먼스 장면이 내러티브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게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고 있다. 레다 카렙은 영화에서 장고 라인하르트의 실제 연주 퍼포먼스와 매우 흡사하게 기타를 친다. 입 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발을 리듬에 맞춰 동동 구르며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실제 장고의 전매특허다. 제63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자비에 보브와 감독의 <신과 인간> 제작과 각본을 담당한 에티엔 코마는 이번에는 <장고 인 멜로디>를 직접 연출했다. 에티엔 코마 감독의 시선은 장고가 전쟁에서 희생된 집시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작곡한 레퀴엠을(현재는 악보가 유실되어 일부만 남아있지만), 예배당에서 재현하여 보여주고 들려줌으로써 <신과 인간>에서처럼 신의 사랑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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