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평화를 누릴 여유가 없었던 아프가니스탄, 그 질곡의 역사는 정복자들이 굴종의 대가로 하사한 한줌의 평화를 거부한 까닭이었으리라.

아주 먼 옛날에는 페르시아, 알렉산더, 이슬람, 칭기즈칸과 티무르로 이어지는 제국의 정복자들에게 끊임없이 짓밟혔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영국과 소련, 그리고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들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기나긴 전쟁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고대와 근대의 제국들이 아프가니스탄에 보인 관심은 애정이 아니라 탐욕이었다. 약탈과 착취의 대상에게 가진 탐심이었을 뿐이다.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영화 <칸다하르>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에게 누군가 [다음 영화 주제는 무엇이냐] 물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대답했고, 바로 돌아온 질문은 [아프가니스탄이 뭡니까]였다고 한다.

우리에게 [아프가니스탄]은 2001년 9.11 테러와 뒤따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있기 전에는 거의 순수한 무지의 영역에 속했고, 이 사건들이 일어난 이후에는, 그리고 우리의 젊은이들이 사로잡혀 있는 지금에는, 편견의 대상에 그칠 뿐이다. 무지든 편견이든 그것은 참다운 관심과는 다르다.

탈레반이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겠다고 하자 이 세계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세계의 모든 예술인과 문화인이 들고 일어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마흐말바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아사에 직면한 백만 명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 대해 슬퍼하는 사람은 왜 없는가? 왜 모두들 불상이 파괴된 것에 대해서는 소리 내어 슬퍼하면서도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간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우리의] 형제자매가 사로잡히고야 이제 겨우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역사에, 그곳에 사는 아프간 사람들과 그곳 자기 땅에서 쫓겨난 아프간 난민들에 관심을 가지려 한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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