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종부 목사는 국내 대표적인 강해설교가다. 30년 올곧게 말씀에 천착한 강해설교로 누구보다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는 화 목사는 혼란에 빠진 한국교회가 회복하는 길은 본질과 내용의 회복, 즉 성경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고 선포된 말씀대로 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오직 말씀에서 능력이 나온다는 확신 때문이다.

성경이 강조하는 삶을 사는 능력은 말씀에서 나와
교회는 틀을 뛰어 넘는 파격성 있는 진리 드러내야
30년 뒤 열매 바라보며 긴호흡으로 씨 뿌려 나가야


지금의 한국교회는 아프다. 교회 안과 밖 모두가 사면초가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난국을 극복해보려 노력하지만 점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혼란만 가중되고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남서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화종부 목사(56세)는 비틀어진 기독교 모습 때문에 복음이 내동댕이쳐지고,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본질과 내용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인위적인 해석이나 보편타당한 윤리가 아니라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을 충격에 빠트렸던 파격성 있는 복음의 회복만이 조국 교회가 살길임을 확신하며 묵묵히 강해설교의 길을 가고 있다.

그가 강해설교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성경이 담고 있는 진리를 가감 없이 대변해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실제 자신보다 뛰어난 목회자와 평신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가이다.

화종부 목사의 30년 목회는 강해설교를 하면서 말씀이 풀리지 않아 애태우며 눈물 흘린 여정이었다. 그러나 강해설교로 인해 나태함 없는 목회를 하게 했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고백한다.

대표적인 강해설교가로 손꼽히는 화종부 목사의 목회 세계를 통해 지금 시대에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부분과 바른 목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그간의 목회 여정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내수동교회 대학부 출신이다. 내수동교회 대학부에서 전도사와 목사로 전담해 사역했다. 영국 유학을 하면서 옥스퍼드한인교회를 담임했고, 12년 동안 제자들교회에서 사역하다가, 5년 전에 남서울교회 3대 담임으로 왔다. 남서울교회에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흔히 선본다고 하는데, 선보는 설교 없이 남서울교회에서 나를 청했다. 여러 차례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너무 잘 맞는 교회에 와서 감사하다.

덧붙이자면, 목회자 청빙이 이랬으면 좋겠다. 후임 목회자 청빙에 많은 부작용으로 인해 교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지금은 미디어 발달 등으로 한 목회자에 대한 자료나 정보가 이미 다 떠있다. 이를 토대로 충분히 검증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뽑는 것이 아니라 검증 후 모셔가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
 
▲목사님께서 추구하고 있는 가치관, 즉 목회철학은 무엇인가.
=십자가를 잘 담아내는 목회를 하고 싶다. 유학을 떠날 때 나를 능가하는 평신도와 목회자를 키우는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평신도와 목회자를 나의 스텝으로 거느리면 나를 능가하지 못한다. 고린도전서를 강해하면서 목회는 내가 사람들로부터 높임과 존경 받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존귀케 되는 것이 예수의 정신이고, 복음 정신임을 알게 되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존귀케 하신 것처럼, 그들을 존귀케 만들고 더 훌륭한 사람들로 길러내는 목회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선배님들의 세대는 좋은 모델이 되어주었다면, 우리 세대는 우리를 능가하는 사람이 나오도록 희생하는 목회를 해야 할 때라고 본다. 부교역자도 나를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훌륭하게 되어 조국교회를 살리는 일꾼으로 쓰임 받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하려고 기도하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이유는.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당시 군부독재시절이었다. 불의한 세상에서 성도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나름대로 대안을 찾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반응이 없었다.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예수인데, 설교에 복음이 없었다는 것에 좌절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복음 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복음은 구원뿐만 아니라 삶의 도리임을 깨우치게 되었다. 성도의 삶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목사는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목회철학에 기반한 목회적 열매를 이야기한다면.
=대부분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교회에서 담임하면서 훌륭한 목회자를 잘 길러내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고 꾸준하게 뿌리려 노력한다.

제자들교회를 떠날 때 많은 아이들이 아파했다.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러나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이 성숙한 결정을 해 주었다. 평소 섬김은 내게 남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제일 귀한 것을 주는 것이라 가르쳐 왔다. 아이들이 제자들교회에서 가장 귀한 것을 준다는 마음으로 성숙하게 결정해 주어서 굉장한 격려가 되었다. 지금도 좋은 목회자를 배출하며 조국 교회를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유하고 있다.

평신도 사역도 이제 5년차에 접어들기 때문에 열매에 대해 이렇다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남서울교회 개척자이신 홍정길 목사님 때부터 성도들을 너무 잘 양육해 주셨다. 이러한 교회 흐름들을 잘 이어서 훌륭한 평신도들을 더 길러내는데 집중하려 한다.
 
▲제자들교회에 이어 남서울교회에 부임했다. 지명도 있는 교회와 목회자의 후임으로 사역하는 것이 어떤가. 부담감이 클 것 같다.
=훌륭한 분 뒤에 가면 좋겠다고 하지만 반대다. 굉장히 힘들다. 무엇보다 전임 목사님과 나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보통 전임이 비교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해오던 방식도 있는데 변화를 주어야 하니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서울교회의 특징과 장점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모든 면에서 야성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남서울교회가 야성이 있고, 양육과 봉사구조가 균형이 있었다. 굉장히 건강한 교회였다. 배움과 동시에 섬기는 것이 활발했다. 우리 교회 봉사사역은 유행을 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섬김을 지속하는 것이 특징이다. 평신도들의 자율성과 헌신도가 탁월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장로님들의 헌신도도 높다. 교회를 같이 섬겨가는 기쁨이 있다. 잘 준비된 평신도가 목회자와 충돌되는 경우가 많은데, 장로님들이 함께 동역하고 있어 목회의 짐이 가벼워 좋다. 서로의 지혜가 모여 더 온전한 사역을 펼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물론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프기도 하다. 그럼에도 반드시 함께 하려하고, 혼자의 주장을 관철시키지 않는다. 맞춰가고 협력하는 에너지가 더 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성숙하고 올바르다고 혼자 결정하게 되면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장로교의 교회 정치는 지배가 아니라 동역의 구조다. 기능적인 질서가 살아있고, 동시에 동역하는 강점이 있다. 연합과 하나됨과 일치를 잘 드러내는 것이 교회의 속성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 교회는 기대감이 있다.
 
▲시대 흐름에 따른 위원회 조직과 변신이 눈에 띈다. 위원회 기능과 역할을 평가하다면.
=위원회는 섬김 구조다. 부임 후 2년째 되던 해에 미래준비위원회라는 특위를 구성했다. 40년 역사를 샅샅이 뜯어보고 향후 교회가 가야할 방향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평신도 80명이 주축이 되었다. 담임목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그저 보고만 받았다. 굉장히 좋았다.

우리 교회 위원회는 주로 외부 봉사다. 14개 위원회에서 60개 남짓의 부서가 가동되고 있다. 월별, 일별 사역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살아있어 격려가 된다. 봉사를 교회 안으로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으로 나가는 바람직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사역에 근거해 일꾼을 세우려 노력한다. 연말에 제직 대상으로 섬김 지원을 받는다.
 
▲이제 목회 이야기를 듣고 싶다. 목회함에 있어 비중을 두는 부분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예배가 제일 중요하다. 예배가 살아야만 된다. 소그룹을 발전시키다보니 교회로 부르는 구조가 되고 있다. 소그룹 위주의 양육 틀을 갖다보면 일터와 가정이 균형 있게 자라는 구조가 되기 어렵다. 목회자의 역할은 성도들을 가정과 직장으로 파송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예배가 해결책이었다. 예배 외에 다른 소모임을 최소화시켜 삶의 자리로 가도록 하고 있다. 교회는 자라고 활기 있는 것 같지만 삶의 자리에서는 허술해지는 모습이 짙다. 그래서 예배에 집중하고 있다. 예배는 결국 설교다. 말씀이 살도록 평생 에너지를 쏟고 있다.

30년 목회 하면서 교인을 잡아두기 위한 심방은 일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혼이나 장례와 같은 목양적인 심방은 최대한 하려 한다. 여러 이유로 교회를 옮기는 경우에도 축복하고 보낸다.
이것이 나의 목회 30년의 요약이다. 잔재주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오직 강해설교만 집중해 왔다. 목회 성공할 필요가 없더라. 교회 크기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믿은 것 자체가 은혜이고 성공이 아닌가. 그래서 유행 쫓지 않고 한 길로만 왔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보편적으로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강조해 왔다. 그렇다보니 건물 중심이 되었고, 성도의 사회적 삶 약화를 시켰다는 비판이 있다.
=기독교는 진리다. 진리는 여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편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편협해지는 이유는 교조적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안 공동체다. 세상은 모든 것이 분절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다. 다투고 싸우고 나누는 세상이다. 그래서 교회는 한 사람이 옳기 때문에 모두가 나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인해 모두가 좋아지는 것이다.

교회는 외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변화되었다는 것에 목회 평가를 받는 것은 정말 처참한 일이다. 세상처럼 얄팍하고 낮은 수준으로 다가보니 세상과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이다. 절대 타협하지 않지만 사람을 살리는 정의와 진리를 구현해 내어야 한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교회론과 달리 외적 변화에 무게중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의 역기능적 현상은 복음의 진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맨파워나 스펙을 성경에 희석시켜내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종교적으로 탁월한 체험을 해도 사람을 미워하면 온전한 신앙이 아니다. 체험이 전부인 종교성만 강조한 현상들이다. 비틀어진 기독교 모습 때문에 복음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국내 대표적인 강해설교가로 인식되고 있다. 강해설교를 하는 이유와 유익을 경험적으로 말해 달라.
=말씀이 일 하는 것이다. 말씀이 앞서도록 하는 유익한 방법이 강해설교이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다. 열매라 할 수 있는 결과물은 없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위력이 나온다. 말씀은 능력이다. 진리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진리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강해설교가 필요하다. 본문과 다른 해석을 하거나, 삶의 질고를 다루지 않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본문만 선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본문에 충실하게 강해하면 왜곡해 듣지 않는다.

강해설교의 유익은 말할 수가 없다. 먼저 목회자 자신의 신학적 지평이 넓어진다. 피하고 싶은 본문을 다루려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주제설교와 달리 강해설교를 하면 월요일부터 본문이 주어지기 때문에 착실하게 연구할 시간적 여유가 많다.

강해설교는 또한 목회에 권태를 느낄 틈이 없다. 지난 30년간 한 번도 권태가 없었다. 왜냐하면 말씀을 열면 열수록 나 자신의 일천함이 드러나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진리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금방 간다. 한 20년 죽도록 강해설교를 하니 설교가 약간 쉬워졌다. 설교가 약간씩 열리기 시작하면서 회중들이 약간씩 귀를 여는 모습을 보면서 목회가 재미있고, 리듬이 생기고, 행복으로 다가온다.

성도들이 목사에게 매달리지 않는 것이 감사다. 목사가 주님과 성도 사이에 있으면 안 된다. 성도가 하나님께 직행하도록 하는 역할이 목사인데, 목사가 개입하면 방해하는 것이다. 나는 종이기 때문에 주인이신 하나님께 데려가는 제일 좋은 도구가 강해설교다. 말씀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드러나면 결국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익이 있음에도 강해설교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실제 어렵기는 하다. 40대 초반까지는 본문에 있어서 능수능란함이나 삶의 경륜이 일천해 말씀을 깊이 있게 풀어내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시간이 쌓이고, 목회적 경륜이 축척되면 갈수록 쉬워 지는 것이 설교다. 강해설교는 갈수록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아마도 빠른 결과물을 내고 싶은 조급증 때문이라 생각한다.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내려는 것 때문에 듣기 좋은 말씀을 가려하는 유혹을 뿌리치지가 어려워진다.

강해설교를 하면 현실감각이 없다는 편견도 있다. 현장 이야기를 못하고 편협한 설교를 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아니다. 성경은 삶의 책이다. 삶의 책인 성경에 충실했는데 현실감이 떨어질까. 동의하지 않는다. 과다한 이념과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중화시켜 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설교를 할 수 있는 강점이 강해설교에 있다.
 
▲현실적인 질문을 해 본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설교를 제대로 듣지 않으려하고, 반면 성도들은 들을 설교가 없다고 곧잘 말한다. 이러한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대부분 목회자들 잘못이다. 진리는 허공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피부로 느끼는 바로 그 이야기를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1차적인 역할이 목회자에게 있다. 목회자들이 말씀 앞에서 많이 울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천착해야 한다. 성경에 충실하고, 잔재주 부리지 않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해설교라 해서 성도들이 어려워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다. 집회를 다녀보면 한국 성도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성경을 열어서 ‘성경이 이렇게 말하는구나’ 이렇게 여기도록 만드는 설교자의 결핍이 한국교회의 제일 큰 아픔이라 생각한다. 목회자들이 밥을 제대로 짓는 것이 필요하다. 양식을 먹여야 하는데 다른 것을 먹이려 한다.

물론 30%는 성도들 책임도 있다. 설교자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 모습도 있다. 목회는 자식을 키우는 것과 똑같은 구조다. 그러므로 자신을 탓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깊이 있는 설교를 위해서 팁을 준다면.
=개인적으로는 좋은 선생을 만났다. 한국에서는 말씀을 사랑하시는 박희천 목사님, 정근두 목사님이 이 길로 가도록 만든 계기였다. 또 다른 선생은 책을 통해 만난 마틴 로이드 존스는 실질적인 영적 선생이다. 눈을 다 열어 주었다. 그 시절에 너무 목마르고 배고파서 책을 샅샅이 읽었다. 그를 통해 설교자의 영광스러움, 성도의 존귀함, 말씀을 강해하는 것이 어마어마한 사건임을 경험했다. 이런 경험으로 설교를 하는 것과 숫자 많은 것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목회의 영광을 목회성공과 바꾸고 싶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해도 말씀을 충실히 가르치고, 천천히 가려 했고,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이면 머무르겠다고 결심을 했다.

두 번째로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연구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앞에 앉아 있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동안 성경이 안 열려 많이 울었다. 성도들 때문에 억울해서 울어 본 적은 없다. 성경이 열리지 않을 때 너무 고통스러웠다.

주님은 약속하고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하시는데, 왜 안 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말씀에 많이 머물러야 한다. 목회자로서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줄이고, 정말 중요한 것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치면 반드시 된다고 확신한다.
 
▲이 시대에 강해설교가 필요한 시대인가.
=강해설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강해설교는 성경에 충실하고 말씀이 가지고 있는 권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조국 교회의 문제는 두 가지로 본다. 본질과 내용에 떠나 있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 본질과 내용에 충실하라고 하신다. 결국 본질은 복음이고, 내용은 성경이다. 제가 볼 때 한국교회는 복음에서 많이 떠났고, 성경에서 너무 멀어졌다고 본다. 다른 것 다 빼고 목회자 자체가 1주일간 성경을 붙들고 얼마나 씨름하는 지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결국은 해석이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강해설교가 아니겠는가. 성경으로 돌아가고, 복음을 회복하려면 결국은 성경을 여는 강해설교여야 한다고 본다. 성경이 말하는 능력은 기적이 아니라 삶을 사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말씀으로부터 온다. 성령 하나님이 말씀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능력이 말씀에서 나온다.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침체되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위축되고 있다. 회복을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 같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타계책은 없을까.
=우선 그물을 멀리 던지면 좋겠다. 한국교회에 대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내는 사람들은 자꾸 가까운 곳에 그물을 던지려 한다. 빨리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

지금의 교회를 향한 질시와 손가락질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면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강성했던 교회 시대는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대적과 핍박을 겪었다. 세상이 교회를 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초점이 틀렸다고 본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적이 없다. 교회가 세상의 지지를 회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의 지지를 딛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본질에 충실하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짧은 시간에 결과를 내려하고, 세상의 지지를 받으려 노력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세상에서 힘을 갖는 것인데, 자꾸 세상으로부터 힘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한다. 교회를 하나의 압력단체로 만들어내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 거절해도 무던히 교회가 해야 할 도리를 하면서 그물을 멀리 던져야 한다.
 
▲본질 회복을 많이 말한다. 그러나 그림이 저마다 다르다. 교회본질, 목회본질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교회의 본질을 복음이다. 금수저 흙수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을 끊임없이 절망시키고 분절, 단절, 분노가 가득한 세상에 은혜가 통치하는 새로운 질서, 그것이 복음이다. 은혜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격 없는 자들에게 너무나 값진 선물을 그냥 주시는 은혜가 복음이다. 전혀 다른 눈으로 사람을 끝없이 품어낼 수 있는 곳이 교회가 유일하다. 분노가 가득한 세상에 은혜의 본질이 너무나 귀한 것이다. 그런데 은혜를 굉장히 종교적인 현상 정도로 격하시켜놓은 시대에 은혜를 회복해 내고, 은혜 되게 만들어야 한다.

조국 교회의 모든 왜곡과 어려움들은 성경에서 떠난 결과라 본다.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성경과 일치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저 윤리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을 충격에 빠트린 일반적인 틀을 뛰어 넘는 파격성 있는 진리를 드러내야 한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에 내용이 없는 것이다.
 
▲교회의 물리적인 감소를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때 목회자는 어떤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지금의 조국교회가 겪는 문제는 30년 동안 축척된 것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지금 해결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지금 당장의 숫자가 늘고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교세가 줄어든다고 두려워하는데, 인구가 전체적으로 줄고 있는데 수가 줄어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그리고 30년 뒤에 열매가 나오도록 멀리 보고 씨를 뿌려야 한다. 내용과 본질에 충실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자꾸 서두른다. 성경에서 말하는 울며 씨를 뿌린다는 것은 열매가 보이는데 울겠는가. 애를 쓰는데 열매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그러나 뿌리면 반드시 거둔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긴호흡으로 승부를 걸려고 하고, 충실하게 정도를 걸으려 하면 반드시 열매를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절대 조국교회를 향해 부정적이지 않다. 영국교회도 400년 구가했지만 늘 번성한 한 것이 아니다. 부침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한국교회가 조정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화종부 목사(남서울교회)

▲좁게는 교회, 넓게는 한국교회를 위해 계획하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세 가지다. 저를 남서울교회에 보내신 것은 이제 일하라는 메시지라 생각했다. 하나는 조국교회를 위해 평생 몸부림친 설교를 내어 놓는 것이다. 꾸준하게 강해설교집 내어 조국교회가 말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미력이지만 보태고 싶다.

두 번째로 지금까지 해왔던 위원회 중심의 교회 사역을 잘 이어가면서, 북한선교 샛강을 열려고 한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교회가 할 수 있는 샛강을 만들고 싶다. 좌우가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신앙고백적 북한사역을 하고 싶다. 극단적 대치를 하지 않고 공멸하는 전쟁이 나지 않도록 평화 정착과 자유왕래 하는데 통일에 대한 그림을 그리도록 교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 세 번째로 궁극적으로 세계선교다. 식고 있는 선교열기를 다시 살려내야 한다. 이런 세 가지 그림을 갖고 조국교회와 조국사회를 섬기고 싶다.

개인적으로 바람 중에 하나가 있다. 부교역자 20여 명 있는데 다들 분립해서 개척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말씀 사역을 하는 건강한 지역교회가 나오도록 해 교회와 지역이 함께 건강해 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늘 교회가 살면서 지역이 사는 것을 꿈꾸고 있다. 이것이 제네바에서 일어난 것이고, 개혁신학의 아름다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립 개척해 말씀 사역하는 교회와 지역이 함께 건강해 지는 꿈을 꾸고 있다. 이를 위해 착실하게 준비해가고 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위대하고 중요한 것인가를 인지시키려 한다. 이제는 하나의 큰 교회가 아니라 다양한 건강한 교회가 세워져 지역사회와 함께 부흥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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