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환 목사(익산 예안교회)

요절말씀: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삼하 1:19)

사울은 불같이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그에게는 강하지만 잔인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19절에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라고 말하고, 21절, 22절, 25절, 27절 등에도 사울에 대해 ‘용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울은 솔직히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모순투성이의 인물이었다. 골리앗과 같은 인물이 나서서 이스라엘을 협박하고 엄포를 놓을 때는 같이 벌벌 떨고,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어린 소년 다윗이 적장을 물리치고 돌아오니까, 그 소년을 적으로 삼고, 죽이려고 온 백성을 모으고 쫓아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마저도 적의 칼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면 마지막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할 일이지 적군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부탁하고, 그것도 안 되니까 결국 자기 칼에 자결을 하고 죽은 사람이다. 이런 인물을 어떻게 용사라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윗은 이미 죽은 사울에 대해서 폄하하지 않고, 오히려 용사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장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격려는 공개적으로 하자.
다윗은 사울의 장점을 공개적으로 노래를 만들어서 했다. 분명 사울에게는 겁쟁이의 요소가 있었지만 그런 부분은 감추어주고, 장점만을 공개적으로 치하한 것이다.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면 비난한 만큼 적을 만드는 것이다. 비난에만 몰두하다보면 이야기를 듣는 상대 속에는 자기가 공격하는 편의 사람들도 있음을 잊어버리기 쉽다.

2.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보자.
다윗이 본문에서 ‘두 용사’라고 같이 묶어서 말할 때, 사실 그 내용 속에 참다운 용사는 요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따로 구분하질 않고, 요나단 속에 사울을 끼워 넣으면서 함께 용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3.격려는 공개적으로, 지적은 개인적으로 하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다. 누군가의 잘못을 발견했으면 기도하면서 개인적으로 지적함이 좋다. 공개적으로 지적하면 겉으로는 받아들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상처가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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