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인터뷰] 남창우 목사(장충교회)

 

건축 과정부터 지역과 시대 담는 배려에 초점
진정성 확인한 지역주민 마음 열고 교회 인정
나 자신부터 줄여가는 희생과 나눔서 답 얻자


참 따뜻한 만남이었다.

인터뷰이로 만난 남창우 목사(장충교회)도 그렇고, 지역교회로 자리하려는 장충교회의 여정이 그랬다. 남 목사와 장충교회의 외모는 출중했다. 60이 넘은 나이답지 않게 꽃중년의 이미지가 느껴질 정도로 선한 이미지를 발산했다. 장충교회 역시 둥글게 솟은 남산과 잘 어울리는 곡선의 아름다움이 있는 교회였다.

그 따뜻함은 다름 아닌 ‘진정성’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남창우 목사는 진솔하게 자신과 교회를 오픈했다. 미사여구 없이 있는 그대로를 풀어내었다. 첫 만남임에도 전혀 거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편안하게 마음을 열었다. 인터뷰 내내 “이것이 ‘오랜’, 그리고 ‘제대로 된’ 제자훈련을 이끌어 온 내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

남 목사의 목회여정과 지금의 장충교회가 있기까지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

상식이 통하고, 복음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진정성 있는 교회가 될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따뜻함을 느끼며 소통을 한다는 것 말이다.

교회에 대한 배타성이 짙은 이 때, 교회가 추구해야할 진정성의 의미를 남창우 목사와 함께 찾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남창우 목사
▲지금까지의 목회 여정은.

=충현교회에서 자라고 결혼도하고 신학도 하고 목사안수도 받았다.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으로부터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순교자적 신앙을 배웠다. 미국 유학 시절 애틀랜타에서는 교회의 통합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했다. 옥한흠 목사님의 배려로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는 한 사람의 중요성과 평신도 정체성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였다. 아울러 장인인 김재창 목사님에게서 평화의 제일 가치와 피스 메이커의 지혜를 얻었다. 사랑의교회 선임부목사 시절 장충교회의 청빙부탁을 받고 부임해 담임목회를 시작한지 벌써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까지 목회여정에서 만났던 목사님과 교회는 나의 목회에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서울대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뒤늦게 신학도로 입문했는데, 어떤 사명적 부르심이 있었나.

=대학 졸업 후 TBC방송국 PD를 거쳐 대한항공 스튜어드로 취직했다. 월급도 많이 받았고, 해외도 나가는 직업이라 잘 나가는 인생이었다.
과거부터 잘 나고 싶은 인생이었다. 누구보다도 빠르고 높고 편하게 살고자 했다. 그러나 삶이 공허했다. 어느 곳에도, 어떤 행위로도 채움을 받지 못했다. 삶의 공허는 세상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없고, 세상에는 해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금 예수님을 생각하고 인격적인 만남과 경험으로 공허감을 채울 수 있었다.
그래서 총신 신대원을 갔다. 3년간 수업 시간 맨 앞자리에서 앉았다. 공부에만 매진했다. 성경적 지식이나, 인문학적 소양이 없었기에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 그랬다. 그때는 매시간 울었다. 감격과 감동 때문에 그랬다.
 
▲19년 전 장충교회 부임 당시의 상황을 다시금 회고한다면.

=당시 장충교회는 원로목사님이 은퇴하시고 2년이 다되도록 담임목사를 정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마음들이 나누어지고, 분위기도 나빠져 교세도 약화되고 있었다. 남아 있는 성도 대부분이 60세 이상의 노년층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회의 환경 요건이 좋지 않았다. 장충동 자체가 서울 중심부여서 주거지역이 아니고, 주차장 사정도 넉넉지 못한 실정이었다. 인간적인 면에서 조건이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때가 1995년이었다. 5년째 사랑의교회 수석부목사로 있다 보니 그동안 여러 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 제안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장충교회 장로님께서 직접 찾아왔다. 여러 차례 분명하게 거절의사를 밝혔다. 요건이 좋은 다른 교회의 제안도 계속 되고 있었고, 무엇보다 당시엔 옥한흠 목사과 함께 있는 사랑의교회가 내겐 너무 좋았다.

그러나 장충교회 장로님들의 눈물을 담은 청빙제안은 한 달간 계속되었다. 기도하던 중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라는 신학교 시절 불렀던 찬송이 마음을 때리기 시작했고, 목회자로서 불쌍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6년 1월 7일 신년 첫 주일 장충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 부분에서 남창우 목사는 자신의 저서 <따뜻한 선택>에서 “목회는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하는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과 계산으로 ‘힘들다’, ‘어렵다’하며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선택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모든 것을 편안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참! 장충교회와 나의 관계는 이미 25년 전부터 시작됐다. 남들 부러워하는 대학에 다녔지만 공허한 삶이 지속됐다. 하루하루 방황하며 지낸 시절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통행금지에 걸리지 않게 서둘러 돌아가던 중 십자가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치밀어 올라 그 교회 담벼락에 소변을 본 경험이 있었다. 그 시절 소변을 본 교회가 바로 장충교회였던 것이다.

이런 공교로움도 없을 것이다. 소변사건이 일종의 영역표시였을까? 수많은 교회 중에 소변을 보았던 교회의 담임목사가 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무튼 재미난 에피소드였다.
 
▲장충교회의 변화상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꼽자면 교회 건축이 될 수 있고, 교세 역시 배가 성장한 점을 들 수 있겠다. 아마도 교회의 전통과 노후한 시설, 도심공동화 등 어려운 여건에도 성장한 것을 두고 주목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부장적 심방목회에서 양육과 삶과 복음이 자리하는 훈련목회로 전환된 것이 장충교회의 가장 큰 변화다. 그 핵심에 ‘제자훈련’이 있다.

제자훈련의 열매는 컸다. 바른 교회관과 성도의 정체성을 정립하게 됐다. 제자훈련의 역동성이 교회 전체를 뒤집어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회의와 행사에서 양육중심으로 바뀌고, 삶을 체크하고 치유하고 돌보는데 집중하고 있는 점, 교리해석과 문화적 전통 대신에 용서와 화합과 평화의 십자가의 핵심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큰 변화라 생각한다.

 
▲ 남창우 목사는 진정성 있는 목회, 신실한 제자를 키우는 목회를 하며 장충교회를 ‘지역의 인정을 받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근래 제자훈련이 전반적으로 퇴색되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영혼에 집중하기 보다는 하나의 훈련 프로그램 정도로 전락하고 있고, 제자훈련을 인도하는 목회자의 철학 부재와 소그룹 메커니즘의 몰이해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다. 제자훈련을 기치로 담임목회를 하고, 사랑의교회를 거쳐 온 목회자로서 어떻게 보시는지.

=정확한 분석이고, 지당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자훈련’이 퇴색된 것이 아니라 제자훈련을 하는 ‘사람의 역량’이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제자훈련을 제대로 한다면 한 영혼과 교회의 변화는 분명히 온다. 제자훈련은 바른 신앙관, 바른 교회관, 바른 인생관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도와 교회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또한 소그룹에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소그룹에서는 개인의 문제가 일반화가 되어 속내의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게 된다. 여기서 치유가 이뤄지고,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해 준다. 이로 인해 소그룹의 다이내믹 즉, 결집력과 응집력을 갖게 해 준다. 이것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교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제자훈련의 가치를 붙잡고 바르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 지금도 제자훈련으로 인한 변화의 사례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에 몸부림치며 제자훈련을 하는 것이다.

제자훈련에 진정한 열매를 기대하려면 제자훈련을 이끄는 목회자가 먼저 제자가 되겠다는 끊임없는 자기 채찍질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장충교회 변화상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면.

=19년간 담임목회를 하면서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바로 ‘나 자신’이다. 목회여정 속에서 바른 목회철학에 따른 교회관과 교회의 존재 이유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 내 모든 것을 주께 맡겨 예수의 증인되고, 사람들의 종이 되는 그런 목사, 그런 성도를 만들겠다는 제자도의 정신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이것을 제자훈련이라는 도구를 통해 실현해 가는 것이 의미가 아니겠는가.
 
▲곡선으로 된 교회건물이 무척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지역 주민을 배려한 건축을 해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고 들었다.

=교회 바로 뒤편에 고급 빌라촌이 있다. 여기에는 남산이라는 우수한 조망과 풍수지리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곳이라는 이유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굉장한 분들이 살고 있다.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니 이전 건물보다 높게 지을 것이라 예상해 5번의 소송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교회를 짓게 되었다.

본격적인 건축에 앞서 시대정신과 함께 지역 주민을 배려한 건축이 되도록 고민하던 중에 곡선예배당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평소 교회건물은 지역사회와 시대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각진 세상에 서로 부드럽고 둥글게 살자는 메시지와 둥근 병풍처럼 펼쳐진 남산의 지형과 정서를 건축물에 담고자 곡선의 예배당을 짓게 되었다. 건물 꼭대기에 십자가도 걸지 않았다. 십자가의 '모양'이 자랑이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으로 사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 때문도 있었다. 대신에 유리 창문을 입체적 꾸며 십자가를 형상화해 교회건물임을 나타냈다. 또한 주 출입구 큰 기둥을 덮고 있는 동판에 십자가 모양의 구멍을 뚫어 그 속에 LED 조명을 넣고 십자가가 입체적으로 나오게 했다. 밤에 보면 정말 아름답게 나온다.

이 모든 것이 무엇보다 교회 뒤편 주민들을 배려하기 위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역을 위해 교회가 가진 당연한 권리와 기득권을 기꺼이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것도 건축이라는 중차대한 일에 재산상, 사역상, 공간상 손해가 크다는 것을 예상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나.

=건축 전에 주민들로부터 대법원까지 가는 부당한 소송을 다섯 차례 당했으나 모두 승소했다. 교회만 생각해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건축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시대와 지역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얻지 못하면서 어찌 지역을 품고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당시 곡선 건물을 지을 기술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공사기간과 건축비의 막심한 손해, 완공 후 곡선에 의한 쓸모없는 공간이 많이 생기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결정이었다. 심지어 교회 건물을 전체적으로 15도 각도로 틀어 지어, 주민들의 남산 조망권을 최대한 보장해주려 애썼다.

공사 기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공사기간의 지연 등의 이유로 주민들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역과 시공사에 손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지역과 시대를 담고 배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역을 향한 교회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 진정성에 지역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입당예배에 앞서 2010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때 처음으로 새 예배당에 들어갔다. 교인들과 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다. 교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10시까지 갖가지 공연으로 위안과 감사의 자리를 가졌다. 공연이 끝난 밤 10시부터 송구영신예배 전까지 전 교인들이 주민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이에 앞서 낮에 교회 뒤편 주민들에게 고급 떡과 편지를 가가호호 나눠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편지 내용에 밤 10시에 시간이 되면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봐 주면 좋겠다고 썼다.

엄동설한에 1700명의 교인이 촛불을 들고 빌라촌을 둘러싸고 주민들을 위해 축복의 노래를 불렀다. 많은 주민들이 창문을 열고 우리들의 축복송을 받아 주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주민들이 장로님들과 교역자들을 초대해 근사한 잔치를 베풀어주셨다. 이 자리에서 교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고백을 많이 해 주셨다. 또한 주민들이 꽤 많은 돈을 모아 장충교회에 헌금했고, 큰 거울도 기증해 주셨다. 이번 일로 몇몇 주민들이 감동을 받아 새가족으로 등록해 지금도 신앙생활을 잘 하고 계신다. 입당예배 때도 많은 주민들이 참석해 축하도 해 주셨다.

낮은 자세로 세상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이 교회임을 새삼 알게 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목사님께서 가치관으로 삼고 있는 교회론은 무엇인가.

=교회론은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나와 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영광이 임하는 곳이다. 또한 교인과 교인 서로가 치료받고, 격려하고, 위로받고, 봉사와 헌신의 자리로 가는 것이 교회다.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 역시 교회다. 전도하고, 구제하고, 가난한 자 함께 있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교회는 지역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많은 교회들이 노력을 하고 있지만 교회에 대한 거부감은 커지고 있다. 그 원인과 해법을 제시한다면.

=세상은 우리를 거부한다. 우리가 잘못해서 욕을 먹는 것도 분명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해야 한다. 교양과 윤리적 탁월함이 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교회를 욕한다. 거부의 아픔을 철저히 알고 고쳐나가야 한다. 소통하려는 노력도 끊임없이 가져야 한다. 소통은 말과 논쟁이 아니다. 함께 가주는 것 즉, 참여와 배려의 자세가 필요하다. 주민들이 쉽게 교회를 찾아오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으로 존재하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만이 갖고 있는 배타적인 요소를 긍정적으로 키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결국 삶으로서 거룩과 순결, 희생과 나눔, 존중과 감사로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증거해야 한다.
 
▲그렇다면 장충교회는 지역을 향한 교회의 성육신(Incanation)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나.

=얼마 전 발생한 송파 모녀 자살 사건과 같은 일이 우리 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이를 실천해 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의 시설 나눔과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사역을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에듀 넥스트(Edu-Next)’는 대학생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의 자녀 두 사람에게 동시에 도움을 주는 제도이다. 방과 후 방치된 아이들에게 학업 및 생활지도를 해줌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신앙이 좋고 실력 있는 대학생을 선별해 뽑아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과 연결시켜 준다. 봉사활동을 하는 대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해 대학등록금을 해결하게 한다. 이 사역은 다음세대를 키우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예전에 방과 후 교실 해봤지만 교회에 대한 높은 불식 등으로 효과가 없었으나, 지금의 에듀 넥스트 제도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교회 인근 동국대학교의 언더기독서클 12개 단체를 지원하고 있으며, 대학생을 위한 학사를 운영하고 있다.

여명학교에는 탈북 고아 150명이 있다. 복지가 아무리 좋아도 가정공동체가 없기에 아이들이 의욕이 없다. 작은 도움을 주고자 교회로 초대해 잔치를 열어주었고, 교회 성도들과 연결하는 양부모제도를 시작했다.

수도 심장부에 있는 쪽방촌의 무의탁노인들을 위한 도시락 나누기, 물품제공, 돌봄사역도 하고 있다. 남산원과는 오랜 기간 신뢰관계를 유지하며 돌봄사역을 펼치고 있다.

여러 사역을 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몸으로, 삶으로 직접 가서 하는 섬김이 소통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성육신은 같이 있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의 폭을 넓혀보자. 얼마 전 방한했던 교황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토대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목회자상, 무엇이라 보는가.

=가난하면 존경받을 것 같다. 얼마 전 방한했던 교황은 평소 가난한 자와 살아왔고, 그것이 몸에 배였다. 인간적으로 존경스럽다.

적어도 욕을 먹지 않는 목사가 되기 위한 인간적인 고민도 솔직히 있다. 은퇴를 앞둔 8년이란 기간은 나의 시간이 아닌 것 같다. 김창인 목사님과 옥한흠 목사님을 모시며 느낀 것이다. 교회가 활력을 잃으면 안 되기에 은퇴시점과 관련해 고민이 크다. 그래서 발버둥치고 있다.

상대적인 차이가 있지만 나 자신을 줄이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외국에 있는 자녀가 보고 싶지만 교인 절반이 아직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다. 그래서 최대한 가지 않고 있다.

올 여름 안식기간을 교회 목양실에서 가졌다. 두 달간 교회 목양실 안쪽 별도의 작은 골방에서 교회를 지키며 소위 ‘칼갈이 휴가’를 가졌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에어컨을 28도에 맞춰 놓고 냉수를 담은 대야에 발을 담가 더위를 쫓으며 독서로 재충전의 기회를 가졌다. 이 기간 과거 읽었던 고전부터 신간까지 30권의 책을 읽었다. 많은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그저 나름의 방식대로 심플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위기라 한다. 목회자로서 많은 것을 느낄 것 같다.

=한국 교회 위기는 제자도의 부재, 아니 제자도의 상실이 원인이다. 거룩의 상실이다. 목사가 제자의 삶이 없어서 그렇다. 솔선해서 손해보고 하면 세상이 주목하지 않겠는가?

골로새서를 보면 제자도의 지향점이 나온다. 예수님과 같은 희생이 삶이 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짊어져야할 희생과 고난은 거짓과 부패, 음란, 뇌물로 난무한 때에 거룩과 순결을 삶으로 증거해 내야 하는 것이다.

거룩과 순결을 추구하면 반드시 고난이 온다. 그렇지만 결국은 큰 충격과 도전이 되어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이다. 교회는 이것을 가르치고, 이러한 삶이 나타나고, 끊임없이 나타나도록 추구해야 한다.

예수 믿고 기도한다고 핍박받는 것이 아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니 핍박을 받는 세상이다. 그래도 그렇게 뚜벅뚜벅 반복하면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 확신한다. (이 대목은 남창우 목사의 삶이 증명한다. 남 목사는 직장인 시절 일상적으로 횡행하던 부정을 거부해 동료들로부터 욕도 먹었고, 지독히 어려운 유학시절 약속된 장학금이 끊기고 다른 경로를 통해 장학금 제안이 왔으나 교회의 건덕을 위해 장학금을 거절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와 주님을 생각하면 상황을 달리 볼 수 있다고 그는 간증했다.)

희생과 나눔, 책임과 의무, 기본과 상식, 존중과 감사, 다름의 인정과 같은 문화가 자리 잡도록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노력해야 한다.

교회 건축 이후 성도가 늘어 일찌감치 주차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금도 성장에 목표를 둔다면 또 다른 공간확보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교회가 중심부에 있다보니 차량 이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주차문제로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쳐 죄송한 마음이 크지만 더 이상의 건축과 주차장 마련은 없을 것이다.

과거 한 차례 분립개척을 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반면교사 삼아 성공적인 분립개척을 준비하려 한다. 이제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짓는데 남은 목회에 집중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주제를 목회로 돌려보자. 19년간의 목회기간 가장 중점에 둔 것은 무엇이었나.

=교회는 건물도, 조직도, 일도 아니다. 사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명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변한다는 것, 교회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이 일어나는 것,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나의 목회의 유일한 자랑이다.
 
▲개인의 자질 향상(세계관, 설교, 세상을 보는 눈 등)과 매너리즘 극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7시까지 새벽기도를 한 후 1시간 운동을 한다. 9시에 출근해 제자훈련과 일과를 본다.

개인적으로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 책에는 다양한 사람의 심리와 생각과 이해가 있다. 그렇다보니 (설교에) 적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시적인 혜안을 얻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소통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관련 서적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 소설도 많이 읽는다. 소설에는 시대와 사회적 환경, 사람들의 심리의 이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목회를 함에 있어 어려운 점은 없는가.

=음악을 했기 때문에 감정 보다는 지성 강화를 위해 의지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말씀을 전달함에 있어 성경해석에 집중하는 만큼의 생활에 녹아드는 상황화(적용)를 높이려고 애쓰고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