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선 불허' 단서 달았지만, 가톨릭 내 논쟁
"죄 축복 자체 모순, 성경 따라 역할 다해야"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 커플에 대한 사제들의 축복을 공식 승인하면서 가톨릭은 물론 전 세계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축복을 이유로 얼마 전 교단에서 출교당한 목회자의 사례와 연결 지어 개신교를 비판하는 양상이 전개되기도 한다.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회의 대응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은 현지 시각 12월 18일 교황이 승인한 교리선언문 <신뢰를 기원하며>(Fiducia Supplicans)를 통해 “가톨릭 사제는 동성 커플이나 혼인하지 않은 동거 커플을 축복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선언문에는 ‘공식적인 전례에 의해 축복하지 않고’ ‘가톨릭교회가 마치 혼인인 것처럼 동성 간 결합을 축복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등의 조건을 달았지만, 지난 2021년 교황청이 동성 결합에 대해 축복할 수 없다고 밝힌 것과는 상반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다만 진보적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서 동성애자와 성전환자 등에 대해 기존 전통과는 달리 전향적인 입장을 드러내며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발표가 있기 전에도 일부 사제와 주교에 의해 이미 가톨릭 내에서 진행 돼왔던 일”이라면서도, 이번 결정이 제도적 정당성을 부여해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교황청 발표 직후 전 세계에서 동성 커플을 축복한 사제들의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물론 교황청의 발표가 가톨릭의 교리와 모순된다며 반발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도 높다.

일단 우리나라의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다. 전통적인 가톨릭 교리가 변한 것은 아니”라며 “교회는 모든 이를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축복)에는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점을 언제나 전제하고 있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상황 하에서, 혼인에 있어 통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 대해서도 여러 전제 조건들의 확인 후 축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제시했다는 데에 이번 선언문의 의미가 있다”라고 여지를 남겨 보수 개신교의 입장과는 다소 상반된 입장을 내비쳤다.

한편 이번 교황청 발표가 있기 열흘 전, 한국교회 주요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는 4년 전 퀴어 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한 한 목회자에 대해 출교 처분을 내렸다. 이처럼 상반된 두 사건이 겹치면서 당장 SNS와 일보 진보 언론에서는 가톨릭과 한국교회의 결정을 비교하며 개신교를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는 등 동성애 문제의 불똥이 교회로 튀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황선우 교수(총신대 신학과)는 “교황청의 권위를 인정하는 가톨릭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영향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본다”라며 교황의 결정이 내부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봤다. 황 교수는 다만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복잡한 이슈가 아니”라면서 축복은 허락해도 정식 미사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등 선언 자체의 모순적인 측면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진짜 모순은 죄의 길에 서 있는 자들이 그 길에 계속 머물러 있겠다는데도 그 행동을 축복하는 것이다”라며 “선언문에 ‘철저한 도덕적 분석’을 경계한다는 부분이 있는데, 성경에 동성애는 철저한 분석까지 갈 필요도 없이 너무 선명하게 죄로 기록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개신교를 향한 비판으로 양상이 전개되는 데 대해 “성경적으로 보면 죄의 늪에 있는 사람들이 거기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 황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동성애 문제가 단순히 신학적인 차원을 넘어서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등 법과 교육, 사상 등 전방위적으로 조여오고 있는 가운데 교회가 이번 일을 계기로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결집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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