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똥> 권정생 선생을 기리며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 빈민촌에서 온갖 가엾은 사연을 안고 가난 속에서 뒹굴고 있는 수많은 [몽실 언니]들과 함께 자랐다. 결핵으로 몸이 망가졌고, 거지가 되어 유리걸식도 했다. 가난과 불쌍한 이들과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밑바닥이 삶을 따라다녔다.

그래도,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예배당 부속건물 토담집 조그만 방은 정들어 버린 생쥐가 있어, 글을 쓸 수 있고 아이들과 자주 만날 수 있어 족했다.

결혼은 못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하고도, 아이들하고도, 강아지하고도, 생쥐하고도, 개구리하고도, 개똥하고도 수없이 연애하며} 살았다.

2007년 지난 5월 17일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셨다. 아이들 때문에 생긴 돈이니 인세는 아이들을 위해 써라, 유언을 남기셨다.

권정생 선생은 1969년 <강아지 똥>으로 월간 <기독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면서부터 줄곧,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들을 지으면서 안동 토담집에서 사셨다.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 대접받지 못하는 들꽃들, 멸시받는 생물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오소리네 집 꽃밭> <사과나무 밭 달님><복사꽃 외딴집> <하느님의 눈물> 같은 수많은 동화들과 <몽실 언니> <점득이네> 같은 어린이 소설들을, 그렇게 우리에게 남기셨다.

돌이네 흰둥이가 골목길 담 밑 구석에 눈 강아지똥. 참새도 병아리들도 거들떠보지 않은 강아지똥. 그렇지만, 온 몸에 비를 맞아 자디잘게 부서져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민들레 뿌리로 모여들어 그 줄기를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운 강아지똥.

권정생. 강아지똥처럼 살다 가셨다.

도움 받은 권정생 선생의 수필 :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1996),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종로서적, 1986). 이루마의 노래 <강아지똥>을 들으면서 고 권정생 선생을 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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