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성일 목사(하남교회)

 
몇 년 전, 이태리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국경마을에서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남자 화장실 하얀 소변기에 파리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파리 모양의 스티커였다. 옆의 소변기에는 작은 축구골대가 소변기 중앙에 세워져 있었다.

청년 멘토 김태원의 ‘젊은 구글러의 편지’에 네들란드 스키폴 공항의 이야기가 있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자고 아무리 글을 붙여도 별 효과가 없었는데 파리 스티커 하나 붙이고부터 아주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파리를 향해서, 그리고 골대를 정조준해서 소변을 보는 남자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아이디어인 셈이다. 사람은 목표를 정할 때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존재이다.

인생을 살면서 목표가 없는 사람은 골대 없는 운동장에서 열심히 공을 차는 사람과 같고 과녁 없는 활터에서 활을 쏘는 사람과도 같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니고 정신을 모아 활을 쏜다고 해도 점수가 날 수 없다.

미국 테네시 주에는 ‘Right Foot Baptist Church(오른발 침례교회)’란 교회가 있다. 교회가 그런 특이한 이름을 가지게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줄 때 ‘오른발을 먼저 씻겼을까? 아니면 왼발을 먼저 씻겼을까?’ 문제로 논쟁이 생겼다. 결국 그 논쟁에서 왼발을 먼저 씻어야 한다는 쪽이 이기자 오른발을 주장한 사람들이 갈라져 나와 세운 교회가 그 교회라 한다. 웃을 수밖에 없는 이 이야기가 남의 나라 이야기만 아니다. 지금도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교회들이 있다. 그런 교회는 예외 없이 진리 문제가 아닌 사소한 문제 때문이다. 목표도 목적도 잃어버린 이 시대 교회의 슬픈 이야기다.

이번 주는 우리나라 최대교단 그래서 맏형 같은 우리 교단 목사장로기도회가 열리는 뜻 깊은 주간이다. 기도로 일구어진 새에덴교회에서 모이는 것도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다. 전국에서 지도자들이 모여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미스바 모임이다. ‘목장기도회’ 정말이지 좋은 목표이다. 타이틀 대로 목표대로 전심으로 기도하는 모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배들은 목장기도회에서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기록도 있다. 눈물로 회개하며 올린 간절한 기도는 자신과 교회를 살렸고 국가와 민족을 살려내었다. 기도의 큰 용사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예수님 앞에 왔던 당시 종교지도자는 예수님 앞에서 부끄러워 손에 든 돌을 버리고 물러갔다. 여인을 치려는 돌은 버렸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돌은 버리지 않았다. 가슴을 찢고 깊이 숨겨진 돌을 버려야했다. 여인은 살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죽은 자이다. 지인을 만나고 동창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기도가 목표인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에서 ‘동호회’ 이야기를 읽었다. 동호회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끼리지만 오랜 친구처럼 친하다. 분위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해체 위기까지 갈 만큼 심각해진다. 왜 그럴까?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인생 여정에 띄엄띄엄 나타나는 이정표는 목표이고, 목적은 그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이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목적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의 이정표에 도달하면 다음 이정표를 향해 나서는 것이 길가는 사람의 바른 자세다.

기도회가 끝나고 나면 다음 목표로 가야한다. 미스바의 불을 가지고 지교회로 돌아가 그 불을 붙이는 것이다. 기도의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교회의 원래의 목적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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