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후에 성도들과 공원에서 야외예배와 친교를 갖는 것은 주일성수가 맞나요?” “성지순례지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계속 여행을 떠나는 것은 주일성수인가요?” “직장 때문에 주일성수를 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목회현장에서 쉽게 접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목회자들도 주일성수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엇갈린 대답을 내놓기 일쑤다. 특히 산업화와 주5일제근무로 인한 주일성수 신앙관이 흔들리면서 적잖은 파장도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총회교육부가 10월 27일 심포지엄을 열고 주일성수의 의미를 개혁주의 신학적으로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6명의 발제문을 2회에 걸쳐 정리한다.<편집자 주>


기조발제/ 21세기 주일성수 어떻게 세워야 하나? 

삶의 체계로서 주일성수 가치교육 적극 세워가야


 
▲ 노재경 목사(총회교육진흥원)
철학자 볼테르는 “기독교를 죽이고 싶으면 주일(Sunday)을 폐지시키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일성수와 기독교의 존립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과 구분 되는 표식 중 하나가 주일성수이다.

한국교회는 너무도 많은 힘을 잃어 가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주일성수에 대한 급격한 쇠퇴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성수의 회복은 곧 한국교회의 회복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주일성수에 대해 성도 500여명을 상대로 설문을 실시했다. 주일에 교회를 결석을 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29.1%, 자주 한다 34.7%, 조금 한다 34.4%로 나타났다. 주일성수를 철저히 하지 않는 경우가 69.1%로 2/3을 상회하고 있다.

그리고 출석 못한 요인은 영적침체 13.6%, 가족과 함께 함 14.0%, 경조사 20.0%, 학업 및 경제활동 19.2%, 여가 및 취미생활 33.2%로 조사 되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성도의 70%는 신앙생활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일성수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는 원인을 보면 무엇보다도 관계문제(47.2%)가 절대적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변화하는 사회상에 대한 교회의 대응이 시급하다. 한국 문화에서는 경조사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업이나 경제활동으로 불가피하게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한 대안도 필요하다.

주일성수가 무너지는 이유는 산업화와 주5일근무제, 정보화, 세속주의(물질·쾌락·권력)로 정리할 수 있다. 주일성수 개념이 신앙생활의 중심에서 부수적인 위치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주일성수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한다.

주일성수가 중요한 이유는 △삶으로 신앙을 전수하고 교육하는 ‘영적 생명 전수의 날’이기 때문이며 △세계 인류 공동체성을 깨닫고 회복하는 ‘믿음과 교회의 공공성’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열려진 미래를 향하여 ‘창조적인 꿈을 꾸는 사람’을 만든다.

주일성수를 논의하고 강조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도 있다. “주일에 물건을 사도 되느냐”처럼 행동에 대한 이분법적 논리에 집착하면 안 된다.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면 무조건 정죄하는 역사·전통적 관점도 우려의 대상이다. 또한 주일을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교회문화적 현상도 경계의 대상이다.

무너지는 주일성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신학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삶의 체계로서 주일성수를 정의해야 한다. 이어 삶을 통한 가치교육체계도 세워야 한다. 삶을 통한 주일성수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문화를 창조하여 주류의 문화로 만드는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문화는 문화로 맞서야 한다. 교회는 새로운 거룩한 문화창조의 모태가 되어야 하며, 주일은 그 씨앗이 형성되는 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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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①/ 주일성수에 대한 역사신학적 고찰 

초대교회부터 주일 지켜 타협하지 않는 정신 중요


 
▲ 박용규 교수(총신신대원·역사신학)
현재 서구 세계는 물론 한국교회 역시 주일성수와 관련하여 두 가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외부적 원인으로 주일을 지키기 힘든 시대적 상황이다. 둘째는 안식교와 같이 주일성수의 무효성을 주장하는 내부로부터 오는 도전이다.

요즘처럼 주일성수 개념이 퇴색해지고 있었던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도 주5일근무제로 노동 형태가 바뀌면서 교회보다는 가정을, 영적인 일 보다는 세상적인 즐거움에 중점을 두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도전은 기독교에서 주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주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안식교에서는 구약의 안식일(the seventh day Sabbath)이 주일(Lord’s Day)로 바뀌게 된 근거를 신약에서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에는 안식일에서 주일로 바뀌게 된 증거가 많다. 첫째, 주님의 부활이다. 제자들과 초대교회는 안식 후 첫날 주일(주님의 날)은 부활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로 특별 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부활의 몸으로 친히 나타내신 날이 주일이다. 셋째, 교회에 성령이 강림하신 날이 오순절이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부활의 주님이 친히 부활의 승리를 기념하시고 신약교회의 태동을 선언하신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사도행전 20장 7절에서 누가는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했다. 그 주간(안식 후) 첫날은 주일을 뜻하며, 떡을 뗀다는 것은 주일에 성찬식을 했다는 뜻이다. 즉 초대교회는 안식 후 첫날(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의 날로 기념하고 예배를 드렸다. 이밖에 주일성수에 대한 초대교회 교부들의 증거도 수없이 많다.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 안식일 준수가 주일성수로 변천되어 왔고, 이미 초대교회부터 안식일 대신 주의 날을 지켰다. 따라서 주일을 성수하는 문제는 성경과 기독교 역사가 가르치는 중요한 교훈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속화의 도전, 주 5일근무제 등 우리 주변에 주일성수를 평가절하 하는 환경적 요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교회의 경우 1930년대에 주일성수에 대한 위기가 왔었으며, 이는 곧바로 교회의 세속화로 전이됐다. 현재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와 동일한 흐름으로 가고 있다. 미국처럼 결국 성탄절이나 부활주일에만 교회에 출석하는 명목상의 기독교인이 등장할 수 있다.

따라서 주일성수에 대한 초대교회와 청교도적인 엄격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쉽게 타협하는 길은 결국에 가서 주일성수를 완전히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현대 한국교회는 주일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주고, 산업화와 주5일근무제로 인해 주일성수가 퇴색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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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②/ 주일성수에 대한 성경신학적 이해
 
‘안식의 회복’이 완성된 날 힘써 모여 믿음 지켜가야


 
▲ 김희석 교수(총신신대원·구약학)
성경에서 안식 개념이 처음 나타나는 본문은 창세기 2:1~3이다. 이는 단순한 육체적 쉼의 개념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계획을 성취하신 ‘완성’의 개념이다. 그러나 창세기 2장에서 나타난 안식 개념은 창세기 3장(선악과 사건)에 이르러서 파괴되고 만다.

안식 개념은 출애굽기 20:8~11(십계명 중 4계명)에서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창세기의 ‘안식’과는 다른 ‘안식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안식의 회복을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이루셨던 안식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회복하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안식일은 ‘장차 경험하게 될 종말론적 안식의 회복을 믿음으로 미리 경험하는 날’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키면서 ‘창조기사 속에 드러난 하나님 나라 회복을 소망해야 하며, 동시에 종말론적 안식의 회복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했다. 안식일은 이처럼 창조사건과 구속사건이 함께 연결되는 안식의 회복을 뜻하는 절기였다.

신약교회의 성도들은 구약시대의 안식일을 ‘제도적 의미’에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말론적 안식의 회복을 바라봐야 한다. 즉 일주일의 모든 요일이 안식이 충만하게 회복된 날이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실 날까지는 구약시대 안식일을 본받아서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을 배우고 기도해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날을 지켜야 하나? 역시 안식의 회복이 완성된 날이어야 할 것이다. 신약이 알려주는 안식이 회복된 날은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이다. 우리가 제1일을 ‘주일성수’로 지키는 것은 제1일인 일요일을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며, 오직 예수께서 안식을 완성하신 ‘부활의 날’을 지킨다는 의미다.

21세기 한국교회는 주일성수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주일성수에 대한 극단적인 오해를 피해야 한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노동의 금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의 회복에 있었다. 예수께서도 노동의 금지만으로 모든 것을 규정하려고 한 자들의 태도를 비판하셨다. 반대로 율법폐기론을 펼치면서 주일성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 역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신약교회의 일원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완성을 바라봐야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면서 주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교회의 일에 동참해야 한다. 주중에는 마치 주일을 지키는 것처럼 각자의 삶 가운데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주일을 잘 성수할 수 있도록 실천적인 노력과 연구에 더욱 힘써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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