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개혁주의 설교 ⑤ 기도로 엮어가는 설교

허물 깨닫고 예수님 성품으로 변화되는 힘 … 무엇보다 설교자의 ‘신행일치’ 삶이 중요
모범적 성도에 초점 맞춘 설교해야 감동 이끌어 … 예수님 말씀 가지고 사랑 전해야


 

▲ 정필도 목사(수영로교회 원로)

마지막 때가 될수록 목회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변화와 함께 교회 사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교회는 꼭 천국에 와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교회이다. 그런데 점점 교회가 지옥처럼 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이 모두 다 100% 하나님의 자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중에는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그 분들이 빠른 시일 안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고 힘써 왔다. 이를 위해서 가장 힘써야 하는 것이 설교이다. 어떤 설교를 어떻게 해야 교인들이 눈물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 빛의 자녀가 되어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왔다.

1.무엇보다도 설교가 은혜로워야 한다.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은혜가 되지 않으면 성도들이 변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가 성장할 수 없다. 설교뿐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은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배, 교육, 찬양, 심방 등등 무엇을 하든지 은혜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은혜는 성령이 주시는 은혜이다.

 왜 은혜가 되는 설교라야 성도가 변화되고 교회가 성장하게 되는가?

첫째, 은혜가 되는 설교는 많은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거룩한 성도가 된다. 자신의 허물을 깨달음으로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고 기쁨이 넘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충성하게 된다. 이 깨달음은 교회 성장에 큰 힘이 된다.

둘째, 은혜가 되는 설교는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깨달은 만큼 변화되게 하기 때문이다. 생각, 말, 행동, 가치관, 삶의 목표, 삶의 목적, 성품이 달라진다. 마귀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마다 왜 문제가 많은가?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은 설교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는다. 변화가 없다. 오히려 더욱 더 강퍅해 진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편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 은혜가 되는 설교는 성도들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 세상을 이기고 마귀와 싸워 이기고 환난과 시험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모범적인 성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성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백 명 몫을 한다. 이런 성도들은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주의 종들을 주님 사랑하듯이 섬긴다. 이런 성도들이 많아지면 교회가 큰 일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은혜가 되는 설교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2. 설교자가 은혜 충만해야 한다.

처음에는 누구나 설교만 듣는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세월이 가다 보면 점점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설교자의 실력이 보이고, 설교자의 성품이 보이고, 설교자의 생각이 보이고, 설교자의 허물이 보이고, 설교자의 믿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설교자의 삶을 보면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실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설교자가 은혜 충만해서 신앙과 인격이 훌륭하고 신앙과 삶의 본이 되면 모든 성도들이 설교자를 존경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설교를 하든지 강단에 서 있는 설교자를 보기만 해도 좋고 행복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강단에서 전하는 30분 설교보다 평소의 삶이 더 중요하다. 은혜 충만한 설교자는 믿음도 충만하고 사랑도 충만하다. 그러므로 그의 설교를 들으면 은혜가 되고 믿음이 생기고 사랑이 넘치게 된다. 따라서 교회는 그만큼 건강해지고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3. 무엇보다도 ‘설교자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설교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교인들 중에는 A급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모범적인 성도가 있고, B급 평범한 성도가 있고, C급 믿음도 없고 성품도 고약한 교인이 있다. 그런데 필자는 항상 모든 사람을 A라고 생각하고 설교한다. 존경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설교를 한다. 이때 듣는 것은 A B C가 다 함께 듣는다. 이런 설교를 들으면 가장 감동을 받는 사람이 C교인들이다.

왜냐하면 밤낮 책망만 들어야 할 사람인데 설교자가 존경해 주고 사랑해 주니 감동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A로 변화되거나 A로 변화된 척이라도 하게 된다. 따라서 교회는 점점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설교자는 A나 B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문제는 C급 교인들이라고 생각하고 C급 교인들을 향해서 설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C급 교인들을 생각하면 속이 상한다. 화가 난다. 그러므로 자연히 책망하는 설교를 많이 하게 된다. 이렇게 설교하게 되면 제일 화가 나는 사람이 A급 모범적인 성도들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A급 성도들이 점점 C로 변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점점 질이 나빠지는 이유이다.

필자도 그 전에는 C급 교인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설교했었는데, 이 일이 있은 후부터는 오직 가장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A급 성도들을 생각하며 설교하기 시작했다. 오직 사랑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하게 되니, 성도들이 은혜를 받을 뿐 아니라 모두다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A급 성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걱정했던 C급 교인들도 지금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일꾼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이 지나간 50년 목회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비결이라고 하겠다.
 
4.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해야 한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다. 오늘날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세상적인 이야기로 설교 시간을 채우는 설교자가 많아졌다. 교인들을 웃기기도 하고, 교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딤후 4:3~4) 이런 설교는 믿음을 가지게 하지 못한다. 따라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교만한 마음만 가지게 해서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고, 교회를 보게 만든다. 그러므로 말이 많아지고 교회는 복잡하게 된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모인다고 해도 이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교인들이 믿음을 가지게 하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예배 때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가게 해야 한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설교하기 위해서는 먼저 설교자가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계명을 지켜야 한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자세히 보면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자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마귀의 자녀들도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요일 3:10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인 것이다. 요 15:12에 보면,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롬 5:8), 원수 되었을 때(롬 5:10)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44) 그리고, 마 5:45에 보면,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한즉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하신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보면 서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고 싸우고 난리를 부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일 3:14~15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 자임을 알 수 있다. 요 3:36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아니다. 직분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아니다. 십자가가 달린 건물에 모인다고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하나님의 교회는 아니다. 원수까지 사랑하지 않는 교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사랑을 버린 교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사랑을 버린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고 말씀하신 그대로 교인들 중에 하나님의 자녀는 매우 적은 것 같다. 주님이 재림하실 날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진다. 하루 속히 한국교회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가득 차고 사랑이 넘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어 주님 앞에 설 때 흠과 티와 책망 받을 것이 없고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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