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바람직한 개혁주의 장로교 목회 ② 교육과 구제로 하나님 나라 확장

‘산 위에 세운’ 교회는 마음의 상처 치유하고 허기를 채워주는 역할 감당해야
예수님 사랑 헌신적으로 전하며 기독교 세계관 심는 노력 결코 포기말아야

 

▲ 정연철 목사
양산 삼양교회

오늘날처럼 사회복지가 사회적으로 전폭적인 관심을 끈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만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구제가 개개인의 관심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고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고린도후서에는 예수님을 ‘가난한 자를 위하여 오신 분’으로 표현한다(고후 8:9). 실제로 예수님의 메시지는 인간의 영혼구원에 대한 구속의 은총을 담고 있지만,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선포는 개인의 영혼구원만이 아닌 통전적(統全的) 구원을 담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병자들을 치유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하셨다. 이런 복음의 메시지를 오늘날의 교회가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이다.
 

진리의 빛과 사랑의 따뜻함(교육과 구제)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가운데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산위에 동네’(마 6:14)라고 표현하셨다. 그렇다면 굳이 교회가 산위에 자리 잡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마 6:16)이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이유이고, 이것은 교회가 세상에 빛의 역할을 감당할 때 가능하다. 빛을 비춘다고 할 때, 빛의 두 가지 속성을 생각할 수 있다. 먼저는 어두움을 밝혀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게 하는 복음전파-가르치고 복음을 전함-가 있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긍휼 베풂-병고침과 육적 필요를 채워줌-이 있다.

 
불신자의 눈에 비치는 교회의 외적 표지

그래서 교회의 외적 표지에서도 단연 첫번째는 ‘말씀의 바른 전파’이다. 이어 ‘성례의 바른 집행’과 ‘권징의 바른 시행’도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어찌 보면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들에게만 의미 있는 표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복음도 세상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요즘처럼 교회가 점점 고립무원의 상태로 빠져 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로 복음을 표현하는 교회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진리를 담는 그릇이 변하지 않고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진리를 담는 그릇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더 이상 교회가 예배당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가르치는 사역이 이제는 교회 담을 넘어 세상으로 뻗어가야 한다. 전하는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며, 허기진 배를 채울 것인가? 이에 대해 필자는 개혁주의의 선구자인 칼빈이 제네바에서 어떻게 일반시민을 위해 가르치는 사역에 천착했는지, 그리고 그의 목회사역 중 어떻게 긍휼사역을 이해하고 실천에 옮겼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교회가 불교의 텃밭이라 불리는 양산에서 어떻게 복음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는지를 교육(가르침)과 구제(긍휼 베풂)의 현대적 적용의 예로서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한다.

 
가르침(교육):지역사회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점진적이나 강력한 방법

예수님의 사역을 세 가지로 정의 내린다면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며,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것이다(마 4:23; 9:35). 예수님의 사역 첫 번째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어디를 가시든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이런 예수님의 사역이 사도들과(행 5:42) 바울의 에베소의 두란노 사역(행 19:9~10)에서도 잘 계승되었음을 볼 수 있다.

칼빈에게도 이런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교회 밖에서 많은 이들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르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한 끝에 당시 기존의 학교에서 일반적이었던 중세교회적 세계관, 그리스-로마의 세계관에 따른 학교모델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 새롭게 개혁된 종교와 그 세계관에 따른 학교교육의 필요를 위해 1559년 제네바학교를 설립했다.

그렇다면 삼양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치는 사역을 어떻게 양산 땅에 실천해왔는가? 우선 삼양교회가 사회 속에 하나님나라를 가르치고 알려온 방법을 소개한다. 오랫동안 타종교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배타적이거나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일평생 교회를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어르신들을 섬기는 ‘장수대학’이다.

장수대학을 시작한 첫해에 모집한 숫자가 500명 이상에 이르렀고, 그분들을 섬기는 집사로 구성된 교사만도 50~60명에 다다랐다. 최고의 강사진과 최고의 식단을 제공했고, 6학기 3년 과정의 커리큘럼으로 운영하되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예배의 경건과 더불어 복음을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구성했다. 또한 매주 지정병원에서 무료로 건강진단을 해드렸고, 이미용 봉사도 해드렸다. 또한 어르신 130여분에게 녹내장 개안수술을 해드렸다.

이러한 섬김과 헌신이 열매를 맺었는지 이전까지만 해도 전도하러 가면 대문도 열어주지 않던 노인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자신의 거실까지 열어주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장수대학에 다니는 어르신들의 자제들 중 시청, 경찰서 등의 공직에 있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교회의 진심을 알게 되어, 이들을 통해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도 좋아지게 되었다.

두 번째는, 어린 영혼의 심령 속에 그리스도를 심는 교육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어린이집’사역이다. 우리 교회는 개척하고 5년 후인 1986년 3월에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전인교육’이라는 모토로 벧엘선교원을 시작했다. 18회 졸업식까지 1200명의 아이들을 배출했다. 그 아이들 대다수가 불신자 가정 출신이었지만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율동에 익숙하도록 가르쳤다. 1998년 정부시책에 따라 어린이집으로 탈바꿈하면서 종교색이 옅여지고, 2012년부터 도입된 ‘누리과정’으로 종교에 편향된 교육이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설립이념을 바탕으로 아이 한명 한명에게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성적 교육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라나도록 하는 교육에 힘썼다. 벧엘어린이집 출신 중에 주일학교와 청년, 대학부까지 나오는 친구들을 보면 교육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세 번째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을 심어줄 교육이 필요했다. 이에 대한 해답이 바로 ‘한빛국제학교’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은 출세와 부귀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등학교는 물론 그 이전의 모든 교육을 대학입학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명목상의 교육만 있을 뿐 실제적인 교육이 없는 상태이다. 게다가 인성교육의 부재로 전인적인 교육은 기대조차 힘들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경적 인간상, 개혁주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체득하는 교육 실현을 위해 국제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칼빈이 제네바 학교를 통해 향후 개혁주의를 확산시킬 인재들을 길러냈다면, 한빛 국제학교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미래세대의 주역을 길러내는데 그 주안점이 있다고 하겠다. 물론 교회마다 역량이 다를 것이다. 어떤 곳은 교회의 크기에 걸맞게 공부방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기독교세계관을 심어줄 수 있는 노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긍휼베풂(구제):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

예수님도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후 8:9). 초대 교회의 사도들도 구제를 위해 별도로 집사제도를 만들었다(행 6장). 바울도 그의 사역을 평가하면서 구제에 힘썼다고 한다(행 20:35; 24:17). 그런 의미에서 구제는 교회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종교개혁당시 정치적·종교적 난민들의 피난처였던 제네바에서 칼빈의 구제사역은 개혁주의 교회가 어떻게 사회와 소통하며 그들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혜안을 제시한다. 먼저 칼빈이 1541년 9월 시의회에 제출한 교회법 안에서 집사직은 병자와 가난한 자를 돌볼 책임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 재정을 관리하는 직분이었다. 칼빈은 이 교회법에 근거하여 이미 1535년에 설립된 종합병원(구빈원, General Hospital)에 재정모금담당과 분배담당 등과 같은 집사를 세웠다. 그리고 제네바로 몰려드는 가난한 프랑스 개신교도들을 돕기 위해 1945년 프랑스기금(French Fund)을 설립하여, 세 명의 집사들을 임명하였다. 이처럼 칼빈의 직제에 있어서 집사직이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 기독교적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통로였다.

삼양교회가 어떻게 그늘지고 소외된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택한 방법은 관내의 소외된 어르신들과 한부모 아이들을 섬기는 것이었다. ‘주사랑 며느리회’와 ‘주사랑 어머니회’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집사들의 전폭적인 헌신이 뒤따랐다.

주사랑 며느리회는 지역의 독거노인가정이나 장애인 가정을 대상으로 여성도들이 며느리처럼 돕는 것을 사역의 목적으로 삼았다. 독거노인 가정이 변변한 반찬 하나 없이 식사를 하는 것이 안타까워 매주 따뜻한 국과 반찬 세 가지씩을 준비해서 나누었다. 특히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같이 바깥 거동조차 여의치 않은 분들은 병원에 모셔다 드리거나, 말벗이 되어주어 좋은 이웃이 되어 드리려고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호스피스 교육을 통해 임종 직전의 노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도움을 드렸다.

주사랑 어머니회의 사역 목적은 지역의 어머니로서 소년소녀가장과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매주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주고, 청소나 빨래로 어머니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특히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새학기 등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손길이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시기에는 용돈도 챙겨주고, 속옷과 교복, 학용품 등을 세밀하게 챙겨 주며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러한 두 사역도 10여 년 동안 지속이 되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사역분야에 국가에서도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교회가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역을 미리 시작하여 지역사회에 필요한 부분을 채워준 것이다.

게다가 올해 11월에는 지역의 베데스다병원과 함께 배추 1500포기를 담아 불우이웃과 나누기도 했다.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이 이웃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일에 귀하게 사용된 것이다.

 
결론: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est reformanda)

우리는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한다. 진정 개혁주의 신학이 가장 성경적인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신앙을 드러낼 개혁주의 교회도 가장 성경적인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원리를 동시대 사회에 적용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산위에 동네로 세워주신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구원선포(전하고, 가르치고, 치유함)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속에서 실현되는지를 교회가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고치고, 먹이심) 보여주어야 한다.

개혁주의 교회는 칼빈주의 교리와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굳건하게 견지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인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이 슬로건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물려받은 그 고귀한 유산을 이 시대 사람들과 나누지 않는다면 주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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