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들은 그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이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란다. 결과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단체생활을 경험할 때부터 경쟁의 맛을 알아간다. 이런 모습은 우리 대한민국만 겪는 문제는 아닌듯하다. 올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엘리자의 내일>에서 나타난 딸을 위한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의 그것과 같아 보인다. 어떤 대가를 치루든 나보다 여기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한창 젊은 시절,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몰아내고 루마니아의 민주화를 이끈 세대인 의사 로메오는 지금은 도서관 사서인 아내와 함께 딸 엘리제가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무사히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중산층 아빠다. 엘리제는 그런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자기 관리를 잘하여 캠브리지 대학교로부터 입학 허가와 동시에 장학금까지 받은 똑똑한 수재다. 이제 마지막 졸업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만 받으면 모두가 원하는 대로 부모의 나라, 루마니아를 딛고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영국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그런 로메오를 질투하듯 졸업 시험을 앞둔 엘리제가 등굣길에 성폭행을 당한다. 아빠는 딸이 당연히 걱정된다. 그러나 엘리제의 몸 상태보다 정작 더 마음 가는 것은 이 일 때문에 딸아이가 제 때에 시험을 못 치룰까, 치루더라도 지금의 딸 아이 상태로는 원하는 성적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로메오는 친구인 경찰서장을 통해 영향력 있는 고위층, 부시장을 소개받고 그는 다시 시험 감독관인 교육 공무원을 연결시켜 준다. 언뜻 평범하게 보이는 로메오의 일상을 비추던 카메라는 로메오를 따라 루마니아의 내부로 조금씩 들어가 모두가 연결 혹은 연루된 그들의 치부를 하나씩 하나씩 벗겨낸다. 그러나 스릴러나 장르영화처럼 빠르고 긴장감 있게 보여주기보다 잔잔하고 차분하게 각각의 캐릭터들을 조망하면서 애잔하게 보듬으며, 그들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경찰서장을 통해 만난 부시장은 평소 서장이 신세를 지던 이다. 그런데 그는 언제 될지 모르는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다. 로메오는 그 불확실성을 확실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의사이고, 부시장은 그런 로메오에게 엘리제의 졸업시험을 감독하는 교육 공무원을 소개시킨다. 그 시험 감독관은 아내가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복직하게 힘써준 부시장에게 평소 보은하고 싶은 이다. 서로의 목적을 위한 거래다.

부시장은 수술 일정을 잡아준 로메오가 고마워 돈을 주고 싶은데 로메오는 한사코 거부한다. 로메오는 시험 감독관에게 뇌물을 건네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이룬 모든 것에 어떠한 부당한 금전적 거래는 없었다며, 단지 부시장에게 은혜를 갚고 싶을 뿐이라 한다. 여기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윤리적 도덕성과 사회적·법적 책임은 돈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위안 삼으며 잠시 비껴 둔다. 그러나 위선적이다.

이렇게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뚫고 나와 민주화를 이루어 낸 지금의 루마니아 현실은 부패가 만연하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는 루마니아를 떠나 더 나은 삶을 찾아 영국으로 떠나라고 로메오는 엘리제를 종용한다. 그러나 현실을 벗어난 이상에서의 삶은 여기와 다를까? 그것은 마치 영화의 처음과 끝에 로메오의 집 거실 유리창을 깨고 날아든 일상을 깨트리는 돌덩어리 같다. 로메오는 그것을 던진 범인을 잡으려 하지만 끝내 누구인지 모른다. 그 불안하고 불완전한 현실이 곧 삶이라고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은 잔잔하게 말한다.
<필름포럼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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