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환 목사(익산 예안교회)

▲ 오주환
요절말씀: “요압이 나팔을 불매 온 무리가 머물러서고 다시는 이스라엘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다시는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삼하2:28)

죄와 악에 관한 것이 아닌 이상 양보하고,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또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평화가 온다. 요압은 극도의 분노로 들끓고 아브넬을 완전히 작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양보할 줄 안다. 이 본문이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

1.요압의 추적(24절)

동생 아사헬의 죽음으로 요압과 아비새는 아브넬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서 열심히 싸웠다. 그 결과 아사헬의 죽음으로 수세에 몰렸던 전쟁은 반전되어 요압과 아비새가 승리를 한다. 이처럼 한때의 실패는 사람으로 하여금 악착같은 승부근성을 만들어서 최선을 다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어느 한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고자 하실 때는 고난이나 역경으로 그 사람을 연단시켜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만들고,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도록 만든다.
우리도 때로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실패를 거울삼아서 새롭게 결심을 하고 열심을 내야 한다. ‘저 사람은 넘어졌지만 나는 오히려 새롭게 일어서리라.’

2.아브넬의 이중성(26절)

열을 받아서 공격하는 요압의 군대에게 아브넬은 전쟁을 그만두자는 제안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입으로 두말을 하는 치사한 인간을 보게 된다. 분명히 전쟁장난을 하자면서 시비를 걸었던 인간이 아브넬이었다.
그러다 이제 그 전쟁의 해악이 자기에게 미칠 듯하자 전쟁의 폐해를 강조하면서 평화제안을 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이중적이고, 간사한 모습이다. 그러자 요압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27절을 보자. 정확하게 전쟁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너’(아브넬)였음을 알려준다.

3.평화주의자의 승리.31-32절

그리고 요압은 밀어붙이질 않는다. 그는 평화주의자였다. 비록 자기의 친동생이 무참하게 살해되고, 또 자기가 승리를 이끌어가고 있었지만 한발자국 물러서서 화해에 응한다. 개인의 원수를 갚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항상 평화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권모술수를 사용한 아브넬에게는 이기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 진 전쟁이었고, 양보하고 정당한 전쟁을 치른 요압에게는 진 것 같았지만 이긴 전쟁이 되었다. 그 결과를 31절에서 보여준다. 성도는 잠깐의 승리를 위해서 영원한 승리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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